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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선 역사와 머스크

고진영 기자  2023-09-26 11:33:31
HMM

편집자주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THECFO가 제공하는 ‘아카이브(Archive)’는 시장에서 벌어진 이슈의 발단과 결말을 기록한다. 기업의 현재를 만든 이정표적 사건은 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전개됐을까. 사건의 방향성을 흔들어 놓은 주요 이벤트는 뭘까. 기사 한 건이 하나의 조각이라면 아카이브는 조각이 맞춰진 퍼즐이다. 거대 사건을 구성하는 수많은 사실관계를 아카이브가 담았다.

목차

1. 개요

2. Containerization(컨테이너라이제이션) 혁명

2.1. '노동집약' 재래선

2.2. 말콤 맥린의 창안

2.3. 컨테이너 표준화

3. 머스크의 합류

3.1. 에이드리언 머스크호 출항

3.2. 선박 대형화

4. 해운시장 위기

4.1. 금융위기 발발

4.2. 머스크의 전략 변화

4.3. 대형화의 후유증

5. 대형화 전략 멈춘 머스크

5.1. 확장의 끝과 물류 전환

5.2. 머스크와 오너십

5.3. 뒤바뀐 해운사 순위

5.4. 2M 동맹의 종료

6. 다시 가라앉는 해운업

6.1. 사그라진 코로나 호황

6.2. 선사 공동행위 규제

최초 문서 작성일 : 2023년 9월 26일

1. 개요접기


컨테이너는 세계 무역에 대변혁을 가져온 발명품이다. 애초 해상운송은 고비용인 데다 비효율적 수단이었다. 화물 종류가 제각각이라 짐을 선적하고 내리는 데 운송과 비슷한 시간이 걸렸으며 화물의 분실이나 파손도 잦았다.

하지만 컨테이너선이 등장하면서 해상운송은 빠르고 저렴해졌고 무역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찾아왔다. 이때 선박의 대형화를 주도하면서 컨테이너선 시장의 압도적 강자로 떠오른 것이 머스크(Maersk)다.

해당 문서는 컨테이너선 시장이 개척된 배경, 이 과정에서 머스크의 행보와 그 행보가 시장에 미친 영향을 통합적으로 다룬다.

2. Containerization(컨테이너라이제이션) 혁명



2.1. '노동집약' 재래선접기


컨테이너선이 생기기 전까지 거의 모든 화물은 부두 노동자가 등짐으로 옮겼다. 당시 화물은 주로 석탄이나 곡류였는데 따로 포장이나 분류작업을 거치지 않고 브레이크 벌크화물로 수작업 처리됐다. 보통 공장에서 화물을 차량에 실어 항만 인근의 창고로 옮긴 후 선박을 기다렸다. 선박이 도착하면 선체 측면에서 부두 노동자들이 화물을 포장했는데 포장과 크기가 다양하다 보니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없었다. 또 이 모든 과정이 여러 항만을 거쳐야 해서 선박의 운송지연이 불가피했다.

2.2. 말콤 맥린의 창안접기


해상운송의 '컨테이너화'를 생각해낸 것은 말콤 맥린이다. 그는 1935년 중고 트럭을 사서 화물운송사업에 뛰어들었는데, 트럭에 실은 화물을 선박에 그대로 옮겨 싣는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도 선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시도들은 있었다. 하부적재장치(undercarriage) 위로 끌어올려지는 화차를 사용한 모듈 간 운송이나 철도차량 등을 이용한 방법이다. 하지만 선적할 때 사람이 짐을 직접 포장해 날라야 한다는 한계는 여전했다.

말콤은 컨테이너를 규격화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 결과 물결 모양 주름이 잡힌 2.5mm 두께의 강철 컨테이너가 개발됐다. 규격은 길이 10ft(3m), 폭 8ft(2.4m), 높이 8ft(2.4m)였으며 상부 모서리마다 잠금 장치(twist lock)를 넣어 보관이 용이하도록 하고 크레인을 이용해 들어올릴 수 있도록 했다. 말콤은 이 디자인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는데, 이것이 해상용 컨테이너 국제 표준화의 시작이다.

