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CFO

LCC 생존 재무전략

'비상사태'가 바꾼 진에어의 현금 확보 전략

⑤단기금융상품 운용 규모 1조로 확대...'최초'로 교환사채·영구채 발행해 자본 확충

양도웅 기자  2023-06-16 10:35:47

편집자주

LCC(저비용항공사)들이 '드디어' 다시 비상하고 있다. 일제히 흑자전환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미래 전망 지표 중 하나인 선수금도 대폭 늘어났다. 하지만 다시 비상에 성공하기 전까지 LCC들은 코로나19 팬데믹과 일본 불매운동으로 줄일 수 있는 비용은 최대한 줄이고 확보할 수 있는 현금은 최대한 확보하는 지난한 세월을 감내해야 했다. THE CFO가 LCC들이 4년간 어떻게 생존했는지 그간의 재무전략을 리뷰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비상사태는 진에어의 많은 걸 변화시켰다. 평소라면 정규직으로 전환됐을 인턴 직원들이 계약 종료와 함께 떠났고 직원들은 순환근무로 텅 빈 사무실에서 일하며 '혼밥'을 했다. 중국과 일본, 동남아 등으로 승객들을 실어나르던 항공기는 객실승무원 몇 명만 탄 채 기체 결함을 예방하기 위한 비행만 하곤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예년처럼 사업으로 연간 600억원 안팎의 현금이 유입되지 않고 오히려 1000억원 안팎의 현금이 빠져나가자 과거라면 선택하지 않던 현금 확보 전략을 취했다. 바로 대규모 보유 주식·채권 운용과 교환사채 발행, 그리고 신종자본증권(영구채) 발행이다. 모두 자본잠식에서 탈출하고 부족한 운영자금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2017년 12월 코스피 상장 후부터 2022년까지 진에어가 1조원에 가까운 주식과 채권을 매매해 현금화를 시도한 해는 코로나19 팬데믹 첫해인 2020년이 유일하다. 예기치 못한 사태에 환금성 높은 자산을 운용해 최대한 현금 확보를 시도했다. 2020년 진에어는 주식과 채권을 9306억원 어치 팔고 8037억원 어치 사들여 1269억원을 확보했다.







이해 11월에는 당시 모회사였던 한진칼이 참여하는 유상증자도 실시해 1042억원의 현금을 조달했다. 두 달 전인 2020년 9월 말 자본금 300억원, 자본총계 367억원으로 4분기에 67억원 이상의 순손실이 발생하면 자본잠식에 빠질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유증은 불가피했다. 자본잠식률 50% 이상이 2년 연속 이어지면 당국은 상장폐지를 검토한다.

2021년 4월에는 사상 처음으로 교환사채(3년 만기)를 발행해 158억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다행이라면 이자율 0%에 이미 보유하던 자기주식 68만8057주를 교환 대상으로 발행했기 때문에 이자비용 부담이 없었고 대주주 지분 희석 문제도 없었다. 과거 주가 부양을 위해 꾸준히 매입한 자기주식이 비상사태 때 쏠쏠한 현금 확보 수단이 됐다.

하지만 교환사채 발행만으로 운영자금과 자본잠식을 막는 건 어려웠다. 4개월 뒤인 2021년 8월 만기 30년의 영구채를 발행해 750억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2021년 3월 말 부분 자본잠식에서 2021년 6월 말 완전 자본잠식으로 악화하자 영구채를 발행해 자본을 확충했다. 이때가 진에어의 첫 영구채 발행이었다.

분기마다 수백억원의 순손실이 계속 발생하는 상황에서 추가 자본 확충은 불가피했다. 2021년 11월에는 모회사 한진칼이 참여하는 유증을 1년 만에 다시 실시해 1238억원의 현금을 조달했다. 2021년 8월 영구채 발행에도 9월 말에 완전 자본잠식 상태가 계속되자 가장 효과적인 자본 확충 카드를 재차 꺼내들었다.







사실상 코로나19 팬데믹 마지막 해로 평가받는 2022년에는 앞선 2년보다는 현금 확보 측면에서 좀더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대규모 주식·채권 운용도, 교환사채 발행과 유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민스러운 상황도 있었다. 1년 전 발행한 영구채의 스텝업 조항으로 높은 이자비용을 부담할지, 아니면 완전 자본잠식을 감수할지 선택해야 했다. 결국 2022년 8월 750억원 규모의 영구채를 조기 상환했고 9월 말 완전 자본잠식에 빠졌다. 한 달 뒤 곧바로 영구채를 발행해 자본을 확충하는 전략을 펼쳤다.

평소라면 택하지 않았던 현금 확보 전략을 3년간 반복했지만 자본구조와 지배구조에 큰 타격은 없다. 2023년 3월 말 2300억원의 결손금이 있지만, 잇딴 유증과 영구채 발행으로 자본총계가 자본금보다 세 배 가까이 많은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룹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최대주주가 한진칼에서 대한항공(정부와 약속한 항공사 수직계열화 목적)으로 바뀌었을 뿐 대한항공 지분율은 54.91%로 높은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다. 흠결이라면 연이자율 8.6%의 고금리 영구채가 미상환 상태라는 점이지만, 올해 1분기에만 1092억원의 현금이 들어와 조기 상환도 가능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진에어 재무라인은 주로 대한항공 출신들로 이뤄져 있어 불확실성이 높은 경영환경에 대응하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다양한 현금 확보 전략을 경험하면서 결과적으로 조달 능력을 향상할 기회도 가졌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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