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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家 상속 분쟁

다른 듯 닮은 삼성家 유산 다툼

뒤늦은 재산회복청구 데자뷔…삼성 차명주식, 명의변경 이슈 등은 차이

고진영 기자  2023-03-14 17:18:16
재산 다툼이 심심찮게 일어나는 재계에서도 상속회복청구는 다소 낯설다. 삼성그룹이 꼭 10년 전에 같은 소송을 겪은 것은 공교로운 일이다. 두 사건은 재산을 다시 나누자는 청구의 본질 외에는 언뜻 많이 달라 보이지만 소의 제척기간이 중요 쟁점이라는 점에선 닮아 있다.

◇4조원대 역대급 분쟁, '참칭상속인' 공방전 이유

재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삼성가 유산소송은 청구금액만 4조원대에 달했다. 당시 고(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은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삼성에버랜드를 상대로 2012년 3월 12일 주식인도 등 청구소송을 냈다.

대상 재산은 삼성생명(824만주)과 삼성전자(20주)의 차명주식이다. 이건희 회장이 차명주식의 존재를 다른 상속인들에게 알리지 않고 단독으로 이를 관리했으니 이를 상속분만큼 돌려달라는 취지였다. 처음 청구금액은 7000억원 수준이었으나 공판과정에서 청구액을 점차 늘렸다.



상속 관련 소송으로는 국내 역사상 최대 규모였으며 LG에서 벌어진 분쟁과 비교해도 덩치가 수배나 컸다. 현재 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배우자 김영식씨, 장녀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차녀 구연수씨 등 세 모녀는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상대로 2조원대 유산에 대한 법정상속분을 요구하고 있다. 구본무 회장이 별세한지 이미 5년이 지난 만큼 제척기간, 즉 제소가 가능한 기간을 두고 공방이 예고된 상황이다.

삼성가 소송의 키워드 역시 제척기간이었다. 당시 재판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참칭상속인'이 맞는지를 두고 법리공방이 치열했다. 참칭(僭稱)상속인이란 정당한 상속권이 없는데도 있는 것 같은 외관을 갖추거나 칭한다는 것을 뜻한다. 사실상 부정적 뜻이 담겼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건희 회장이 참칭상속인이라고 주장했던 건 이 회장 본인 쪽이다.

이유가 뭘까. 상속회복청구권의 제척기간 때문이다. 상속회복청구권은 피해자가 침해사실을 안 날로부터 3년, 상속권의 침해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이 경과하면 사라진다. 이건희 회장을 참칭상속인으로 봐야 이맹희 회장 측이 제기한 소의 성격이 상속회복청구가 되고, 따라서 제척기간의 제한이 생기므로 피청구인(이건희 회장) 측에 유리했다.

반면 이맹희 회장 측은 이건희 회장을 두고 참칭상속인이 아니라고 다퉜다. 이건희 회장이 차명주식을 본인명의로 바꾸면서 변경 사유를 상속이 아닌 매매나 실명전환 등으로 명시했으니 상속에 의한 침해행위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법원이 이건희 회장도 참칭상속인이 맞다고 보면서 이맹희 회장은 제척기간 이슈를 피해가지 못했다.

LG가문 분쟁의 경우 법정에 서더라도 비슷한 논박은 생기지 않을 전망이다. 차명주식 이슈가 없고 구광모 회장이 상속을 이유로 재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또 판례는 구 회장처럼 정당한 공동상속인 역시 상속분을 넘어서는 부분에 대해선 참칭상속이 맞다고 보고 있다.

◇'유산 다시 분배해달라' 청구 왜 늦었나

두 그룹의 유산 분쟁은 고인이 떠난지 한참 뒤 불거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LG가문 세 모녀의 경우 상속절차에서의 하자를 이유로 들었으며 이맹희 회장의 경우 재산의 존재를 제때 알지 못했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선대회장은 1987년 작고했다. 무려 25년을 지나 상속 분쟁이 벌어졌던 셈이다. 2008년 '삼성특검'의 파장이었다. 특검 조사로 4조5000억원의 차명재산이 드러났고 삼성은 이 재산을 이건희 회장 명의로 전환했다.

동시에 유족들에게 재산분배에 이의가 없음을 표시해달라는 상속재산분할 관련 소명 문서를 보냈다. 유족 일부는 상속을 포기했으나 이맹희 회장을 포함한 다른 유족들은 상속 권리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 차명재산 일부를 법원은 공동상속재산이 맞다고 인정했다. 이건희 회장이 다른 형제들 모르게 차명재산을 상속했다는 이맹희 회장의 주장을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다만 제척기간이 문제가 됐다. 상속권의 침해행위가 언제 있었는가를 놓고 이맹희 회장 측은 2008년이라고 주장했다. 이건희 회장이 차명주식을 자신의 명의로 개서한 시점이다.

반면 이건희 회장 측은 이병철 회장이 타계한 직후 이미 상속권 침해가 일어났다고 반박했다. 그때부터 이건희 회장이 주식을 독자적으로 점유·관리하면서 배당금을 수령했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양쪽의 주장을 모두 배척했다. 대신 1988년 이건희 회장이 차명주식의 주주로서 주주총회에서 의결권과 이익배당청구권을 행사한 때를 상속권 침해 시점으로 봤다. 어찌됐든 '침해행위로부터 10년'의 제척기간을 경과한 것이니 이건희 회장 측에선 달가운 결과였다.

◇흉터로 남을 소송, 피할 수 있을까

LG 분쟁의 경우 침해행위 시점은 크게 의미가 없다. 언제로 봐도 10년을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침해를 언제 알았는지가 중요해진다. 세 모녀가 유언장의 부재를 뒤늦게 알았다는 입장이라는 점에서 문제를 알아차린 때를 침해 인지 시점으로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다툼이 있을 수 있는 이슈인 만큼 쉽게 판단할 사안은 아니다.

삼성 케이스에서도 침해를 안 때를 두고 양쪽의 입장이 갈렸다. 이건희 회장 측은 특검 수사 결과 차명주식이 드러난 2008년, 이맹희 회장 측은 이건희 회장 측으로부터 '상속재산 분할 관련 소명 문서'가 왔던 2011년이라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삼성가 유산소송은 이맹희 회장의 완패로 끝났다. 1심과 2심이 일부재산에 대해선 제척기간의 경과로 판단, 나머지 재산은 아예 상속재산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이건희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상고를 고민하던 이맹희 회장이 백기를 던졌고 재산다툼은 2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다만 두 형제의 화해는 이뤄지지 않았다.



LG그룹 역시 소송이 장기화할 경우 상처를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 지난해부터 양쪽이 합의를 위해 노력했지만 입장이 좁혀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법조계 관계자는 "삼성가 소송은 차명주식 이슈뿐 아니라 여러 차례 명의변경과 매매가 있었기 때문에 이미 처분된 상속재산을 대가로 취득한 물건이나 권리를 상속재산으로 볼 수 있는지 등 복잡한 문제가 엉켜 있었다"며 "LG 역시 쉽지않은 분쟁이 되겠지만 그에 비할 바는 아니고 아직 합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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