말콤은 1952년 처음 규격화한 화물 용기를 만들었지만 효율성은 낮았다. 컨테이너가 화물선에 맞지 않아 배에 빈 공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자 은행에서 2200만 달러를 융자한다. 이 돈으로 'T2-Tanker'를 개조해 컨테이너를 적재하기 쉽도록 고쳤다.

이렇게 만들어진 배가 '아이디얼-X(ideal-X)'호다. 1956년 4월 26일 아이디얼-X호는 35피트 길이의 컨테이너 58대를 싣고 뉴욕에서 휴스턴가지 첫운항에 성공했다. 다만 이때까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으며 작은 기념식을 열었을 뿐이다.

2.3. 컨테이너 표준화접기


말콤은 운영 중이던 회사 이름을 시랜드 서비스(Sea Land Service)로 1960년 바꾼다. 1966년 4월에 226개의 컨테이너 적재가 가능한 풀 컨테이너선 페어랜드(Fairland)호를 북대서양 선로에 취항시켜 국제 근거리 수송을 시작했다. 컨테이너 전용선이 세계에서 국제항로에 처음 진출한 사례로 파장이 컸다. 재래항로의 컨테이너화가 개시된 시점이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해운사들은 컨테이너 스스템에 부정적이었다. 재래식으로 포장된 화물의 경우 크기나 무게, 그리고 취급주의가 필요한지 여부 등에 따라 비용이 크게 달라졌다. 화주가 비용을 투명하게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해운사로선 수지가 좋은 사업이었다. 선박의 컨테이너화가 달갑지 않았던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 1964년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면서 군수물자 운송이 필요해지자 컨테이너 해상운송은 다시 한번 전환점을 맞았다. 컨테이너의 구조, 관리 제도 측면에서 국제표준화의 필요성도 세계적 문제로 급부상했다. 결국 1961년 미 연방정부 교통부 해운국은 이사회를 열어 3m, 6m, 9m, 12m를 컨테이너 길이의 최종 표준으로 통과시켰고 1965년 국제표준화 기구 ISO(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는 6m(20피트), 12m(40피트) 길이의 컨테이너를 국제표준으로 제정했다.
40피트 규격의 컨테이너

컨테이너 표준화는 TEU를 표준 단위로 삼아 운임지급과 최대 적재 용적의 기준이 되면서 운송비 절감을 이끌었고 선박과 항구는 점차 커졌다. 덩달아 배가 항만에서 노는 시간이 짧아져 해운사들도 인건비를 아낄 수 있었다. 표준화 덕분에 기계화가 이뤄지면서 해상운송의 운송량은 5배 늘고 운송비는 60% 줄었다. 무역량 역시 급증했다.

3. 머스크의 합류



3.1. 에이드리언 머스크호 출항접기


머스크는 선박의 컨테이너화에 늦게 동참한 편이다. 컨테이너화가 이미 진행된 1960년대 중반, 머스크는 아직도 팰릿(Pallet)을 이용하는 재래선 방식에 머물러 있었다. 전환을 결정한 것은 창업주 A.P.묄러의 아들 매키니 묄러(Mærsk Mc-Kinney Møller)다. 매키니는 1965년 부친이 별세하자 회장으로 취임해 경영을 맡았다.

컨테이너화를 고민하던 매키니는 1971년 맥킨지에 컨설팅을 요청해 회사의 전망을 물었고 분산된 수익구조가 필요하다는 조언을 받았다. 이후 매키니는 1973년 첫 컨테이너선 '스벤보르그 머스크'호를 주문한다. 컨테이너선 시장 진출에 지나치게 막대한 투자가 필요할 것이란 내부 반발을 무릅썼다.

그리고 아시아와 미국 동부 해안을 잇는 컨테이너 정기선 서비스가 시작됐다. 1975년 9월 5일 '에이드리언 머스크(ADRIAN MÆRSK)'호가 385개의 컨테이너를 싣고 미국 엘리자베스항에서 출항한다. 해운 역사상 최초로 완전한 컨테이너 정기선 서비스가 시작된 기점이다. 정기선은 정해진 항구 사이를 정해진 일정에 따라 반복 운항하는 배를 말한다. 짐이 많든 적든 항해하므로 거대 자본이 필요했지만 매키니는 과감한 투자를 결정했다.
'ADRIAN MÆRSK'호의 모습

3.2. 선박 대형화접기


컨테이너선박의 대형화를 리드한 것 역시 머스크다. 2000년대 해운의 패러다임은 속도였으나 2008년 리먼 사태이후 유가가 치솟으며 대형화로 흐름이 바뀌었다. 선박 크기를 두배로 늘려도 건조나 연료, 운영비용이 두배로 뛰진 않았기 때문이다. 대형선을 띄우면 자연히 톤당 비용은 하락했다.

