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금융의 '삼성전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이자수익 의존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은행은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해 대출에서 받은 이자이익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에 투자나 여타 사업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사업성이나 수익구조를 세밀하게 보거나 신용평가에 공을 들일 이유도, 능력도 없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입니다.
하지만 국내 은행이 주택담보대출을 가장 많이 취급하는 이유는 담보물을 팔아 원금 회수가 용이하기 때문인데요. 과거 정권이 중소기업 금융의 일환으로 내세웠던 동산담보대출 같은 제도가 결국 흐지부지된 것도 세컨더리 마켓 같은 인프라 없이 밀어붙인 탓이 큽니다.
오늘은 은행권의 고질적인 이자장사 논란을 한번 들여다보려 합니다.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불거지는 이슈인데요. 생산적 금융을 내세운 이번 정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재명 "은행, 이자보다 투자확대 신경써야"
이 일의 시작은 지난달 24일이죠. 이재명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금융기관도 손쉬운 주택담보대출 같은 이자놀이, 이자수익에 매달릴 게 아니라 투자 확대에도 신경 써주시길 바란다고 언급한 데 있습니다.
금융권이 부동산 금융과 담보·보증 대출에 의존하고 손쉬운 이자장사에 매달려왔다는 비판은 정권교체 시기마다 불거졌는데요. AI 등 미래 첨단산업과 벤처기업, 자본시장이나 지방·소상공인 등 생산적이고 새로운 영역으로 자금이 흘러야 한다는 게 현 정권의 기조입니다.
정권 초기 때마다 이런 논란이 불거지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2020년부터 지난 5년간 국민, 신한, 우리, 하나 등 소위 4대 시중은행의 이자순수익 평균을 보면 매년 늘고 있어요. 2020년 약 5조3600억원이었던 이자순수익이 작년에는 7조8400억원으로 증가했습니다.
게다가 순수익에서 이자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평균 80%를 넘습니다. 2022년에는 88.5%로 정점을 찍었다가 최근 2년간 소폭 낮아졌지만 그래도 86%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자수익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는 거죠.
이는 대출자산 증가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4대 은행의 평균 대출채권 규모가 2020년 225조원에서 지난해 321조원으로 늘었는데요. 운용 규모가 커지니 같은 1% 금리 차이에서도 얻는 수익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은행의 수익모델은 대출금리에서 예금금리의 차이인 예대마진입니다. 이자수익 비중이 클 수밖에 없는 구조죠. 애초 은행업의 본질이 자금중개업인 만큼 금융당국도 이런 구조를 문제 삼지는 않을 겁니다.
#부동산 편중 심화, '리스크 큰' 산업금융
비판의 초점은 따로 있습니다. 금융의 자금중개 기업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 사이드로 가지 않고 주택담보대출이나 부동산금융으로 과도하게 흘러간다는 겁니다. 이게 부동산 가격을 올리고 빈부격차를 벌린다는 우려로 이어지는데요. 실제로 4대 은행의 대출자산 중 부동산담보대출 비중이 높습니다.
특히 2022~2023년 53%였던 비중이 작년에는 57%까지 확대됐습니다. 은행이 주담대와 부동산에 쏠리면서 산업에 대한 자금중개 기능이 약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은행권의 이자장사 비판은 십수년 이상 계속 이어진 얘기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구조가 지속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정부에서 원하는 소상공인이나 첨단산업 대출 및 투자는 은행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큰 분야거든요.
3개월 이상 원리금이 연체된 고정이하여신비율을 보면, 4대 은행 평균 중소기업 대출의 고정이하비율이 가계대출보다 2배 이상 높습니다. 그만큼 돈 떼일 위험이 크고 충당금 부담도 증가하죠.
가계대출은 소액 다건이라 부실이 발생해도 다른 채권들로 어느 정도 희석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소기업 대출이나 개인사업자 대출은 액수가 가계대출보다 크기 때문에 부실이 터지면 고정이하비율이 급격히 치솟습니다. 이것도 그런 현상 중 하나입니다.
#건전성 고민 깊은 은행, 새로운 신용평가 모델도 고심해야
문제는 이것이 은행 건전성을 위협하고, 나중에 뒤처리는 은행이 해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민은행은 과거 비외감법인 대출, 일명 ‘그레이존 여신’을 취급하다가 약 10조원에 달하는 부실이 발생했는데, 1년에 1조씩 상각하며 정리하는 데 10년이 걸렸습니다.
기업금융에 발군이던 우리은행도 가계여신을 절반 이상으로 늘려 고정이하비율을 전반적으로 개선했습니다. 은행의 자산건전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주담대 같은 안전자산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지금 같은 경기하강기에는 중소기업 및 자영업자 대출의 부실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이들 대출 가운데 담보로 잡은 공장부지나 설비기계류는 세컨더리 마켓이 미비해 부실이 생겨도 담보를 처분해 대출금을 회수할 방법이 여의치 않습니다.
주담대를 가장 많이 취급하는 이유 역시 담보물을 팔아 원금 회수가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과거 정권에서 중소기업 금융의 일환으로 내세웠던 동산담보대출 같은 제도가 결국 흐지부지된 것도 세컨더리 마켓 같은 인프라 없이 밀어붙인 탓이 큽니다.
다만 수년째 이런 사회적 요구가 반복적으로 나온다는 건 은행권도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기존 방식이 아닌 소상공인을 위한 별도의 데이터와 신용평가 모형 구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대표자의 개인 신용, 담보·보증·재정 등으로만 이뤄지는 전통적인 자금공급 방식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금융정보 외에도 사업체가 쌓아온 평판, 업력과 같은 비정형정보나 AI 기술을 활용해 신용평가에 체계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은행들도 계속 손 놓고 있어선 안 됩니다.
은행권의 이자장사 논란은 오랜 시간 동안 주기적으로 불거진 이슈입니다. 민간 금융을 압박하는 게 시장에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언젠가는 겪어야 할 성장통이라는 평가도 나옵니다.
앞으로도 이 문제를 계속 주시하며 새로운 소식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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