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는 세계 무역에 대변혁을 가져온 발명품이다. 애초 해상운송은 고비용인 데다 비효율적 수단이었다. 화물 종류가 제각각이라 짐을 선적하고 내리는 데 운송과 비슷한 시간이 걸렸으며 화물의 분실이나 파손도 잦았다.
하지만 컨테이너선이 등장하면서 해상운송은 빠르고 저렴해졌고 무역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찾아왔다. 이때 선박의 대형화를 주도하면서 컨테이너선 시장의 압도적 강자로 떠오른 것이 머스크(Maersk)다.
해당 문서는 컨테이너선 시장이 개척된 배경, 이 과정에서 머스크의 행보와 그 행보가 시장에 미친 영향을 통합적으로 다룬다.
2.1. '노동집약' 재래선펼쳐보기 접기
컨테이너선이 생기기 전까지 거의 모든 화물은 부두 노동자가 등짐으로 옮겼다. 당시 화물은 주로 석탄이나 곡류였는데 따로 포장이나 분류작업을 거치지 않고 브레이크 벌크화물로 수작업 처리됐다. 보통 공장에서 화물을 차량에 실어 항만 인근의 창고로 옮긴 후 선박을 기다렸다. 선박이 도착하면 선체 측면에서 부두 노동자들이 화물을 포장했는데 포장과 크기가 다양하다 보니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없었다. 또 이 모든 과정이 여러 항만을 거쳐야 해서 선박의 운송지연이 불가피했다.
3.2. 선박 대형화펼쳐보기 접기
컨테이너선박의 대형화를 리드한 것 역시 머스크다. 2000년대 해운의 패러다임은 속도였으나 2008년 리먼 사태이후 유가가 치솟으며 대형화로 흐름이 바뀌었다. 선박 크기를 두배로 늘려도 건조나 연료, 운영비용이 두배로 뛰진 않았기 때문이다. 대형선을 띄우면 자연히 톤당 비용은 하락했다.
컨테이너 수송 초창기인 1960~1970년만 해도 가장 큰 배는 1700TEU급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머스크는 1996년 6600TEU급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을 건조, 2011년엔 1만8000TEU의 '트리플-E'급 선박을 무려 20척 발주했다. 결국 머스크는 선발주자인 미국 해운사들을 압도하고 컨테이너 무역의 지배자로 떠올랐다.
머스크는 2012년부터 시장선도적 지위에 대한 자신감으로 경쟁업체 대비 5% 이상의 영업이익률 차이를 목표로 하기도 했다. 실제로 2015년 상반기까지 이 같은 실적 차이는 계속됐고 때로는 9% 이상의 수익성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호황은 계속되지 않았다.
6.2. 선사 공동행위 규제펼쳐보기 접기
컨테이너선 시장의 또다른 불확실성 요소로 얼라이언스에 대한 규제 가능성이 꼽힌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의회 연설 등을 통해 운임 폭등, 그리고 선사들의 막대한 이익이 미국 수출입 물류에 어려움을 가중시켰다고 여러 번 지적했었다. 2022년에는 컨테이너 정기선사의 공동행위를 더이상 허용하지 않겠다는 ‘외항반독점강제법(Ocean Shipping Antitrust Enforcement Act)’이 제출됐으며 같은 이름의 법률이 2023년에도 미국하원에 제출됐다.
선사 공동행위 제한의 가장 큰 쟁점은 ‘선박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컨소시엄 또는 얼라이언스를 어느 수준까지 허용할 것인가’로 볼 수 있다. 컨소시엄의 경우 선박의 적재공간 또는 선박 자체를 공동으로 사용하는 사업행위가 특정 항로에 제한된다면, 얼라이언스는 여러 항로에 걸쳐 컨소시엄 형태의 협력이 이뤄지는 형태의 동맹이다. 얼라이언스 자체가 미국이나 EU에서 금지될 경우 글로벌 컨테이너 해운산업은 M&A를 통해 선사들이 대형화되는 큰 변화가 불가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