컨테이너 수송 초창기인 1960~1970년만 해도 가장 큰 배는 1700TEU급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머스크는 1996년 6600TEU급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을 건조, 2011년엔 1만8000TEU의 '트리플-E'급 선박을 무려 20척 발주했다. 결국 머스크는 선발주자인 미국 해운사들을 압도하고 컨테이너 무역의 지배자로 떠올랐다.

머스크는 2012년부터 시장선도적 지위에 대한 자신감으로 경쟁업체 대비 5% 이상의 영업이익률 차이를 목표로 하기도 했다. 실제로 2015년 상반기까지 이 같은 실적 차이는 계속됐고 때로는 9% 이상의 수익성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호황은 계속되지 않았다.

4. 해운시장 위기



4.1. 금융위기 발발접기


컨테이너 운송시장은 1960년대 처음 문이 열린 이후 근 50년간 해마다 최소 10%씩 성장했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불러온 대침체는 세계 무역에 엄청난 타격을 안겼다. 2008년 9월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신청은 세계금융권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건으로 번졌다. 금융시장의 정보비대칭성 문제로 세계금융권은 일시적 공황상태로 돌입했으며 무역금융도 직격타를 맞으면서 해상물동량이 급감했다.

2005년 이후 신조선 인도량이 2000만DWT를 넘은 것도 공급압력에 따른 시황 악화요인으로 작용했다. 2009년 역시 3700만DWT의 신조선이 인도된다. 공급이 넘치는 반면 물동량은 급감했으며, 회복도 지지부진한 상황이 수년간 이어졌다.

실제로 2008년 5월 20일 BDI(발틱운임지수, Baltic Dry Bulk Index)는 1만1793포인트였는데 하반기에는 663포인트로 급락했다. 세계 해운불황의 시작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운임수입 급감에 따라 선사들은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했다. 해상운임이 고점 대비 6분의 1 이하로 하락해 운임이 최소 운항비용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선박 운항 중단, 신조선 발주 취소 및 해운사 파산 등으로 확산됐다. 머스크는 해운시장의 고전에 조직 변신으로 대응했다.

4.2. 머스크의 전략 변화접기


머스크는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던 기업이다. 2000년 즈음만 해도 해운업 특유의 기질이 전반에 깔려 있었다. 본사 통제를 따르기보다 각국 지사장(Country Manager)이 자유롭게 움직였다. 강하고 모험적인 기업가들이 주를 이뤘고 웬만한 신규 사업엔 본사 허락도 요구되지 않았다. 자치권을 가진 영주가 지역마다 있는 것과 비슷했다. 대형선사 상당수가 마찬가지였다.

해운업이 끝 모르고 팽창하던 시기에는 이런 구조의 효용이 있었다. 과감하고 도전적인 리스크 테이킹이 빠른 성장을 가능케 했으며 설사 실패하더라도 보듬을 여유가 충분했다. 하지만 해운업이 성숙기에 다다르자 확장보다는 효율, 더 체계적 시스템이 필요해졌다.

머스크의 위기 감지는 다른 해운사들보다 앞섰다. 2004년 ‘스타라이트 작전(The Starlight Strategy)’을 감행했는데 17개 지역에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중앙 통제를 강화하려는 목적이었으나 결과적으론 지사장의 권한 축소와 다를 바 없이 흘러 반발에 부딪혔다.

