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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의 난' 진압해온 금호석화, 올해 유독 긴장한 이유는

차파트너스 손잡은 박철완 전 상무, 정부 '밸류업' 기조 편승해 압박

정명섭 기자  2024-03-07 15:4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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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는 정부의 '밸류업' 정책과 맞물려 한국형 행동주의가 그어느때보다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작게는 주주환원 확대부터 크게는 경영권 변화로 기업가치를 제고하라는 목소리를 내놓는다. 그만큼 기업들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평가는 밸류업과 기업 사냥꾼으로 엇갈리지만, 인식과 관계없이 기업도 만반의 방어책을 구축해야할 때가 왔다. 더벨이 국내 기업에 미치는 행동주의 펀드들의 움직임을 짚어보고 기업 전략을 살펴본다.
2021년 시작된 박철완 금호석유화학 전 상무의 '조카의 난'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3년간 사내이사·사외이사 추천, 배당정책 확대, 자사주 소각 등의 안건을 꾸준히 제안했지만 표 대결에서 번번이 패했다.

박 전 상무의 올해도 어김없이 주주제안에 나섰다. 자사주 전량 소각, 사외이사 추천 등이 골자다. 다른 점이 있다면 행동주의펀드인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이하 차파트너스)과의 동맹이다. 이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는 정부의 기조에 맞춰 주주환원을 강화하라고 금호석화를 압박하고 있다. 표심 결집을 위해 경영권 분쟁 색채는 지웠다.

이전과 다른 분위기에 금호석화는 대응 강도를 높이고 있다. 주총을 앞두고 장기 보유했던 자사주의 절반을 선제적으로 매각하는 안을 발표했다. 차파트너스 주장에 장문의 반박 자료를 내는 등 주주 설득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조카의 난' 발단된 2020년 정기인사

박 전 상무는 고(故) 박정구 전 금호그룹 회장의 장남이다. 박찬구 금호석화 회장과는 삼촌-조카 관계다.

그가 금호석화를 상대로 주주제안에 처음 나선 시기는 2021년 초다. 당시 박 전 상무는 박 회장과 묶인 지분 공동 보유 및 특수관계를 해소했다. 이후 본인을 사내이사로 추천하고 배당을 확대하는 안건을 제안했다. 박 회장과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놓고 다툰 '형제의 난'이 벌어진 지 약 10년 만에 조카의 난이 벌어진 셈이다.


이 또한 이면에는 경영권 승계가 있었다. 금호석화는 2020년 5월 정기인사에서 박 회장의 장남인 박준경 사장이 당시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반면 박 전 상무는 승진 명단에서 제외됐다. 금호석화의 최대 주주인 박 전 상무 입장에선 탐탁지 않은 결과였다. 그는 2002년 별세한 박정구 회장의 지분을 상속받았다. 이후 추가로 지분을 매입해 오너가 중 지분(10%)이 가장 많았다.

2021년 정기주총은 박 회장의 압승으로 끝났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금호석화 2대 주주 국민연금(당시 지분 8.25%)이 박 회장 측의 손을 들어줬다. 박 전 상무는 이후 '충실 의무 위반' 등의 이유로 금호석화에서 해임됐다.

박 전 상무는 2022년 주총에서도 배당 수준과 사외이사 선임, 감사위원 선임 등을 놓고 금호석화와 다시 표 대결을 벌였으나 안건이 모두 부결돼 두 번째 패배를 맛봤다. 이번에도 국민연금은 박 회장 편에 섰다.

국민연금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금호석화가 제시한 배당 안건이 더 적정한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이사회 교체와 관련해선 국민연금 측의 입장이 밝혀지지 않았다. 일각에선 국민연금이 회사 경영의 불확실성이 커질 것을 우려한 소액주주들을 의식했다고 해석했다.

금호석화는 그해 7월 임시주총을 열어 박준경 사장(당시 부사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을 처리해 사실상 경영권 분쟁은 일단락됐다. 박 전 상무는 예상대로 반대표를 행사했지만 전체 의결권 지분 가운데 반대표는 단 1%에 그쳤다.

◇행동주의펀드 가세...'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움직임 새로운 변수로

박 전 상무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건 올해 2월이다. 이번에는 차파트너스라는 우군과 함께 등장했다. 전략도 달라졌다. 경영권 확보 대신 주주가치 제고를 앞세웠다. 국민연금 외에도 외국인과 소액주주의 표심을 겨냥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차파트너스의 주주제안을 보면 △자사주 정관 변경 △자사주 전량 소각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1명 추천이다. 금호석화 이사회가 총 10명으로 구성되는 점을 고려하면 경영권에 위협이 되는 제안으로 보긴 어렵다.


올 들어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강조하고 있어 이번에는 박 전 상무 측의 전략이 통할 가능성이 있다. 국민연금은 정부 기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동안 금호석화 측에 손을 들어줬지만 주주환원 강화만 놓고 보면 이전과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정부는 현재 자사주 소각 기업에 세제혜택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근간에는 자사주가 대주주 지배력을 강화하는 편법에 동원되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7일 기준 국민연금의 금호석화 지분은 9.27%다. 박 회장 측 지분은 15.89%, 박 전 상무와 차파트너스 측 지분은 10.88%로 약 5%포인트 수준이라 국민연금이 주총에서 어느 편에 서는지가 중요하다.

◇장기 보유 자사주 소각 시작, 주주환원책 진일보...표심 공략 나선 금호석화

금호석화는 과거와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에 긴장하고 있다. 이에 지난 6일 정기 주총 소집공고 공시와 함께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발표했다. 보유 자사주의 절반인 262만4417주(약 3800억원 규모)를 2026년까지 3년간 단계적으로 소각하는 게 골자다.

주총이 열리기 전인 이달 20일에 먼저 87만5000주를 소각한다. 오는 13일부터 총 5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추가로 매입해 이사회 결의를 거쳐 전량 소각하는 안도 내놓았다.

자사주 전량 소각을 내건 박 전 상무와 차파트너스의 제안보다는 낮은 수준이지만 20년 이상 장기 보유한 자사주를 본격적으로 매각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주주환원책이라는 평가다.

금호석화는 동시에 홈페이지에 차파트너스 제안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자료를 게재했다. 자사주 전략적 활용의 필요성, 주가 수준, 회사의 중장기 성장 가능성, 이사회의 독립성, 사측 사외이사의 적격성 등을 총 8페이지에 걸쳐 나열했다.

금호석화는 2021년 주총 전에도 이같은 설명자료를 낸 적이 있으나 올해는 차파트너스 입장을 하나하나 반박하다 보니 분량이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차파트너스 측은 "주주제안 캠페인에 대응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라고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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