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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건 관련기사
국내 최초 전선기업 대한전선의 85년
최초 문서 작성일: 2026년 10월 1일 [$개요] 전후 복구 사업이 한창이었던 1955년 국내에선 전력망과 통신망 수요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한국 최초 전선회사인 대한전선이다. 대한전선의 역사는 1941년 일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기도 시흥군 동면 독산리에 조선전선이 들어섰다. 현재의 서울 금천구 독산동 일대다. 인송 설경동 회장은 1955년 조선전선을 인수하면서 지금의 대한전선을 만들었다. 설경동 회장이 처음부터 전력 기기 사업을 한 것은 아니었다. 평안북도 철산 출신의 그는 열다섯살 때 곡물 도매 사업을 시작했고 함경북도 청진에서는 수산업을 했다. 특히 청진에선 정어리를 잡아 가공하는 사업을 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어선 70여 척을 보유할 정도로 사업이 성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부터 사업수완이 상당했다. 해방 ...
안상민 기자
한미반도체의 46년
최초 문서 작성일: 2026년 9월 28일 [$개요] 국내 반도체 산업이 막 태동하던 1980년. 장비는 외국에서 사오는 것이 당연했다. 이 불모지에서 후공정 장비 국산화에 뛰어든 1세대 기업이 한미반도체다. 모토로라 출신 엔지니어 고(故) 곽노권 창업주는 1980년 한미금형을 세웠다. 금형에서 자동화 장비로, 다시 비전 플레이스먼트와 고대역폭메모리(HBM)용 열압착(TC) 본더로 주력 제품을 바꿨다. 경영은 아들 곽동신 회장에게로 넘어갔다. 아버지가 반도체 장비 한 우물에 집중했다면 아들은 본업을 챙기면서도 여러 분야에서 재능을 드러냈다. HPSP 투자로 '투자의 귀재'라는 평가를 받았고 미술 작가로도 데뷔했다. 창업주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한미반도체의 역사에 색을 더했다. 이 문서는 한미금형 설립부터 주요 제품의 개발 과정, 창업주에...
이세연 기자
NH투자증권의 역사
최초 문서 작성일: 2026년 9월 18일 [$개요] NH투자증권은 6번 이름이 바뀌었다. 1969년 손해보험사들이 공동출자해 세운 한보증권으로 출발한 뒤 대보증권·럭키증권·LG증권·LG투자증권·우리투자증권을 거쳐 지금의 이름에 이르렀다. 사명이 바뀐 것이 여섯 번, 대주주가 바뀐 것이 세 번이다. 주인이 바뀐 계기는 매번 달랐다. 1983년에는 럭키금성그룹이 증권업에 진출하려 했고 2004년에는 LG그룹이 카드 사태로 금융업에서 철수해야 했다. 2014년에는 우리금융지주가 공적자금을 갚기 위해 계열사를 내놔야 했다. 회사가 잘못해서 팔린 적은 없다. 늘 대주주 쪽 사정이었다. 여기에 또 하나의 계보가 겹친다. 농협은 2014년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하기 전에 이미 증권사를 갖고 있었다. 2006년 세종증권을 ...
김태영 기자
5평 창고에서 시작한 콜마 36년 승부수
[$개요] 2026년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공시대상기업집단[*공시대상기업집단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자산총액 5조원 이상 기업집단을 말한다. 이 기준을 넘으면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규제와 대규모 내부거래 공시 의무 등을 적용받는다.] 명단에 낯선 이름 하나가 올랐다. 콜마그룹. 공정자산총액 5조2430억원, 재계 서열로 대기업 반열에 새로 이름을 올린 그룹의 동일인[*동일인은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 또는 법인을 가리키는 공정거래법상 개념이다.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매년 친족과 계열사 현황을 신고해야 하는 등 별도의 공시·신고 의무를 진다.]은 윤상현 부회장이었다. 화장품 위탁개발생산(ODM) 회사로 출발한 지 36년 만이다. 같은 해 5월에는 또 다른 뉴스가 나왔다. 창업주 윤동한 회장이 장남 윤상현 부회장을 상대로 냈던 주식반환청구...