대표적으로 스타라이트 전략은 비용절감 차원에서 지사장들에게 고객 규모에 따라 대우 조건에 차등을 두라고 요구했다. 어떤 면에선 전통과의 균열이었다. 머스크엔 고객에게 무조건 최고의 서비스만 제공한다는 암묵적 문화가 100년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Second to none(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이라는 말을 슬로건처럼 여기던 지사장들은 본사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았다. 보유한 권력을 빼앗기고싶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스타라이트는 무산됐다. 일종의 자치구역처럼 굳어진 지역 조직을 단번에 변화시키긴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논의는 사라지지 않고 이어졌다. 2008년 유사한 취지로 가동된 ‘스트림라인(StreamLINE)’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스타라이트는 실패했지만 이미 시작된 권력 갈등, 여기서 던져진 화두는 조직문화 전환에 대한 시대적 필요성을 깨닫게 했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컨테이너선 운영에서 머스크를 포함힌 15개 상장 선사의 실적을 종합해보면 총 88억4000만달러의 영업손실(operating loss)을 냈다. 반면 이 기간 머스크는 23억4600만달러의 흑자(operating profit)를 기록한다. 업무의 프로세스화, 의사결정 구조의 혁신에 성공한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4.3. 대형화의 후유증접기



문제는 머스크의 선대 확충이 글로벌 치킨게임을 촉발했다는 점이다. 규모의 경제를 이룬 머스크는 운임을 크게 내려 대형화 여력이 없는 선사들을 도태시키는 전략을 썼다. 자금이 있는 선사들은 경쟁적으로 큰 배를 사들였다. 이 방식은 해운시장에 공급과잉을 초래했으며 침체가 장기화된 2016년 기록적 불황이 찾아왔다.

2006년부터 2016년까지 컨테이너선 시장의 수요와 공급 현황을 분석해보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컨테이너선의 공급과잉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물동량이 감소했을뿐 아니라 신규 발주 선박이 매년 차례로 인도됐던 탓이다.

2015~2016년경 글로벌 선사들은 운임 회복을 위해 선박 공급 감소를 통한 운임 인상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일부 얼라이언스((Alliance)만 참여한 데다, 유럽 항로에서 가장 시장점유율이 높았던 2M 얼라이언스의 경우 선박 규모를 줄이는 것 외에는 적극으로로 투입 선박 감축을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5. 대형화 전략 멈춘 머스크



5.1. 확장의 끝과 물류 전환접기


그러나 대형화 전략은 계속될 수 없었다. 과거 머스크그룹은 해운업이 한창 호황이던 1990대 연쇄 인수합병(M&A)으로 덩치를 불렸다. 1993년 EAC-Ben 컨테이너라인을 인수해 대만선사 에버그린(Evergreen)을 제치고 세계 최대 선사의 위치를 차지했다.

1999년에도 머스크는 아프리카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사프마린, 미국 시랜드를 차례로 사들였다. 시랜드는 컨테이너를 처음 창안한 말콤 맥린이 세운 회사인데 결국 머스크에 흡수됐다. 지금의 머스크 시랜드(Maersk Sealand)다. 여기에 2005년 세계 3위 P&O네들로이드까지 합병하면서 머스크는 2위 MSC와의 격차를 두배 수준으로 훌쩍 벌렸다. 점유율 18%의 거대 해운사가 탄생한 순간이다.

선대 확장을 계속하던 머스크는 그룹이 기로에 선 2016년을 기점으로 전략을 선회한다. 이때까지 머스크는 해운과 함께 석유·가스사업을 병행하는 복합기업 형태를 띠었다. 본업이 침체하면 에너지 사업으로 메우고 저유가 기조에선 해운업이 수혜를 입으니 또 만회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2016년 이런 포트폴리오는 무용해졌다. 유가가 바닥을 찍는 와중에 해운업마저 기록적 불황에 빠졌기 때문이다. 해운과 에너지, 어느 것도 성공하지 못하면서 손익은 급감하고 주가도 급락했다.

경영진들은 전략을 선회할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운송·물류, 그리고 석유·가스 중 하나만 골라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봤으며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일산업은 피크가 가까웠고 머지않아 내리막이 눈에 보였던 반면, 무역은 머스크의 태생부터 DNA에 깊이 뿌리내려 있었다. 해운 대기업에서 종합 물류회사로 변신하겠다는 결정은 이때 내려졌다.

