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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전략 분석

SK이노 유증의 속사정, 머니마켓 유동성으로 메운다

①물량 인수 SPC, 환매조건부채권 운용…초단기 자금 모아 유증 납입

고진영 기자  2025-08-13 14: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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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재무전략은 사업과 기업가치를 뒷받침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사업자금이 필요하면 적기에 조달을 해야 한다. 증자나 채권 발행, 자산 매각 등 방법도 다양하다. 현금이 넘쳐나면 운용이나 투자, 배당을 택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선택엔 결과물이 있다. 더벨이 천차만별인 기업들의 재무전략과 성과를 살펴본다.
최근 SK그룹이 SK온 재무개선을 위해 발표한 자본확충 계획은 통상적 금융기법의 틀을 벗어나 있다. ABS(자산유동화증권)를 통해 단기금융시장에서 유상증자 자금을 융통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시장에서 찾아보기 힘든 방법이다.

유연한 재무설계로 당장 필요한 자금을 충당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말하면 공격적 전략을 짜야할 만큼 사정이 급했다는 말이 된다. 결국 SK온의 현금창출능력이 나아지지 않으면 시간만 벌어준 미봉책에 머물 수 있다.

SK그룹이 이달 진행하는 자본확충의 핵심은 유동화 체인과 PRS(주가수익스와프) 약정이 결합된 자금 흐름에 있다. SK그룹은 총 4조3000억원 규모로 유상증자를 진행한다. SK이노베이션과 SK온이 각각 2조원, SK아이이테크놀로지가 3000억원을 조달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직접적 현금출자는 SK가 SK이노베이션에 밀어주는 4000억원뿐이다. 나머지 3조9000억원은 외부 투자자에게 SK그룹 측이 PRS 약정으로 손실을 보전해주는 형태로 이뤄진다. SK온의 경우 유증금액 2조원 전부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이, SK이노베이션의 경우 1조6000억원에 대해 SK가 3년 만기의 PRS를 제공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SK이노베이션 유증 물량 중 1조6000억원은 증권사들이 세운 7개의 SPC가 인수한다. 더블에스에버2025, 엠에스파트너스제일차·제이차(교보증권), 큐브이노제일차(NH투자증권), 멀티솔루션써밋(교보증권), 에스프로젝트에스인(신한은행), 뉴스타그린테크제일차(KB증권) 등이다. 또 SK온의 유증분은 뉴젠에너지제1호(메리츠증권)가 소화할 예정이다.


그리고 SPC들은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ABS나 ABSTB(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를 발행, 투자자들에게 자금을 모집하는 도관체 역할을 한다. 문제는 SK이노베이션이 발행한 보통주가 이 SPC들의 자산으로 편입된다는 점이다. ABS를 찍을 때 보통주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사례는 거의 보기 어렵고 질권 등 담보(신용보강)로 붙이는 경우도 드물다. 변동성이 큰 보통주의 특성상 자산유동화의 기본구조와는 본질적으로 맞지 않는 탓이다.

ABS는 주로 카드채권이나 매출채권, 자동차할부금융채권 같은 금융자산을 기초로 발행된다. 투자자들이 여기서 생기는 꾸준한 현금흐름을 기대하고 자금을 태우기 때문이다. 시장 관계자는 “보통주의 경우 가치가 급변할 수 있을뿐더러 배당이 유동적이라 현금흐름 예측이 어렵다 보니 적절치 않은 자산”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자산유동화법에 따라 유동화전문회사를 만들 경우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할 수 없다. 하지만 SK 측 조달에 활용된 SPC는 주식회사로 세워져 규제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 SPC들은 대부분 만기 1년 이하의 머니마켓 자금을 운용하는 특수목적회사들이다. 조달한 자금을 은행의 특정금전신탁(MMT)에 맡기고, MMT에 흘러온 유동성이 다시 증권사가 발행하는 단기 RP 등에 투자되는 방식으로 돈을 굴린다.

국내 RP는 만기가 보통 7일, 14일 등으로 짧기 때문에 현금을 잠시 파킹해뒀다가 바로 꺼내쓸 수 있다. 사실상 현금성이 계속해서 유지된다는 뜻이다. 이번 유증에 투입된 자금의 성격이 장기투자가 아니라 머니마켓에 머무는 자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짐작할 수 있다. 쉽게 말해 SK는 3년 만기의 장기성 자본을 확보했지만, 그 재원은 시장에서 끊임없이 차환되는 초단기 자금들로 채워진다.

SK이노베이션이 이렇게 이례적 형태로 자금을 조달한 이유는 뭘까. 우선 SK이노베이션이 앞서 SK온 프리 IPO(Pre-IPO) 당시에 유치했던 투자금을 갚으려면 3조6000억원이라는 거금을 마련해야 했다. 재무적투자자(FI)들이 조기 상환을 요구한 것으로 짐작된다. SK엔무브에 출자했던 FI 지분을 되사오는 데도 9000억원 규모가 들어갔다.

하지만 이미 SK이노베이션은 자회사 SK온 몫을 포함해 52조원(3월 말 기준 총차입금)에 달하는 막대한 빚을 지고 있다. 재무제표상 부채를 더 이상 늘리지 않으면서도 빠르고 확실하게 자금을 조달해야할 필요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유동성 풍부하고 대규모 자금을 즉시 동원할 수 있는 단기금융시장에 눈을 돌린 배경으로 보인다.

다만 이런 복잡한 조달구조는 적잖은 부담을 안고 있다. PRS 계약은 주가가 떨어지면 투자자들에게 차액을 정산해주는 파생 계약이다. 따라서 주가 변동에 따라 현금유출 부담을 떠안을 위험이 생긴다. 회계상 자본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높은 수수료가 나가기 때문에 실질은 금리 비싼 차입과 가깝다. 빚을 갚기 위해 또 다른 모습의 빚을 진 셈이다.

SK이노베이션 측은 “이번 조달에서 이자가 나가는 부분은 2조3000억원 규모의 PRS와 영구채 7000억원”이라며 “관련 수수료를 정확히 공개하긴 어렵지만 시장의 통상적인 수준이고 PRS 만기 시점이되면 충분히 영업외비용을 상쇄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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