머스크는 2017년 유조선 계열인 머스크 탱커스(Maersk Tankers)를, 1년 뒤 머스크 오일(Maersk Oil)을 순차적으로 팔았다. 2019년에는 머스크 드릴링(Maersk Drilling)까지 매각했으며 이듬해 물류자회사인 담코와 머스크 물류부문을 통합한다. 투자 경향도 변화했다. 수익성이 우월한 '공장-창고(factory-to-warehouse)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 항구가 아닌 곳에서도 물류거점 확보에 애썼고 화주 다양화 차원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지출을 크게 늘렸다.

5.2. 머스크와 오너십접기


선택과 집중을 통해 '물류종합회사'로 변모하겠다는 머스크의 전략은 오너가족의 결단이 아니었더라면 밀어붙이기 어려웠을 계획이다. 머스크그룹은 그간 외견상 소유형태는 달라졌지만 소유권 자체가 흔들린 적은 없었다.

매키니 묄러(Maersk Mc-Kinney Moller) 회장은 1965년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뒤 38년간이나 회사를 직접 경영했다. 그러나 2003년 12월 제스 소더버그 전 CEO에게 자리를 넘긴다. 머스크그룹이 처음으로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한 때다. 다만 가족소유 재단(AP Moller Foundation)의 헤드 자리는 유지했다. 이 재단은 머스크 지분 41.51%(의결권 51.09%)를 가지고 있었다.

회사를 확고한 통제 하에 두려는 묄러 회장의 뜻은 다음 세대에서도 이어진다. 그의 딸 아네 우글라 AP묄러홀딩스(AP Moller Holding) 의장은 2013년 지주회사인 AP묄러 홀딩스를 설립, 재단이 가지고 있던 머스크 지분을 이전했다. 이로써 재단이 지주사 지분을 전부 보유하고, 지주사가 머스크를 거느리는 형태가 됐다.

현재 머스크는 회사 경영을 책임지는 '경영진 리더십 팀'과 감독업무를 하는 이사회로 구조가 이원화돼 있다. 이사회의 경우 2022 초까진 아네 우글라 AP묄러홀딩스 의장이 머스크에서 부의장을 담당하고 의장은 따로 두고 있었다.

하지만 2022년 아네 우글라 의장은 머스크 이사회를 떠나 지주사 의장직만 유지했다. 대신 아들 로버트 머스크 우글라(Robert Maersk Uggla, 사진)가 머스크 의장으로 선임되면서 기존의 짐 하게만 스나베 의장은 고문으로 물러났다. 승계와 함께 오너일가 통제력을 한층 단단히 한 셈이다. 로버트 우글라 의장은 2016년 9월부터 AP묄러홀딩스 CEO도 맡고 있다. 오너의 견고한 영향력 아래 머스크는 2015년 이후 컨테이너와 물류, 항만을 제외한 다른 사업을 차례로 정리해왔다.

5.3. 뒤바뀐 해운사 순위접기


머스크가 세계 최대 해운사라는 타이틀을 잃은 것도 이같은 전략 선회와 무관치 않다. 만년 2위였던 MSC는 2022년 머스크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선다. 여기엔 두 회사의 투자 방향이 달랐던 영향이 컸다.

2020년 팬데믹 영향으로 물동량이 급등하면서 선사들은 침체를 벗어나 거금을 벌어들인다. 다만 자금 사용처에 차이가 있었다. MSC는 약 2년간 중고선박을 포함해 100척이 넘는 배를 사들이고 90만TEU에 달하는 발주를 넣어 공격적으로 선복량을 불렸다. 과거 머스크가 먼저 불 붙였던 해운사들의 전통적인 투자방식이다.

반면 머스크는 선대를 4만TEU 늘리는 데 그쳤다. 대신 물류에 돈을 쏟아부었다. 해운뿐 아니라 육상과 항공까지 공급망 전체를 아우르는 수직 통합이 목적이었다. 머스크는 2019년 미국 세관통관기업 밴디그리프트(Vandegrift)에 투자한 뒤 미국 풀필먼트업체인 비저블SCM(Visible SCM), 포르투갈 물류 스타트업인 허브(HUUB) 등을 줄줄이 매입했다.

2022년 9월 홍콩 LF로지스틱스를 36억달러에 사들이기도 했다. 2023년 초엔 물류전문인 마틴 벤처그룹(Martin Bencher Group)과 그린드로드 로지스틱스(Grindrod Logistics)까지 인수했다.

또 이미 운영 중이던 항공 자회사 스타에어(Star Air)에 더해 독일 항공 화물업체인 세나토 인터내셔널(Senator International)을 추가로 손에 넣었다. 2022년 하반기부터는 스타에어 사업부문을 이관해 화물전용 항공사 '머스크 에어카고(Aircargo)'를 운영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물류 부문이 연간 매출에서 차지한 비중은 2022년 21% 정도까지 올랐다. 하지만 물류업체로 기반을 닦는 동안 해운없은 점유율 타격이 불가피했다.

이제 공급량 기준으로 업계 세 번째인 프랑스 CMA CGM이 머스크의 2위 자리마저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머스크는 414만 TEU 수준인 현재 공급량 이상으로 선대를 더 늘릴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보다 운영 중인 선박을 친환경 선박으로 대체하는 걸 우선하기 위해서다.

머스크는 종합 물류업체로 전환을 선언한 첫 해운사지만 MSC와 CMA CGM등 다른 유럽 해운사들도 점차 머크스에 합류하는 모습이다. CMA CGM의 경우 2021년 스페인 철도 운송사업에 진출했고 같은 해 항공 화물 자회사인 CMA CGM 에어카고를 설립했다. MSC는 다소 늦었으나 2022년 4월 볼로레 로지스틱스(Bollore Logistics)의 아프리카부문(BAL)을 62억달러 주고 인수하면서 머스크에 위협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5.4. 2M 동맹의 종료접기


해운사들은 서로 연합군을 만들어 경쟁해왔다. 동맹 가입 없인 사실상 국제노선 영업이 어렵고 지금도 세계 3대 얼라이언스(Alliance)가 주요 컨테이너 항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연합 결성이 사실상 생존을 위한 필수요건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세계 최대 해운동맹인 ‘2M’이 해체 결정을 내면서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2M은 머스크와 MSC로 이루어진 동맹이다. 머스크와 MSC는 2025년 1월을 마지막으로 2M의 관계를 끝내기로 합의했다고 2023년 초 밝혔다. 두 회사가 얼라이언스를 형성한 것은 2015년이다. 당시 10년간 협력하고 계약종료 2년 전에 연장여부를 정하기로 했는데 결별을 선택했다.

애초 둘의 계약은 불가피한 동맹이었다. 규모의 경제가 경쟁력의 핵심요건이던 과거 살아남기 위해선 손을 잡아야 했다. 동맹을 맺으면 전 세계로 가는 해운서비스 항로를 공유함으로써 더 많은 노선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건조비만 수천억원인 초대형 선박들을 함께 사용해 물류비를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M이 손을 잡았을 때는 머스크와 MSC가 2만TEU 이상급의 새로운 배들을 차츰 도입해야했던 시기다. 선복량을 유연히 관리해야 했기 때문에 동맹의 가치가 컸다. 하지만 이후 두 회사는 급격히 규모가 성장고 선복량 관리 시스템도 개선됐다. 연합이 가져오는 시너지의 필요성 역시 힘을 잃었다.

반면 전략과 비전의 불협화음은 갈수록 커졌다. 머스크는 2018년 ‘Stay Ahead(앞서가다)’ 정책을 발표하고 종합 물류회사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와 달리 MSC는 물류에 대한 투자에도 불구 여전히 해상 운송을 핵심사업으로 둔 상태다. 머스크가 물류회사를 줄줄이 사들이는 동안 MSC는 해상 운송을 두 배로 늘렸는데, 어찌보면 동맹을 깨기 위한 투자였다고도 할 수 있다.

더욱이 2M의 관계는 원래부터 견고하지 않았다. 2M의 정식 명칭이 사실 ‘2M VSA’라는데서 드러난다. VSA는 ‘선복공유협정(Vessel Sharing Agreement)’으로 얼라이언스에 비해 낮은 협력 단계를 의미한다. 머스크와 MSC가 주요 기간항로에서만 선복을 공유하고 있는 이유다. 동맹이 깨지는 것은 자연스런 수순이었던 셈이다.

업계에선 머스크와 MSC의 이별이 점진적으로 일어날 것이란 분석이다. 동맹이 끝나는 시점까지 서로 고객을 뺏으려고 물밑 대결이 일어날 수 있다. 결별의 방식을 떠나 2M의 해체는 시장집중도의 완화를 불러올 전망이다. 더 경쟁적인 시장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업황이 침체하고 있는 상황에서 불확실성이 높아진 셈이다.

6. 다시 가라앉는 해운업



6.1. 사그라진 코로나 호황접기


코로나19가 발발했을 때 해운업은 장기 침체로 허덕이고 있었다. 전 세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해운업에도 공급망 연쇄 충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런데 도리어 물동량이 급등하면서 시장은 유례없는 황금기를 누렸다. 하지만 2023년 들어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가 급락했으며 물량 확보 경쟁도 치열해치고 있다. 코로나가 이끌었던 호황을 더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실제로 조선해운분석기관 클락슨 리서치(Clarksons Research)에 따르면 2022년 연말 운임은 같은 해 고점보다 약 80%나 낮아졌으며 2023년에는 2010년대 평균 수준까지 떨어졌다.

또 선박 중개업체 브리마르(Braemar)는 2023년 상반기 신조 선박 인도량이 이미 기록적인 수준이었으며 연간 전체 인도 규모는 230만TEU로 증가, 2024년 또 290만TEU가 추가될 것으로 예상했다. 사상 최고 수치인 데다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연간 선박 인도량의 2배를 넘는다. 수요는 약해졌는데 공급만 끊임없이 불어나는 불균형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공급과잉으로 인한 충격이 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이며 향후 컨테이너 시장의 구조적인 약세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이미 머스크는 2022년부터 불황을 경고했다. 해상 운송량이 차츰 감소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갇혀 있던 시기 소비자들은 TV와 책상, 소파 등 부피가 큰 제품을 연이어 샀다. 그러나 이 제품들은 일단 구매하면 몇 년은 바꿀 필요가 없어진다. 머스크는 물동량 감소를 소비자들이 전처럼 많은 돈을 지출하지 않을 것이란 신호이자 화주들이 이미 재고를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실제로 머스크는 2023년 2분기 매출로 129억달러, 상각전영업이익(EBITDA) 29억달러, 세전영업이익(EBIT) 16억달러를 기록했다. 2022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40%와 72%, 82%가 급감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2분기 실적을 크게 웃돌긴 했으나 2022년과 비교하면 가파른 하락세로 바뀌었다.

2023년 8월 머스크는 연간 실적 가이던스로 EBIT 35억~50억달러와 EBITDA 95억~110억달러를 제시, 지난 발표보다 하한선을 15억달러씩 상향 조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적 전망을 올려잡은 것은 업황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비용관리 의지에서 나왔다. 머스크의 빈센트 클럭(Vincent Clerc) 최고경영자(CEO)는 2023년 8월 컨퍼런스콜에서 "시장 침체는 올해 말까지 이어질 것이고 대응을 위해선 비용 통제가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6.2. 선사 공동행위 규제접기


컨테이너선 시장의 또다른 불확실성 요소로 얼라이언스에 대한 규제 가능성이 꼽힌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의회 연설 등을 통해 운임 폭등, 그리고 선사들의 막대한 이익이 미국 수출입 물류에 어려움을 가중시켰다고 여러 번 지적했었다. 2022년에는 컨테이너 정기선사의 공동행위를 더이상 허용하지 않겠다는 ‘외항반독점강제법(Ocean Shipping Antitrust Enforcement Act)’이 제출됐으며 같은 이름의 법률이 2023년에도 미국하원에 제출됐다.

선사 공동행위 제한의 가장 큰 쟁점은 ‘선박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컨소시엄 또는 얼라이언스를 어느 수준까지 허용할 것인가’로 볼 수 있다. 컨소시엄의 경우 선박의 적재공간 또는 선박 자체를 공동으로 사용하는 사업행위가 특정 항로에 제한된다면, 얼라이언스는 여러 항로에 걸쳐 컨소시엄 형태의 협력이 이뤄지는 형태의 동맹이다. 얼라이언스 자체가 미국이나 EU에서 금지될 경우 글로벌 컨테이너 해운산업은 M&A를 통해 선사들이 대형화되는 큰 변화가 불가피할 수 있다.
  • [1] 컨테이너화되지 않고 재래 정기선에 의하여 운송되는 화물이다
  • [2]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맥스턴에서 1913년 태어났다. 집안이 어려워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고 고등학교 졸업 이후 중고 트럭을 사서 트럭회사를 차렸다.
  • [3] 2차 세계대전에 사용됐던 유조선이다
  • [4] 말콤은 기존 부두용 대형 크레인에 매달린 집게발과 스프레더로 컨테이너들을 트레일러 트럭에서 집어 올려 바로 배 위에 실었다.
  • [5] 미국은 육상운송업체와 계약을 체결하고 베트남 남부 캄란베이에 컨테이너항을 건설했다. 또 베트남에서 돌아오는 빈 컨테이너를 활용해 일본, 홍콩 등을 거쳐 화물을 실었다. 이에 따라 1965년부터 1968년까지 절감된 경비는 총 8억8200만 달러에 이른다. 이후 전세계 미군들은 컨테이너를 사용하게 됐다.
  • [6] 정기선의 해상운임은 기준에 따라 4가지로 분류한다. 선불운임과 후불운임, 부과방법, 선내 사역비 부담 여부 등이다.
  • [7] 대우조선해양에 발주해 2013~2015년 인도받았으며 척당 가격이 1억8500만달러인 대규모 투자였다.
  • [8] 앞서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만해도 해운시황의 국지적 예외변수로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주요 원자재 및 철강제품의 물동량은 계속 증가세를 이어 갔고, 이는 2008년 5월 역사적 초호황으로까지 이어졌다.
  • [9] 발틱운임지수는 석탄, 철광석, 시멘트, 곡물 등 원자재를 싣고 26개 주요 해상운송경로를 지나는 선적량 15천 톤 이상 선박의 화물운임과 용선료 등을 종합해 산정하는 지수다. 배들이 원자재를 얼마나 많이 싣고, 얼마나 자주 돌아다니는지를 알려준다.
  • [10] 2016년 상하이 컨테이너 운임지수(SCFI)는 400포인트로 사상 최저를 찍었다.
  • [11] 당시 묄러 회장은 경영진 50여명을 집으로 초대해 "나는 다리를 떠나지만, 내 오두막은 남겨둡니다"라고 말했다. 경영권을 내려놓되, 가족소유 재단(AP Moller Foundation)에 대한 영향력은 그래도 두겠다는 의미였다.
  • [12] 업계 선두가 바뀐 것은 29년 만이었다. 2023년 선복량 기준으로 순위를 보면 MSC 1위, 머스크 2위, 3위 CMA CGM 등을 차지했고 COSCO와 하팍로이드, 에버그리라인 등이 뒤를 따랐다.
  • [13] BAL은 AGL(Africa Global Logistics)로 브랜드를 변했으며 49개국에 2만1000명의 맨파워를 보유, 물류 및 해양기관 250개를 관리한다.
  • [14] 일각에선 연합 파기를 MSC가 시작했을 것으로 보지만 머스크도 동행은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머스크의 빈센트 클럭 최고경영자(CEO)는 2023년 2월 컨퍼런스 콜에서 “전통적 해운사를 넘어서 ’엔드 투 엔드(end to end)’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서비스 수준에 대한 강력한 컨트롤을 유지해야 하며, 동맹 구조로는 이를 달성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 [15] 공동운항에 투입하는 선대의 비중을 봐 각각 머스크는 39%, MSC는 24%에 불과해 여타 얼라이언스들보다 현저히 소극적이었다.
  • [16] 2022년 11월 머스크는 트레이딩 업데이트를 통해 "지난 3개월 운임이 피크를 찍은 뒤로 수요가 줄고 공급망 이슈가 해소되면서 운임도 정상화되기 시작했다"며 "우크라이나 전쟁과 유럽 에너지위기,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해 다가올 경기침체가 소비자 구매력을 약하게 할 것이고 결국 글로벌 운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분석의 여파로 머스크 주가가 7% 이상 미끄러지기도 했다.
  • [17] 백악관과 미국 의회는 컨테이너 선사의 공동행위를 제한하기 위한 행보를 지속적으로 보여왔다. 2022년 미국 수출품에 대한 운송거부를 금지하는 외항해운개혁법(OSR, Ocean Shipping Reform Act)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컨테이너 지체요금 등이 불합리하게 부과되는 것을 제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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