김예린 기자
단자회사에서 종합금융그룹까지, 하나금융 55년
[$개요] "작지만 좋은 은행" 1997년 하나은행이 내세운 지향점이었다. 은행업에 진입한 지 6년, 총수신은 15조원을 넘어섰지만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은행이 주도하던 판에서는 여전히 작은 은행이었다. 규모 경쟁을 피하고 수익성과 고객 만족으로 승부하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다가온 외환위기가 판을 뒤집었다. 정부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8%를 채우지 못하는 은행을 퇴출하겠다고 했다. 이 때 조·상·제·한·서의 시대가 막을 내리기 시작했고 규모가 작았던 하나은행은 반대로 살아남는 쪽에 속했다. 하나은행은 1998년 충청은행, 1999년 보람은행, 2002년 서울은행까지 세 번의 인수합병을 통해 시중은행으로 성장했다. 충청권에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했고 대...
노윤주 기자
STX그룹의 흥망성쇠
최초 문서 작성일 : 2026년 8월18일 [$ 개요] 2000년대 초에서 201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STX라는 이름은 국내 산업계에서 굉장한 파급력을 지녔다. 전문경영인 출신 오너 강덕수 회장이 자본의 세습 없이 재계 순위 10위권의 그룹을 일궈내고 그 그룹이 한순간에 해체되는 10여년의 과정은 태양을 향해 날다 추락한 이카로스의 이야기를 연상케 한다. 시간이 흐른 지금 STX그룹은 대한민국 기업 역사의 반면교사로 남았다. 오너의 전략적 오판, 잘못된 지배구조 및 포트폴리오의 설계, 과도한 차입 경영, 도덕적 해이 등 기업을 몰락에 이르게 하는 여러 요인들이 STX그룹에 모두 있었다. STX그룹이 짧게나마 발산한 광채가 강렬했던 것도 엄연히 사실이다. 그룹이 전성기에 이르기까지 강덕수 회장이 인수합병(M&A) 전략을 통해 보여준 혜안까지 저평가될 ...
강용규 기자
KB금융, 리딩금융그룹이 되기까지
[$개요] "은행이 너무 많다" 2000년 5월, 이기호 대통령 경제수석은 국내 은행 수가 너무 많다며 통폐합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꺼냈다. 같은 해 11월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시중은행장들을 불러 모아 우량은행 간 합병을 직접 촉구했다. 지금 우량은행이라고 해서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경고였다. 12월 7일 이근영 위원장은 한 발 더 나갔다. 세계 100위권 안에 드는 대형 은행이 최소 두 개는 있어야 한다며,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합병안을 내놓지 않으면 정부가 밀어붙이겠다고 했다. 시장은 이 발언을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 예고로 받아들였다. 두 은행은 외환위기에서 살아남은 대표 우량은행이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정부가 구상한 '메가뱅크'의 후보로 지목됐다. 이듬해 두 은행은 하나가 됐다. 오늘의 KB금융이...
조은아 기자
커피믹스 왕좌 오른 동서식품 성장사
최초 문서 작성일: 2026년 8월 3일 [$개요] 동서식품이 커피믹스를 출시한 지 올해로 50년이 됐다. 원두커피가 일상으로 자리 잡은 지금도 하루 약 2200만잔의 커피믹스가 팔린다. 한 해 판매량만 약 80억잔 분량에 달한다. 커피를 마시는 방식은 달라졌지만 커피믹스 왕좌는 흔들리지 않았다. 동서식품의 출발점은 인스턴트커피의 국내 생산이었다. 수입 완제품과 미군 보급품이 비공식 경로로 유통되던 시절 수입 원두를 들여와 인스턴트커피를 국내에서 직접 만들겠다는 의지로 생산 기반을 마련했다. 1976년에는 커피, 크리머, 설탕을 한 봉지에 담은 '맥스웰하우스 커피믹스'를 세계 최초로 선보이며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시장을 선점했다는 이유만으로 반세기 동안 1위를 지켰다고 설명할 수 없다. 1989년 네슬레가 '테이스터스 초이스'...
유영진 기자
100년 기업 유한양행
최초 문서 작성일: 2026년 7월 30일 [$개요] 연 매출 2조원 돌파, 국내 최초 미국 식품의약국(FDA) 항암 신약 승인, 반세기가 넘는 전문경영인 중심의 선진 지배구조 확립, 국내 1위 제약사 입지를 구축한 유한양행을 수식하는 성과들이다. 유한양행 100년 역사의 산물이다. 유한양행은 1926년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던 척박한 조선에서 오직 "보건 주권을 되찾고 우리 동포에게 가장 좋은 약을 공급하겠다"는 청년 유일한 박사의 신념 하나로 출발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국내 의약품 국산화의 기틀을 닦고 한국 기업 역사상 가장 투명한 지배구조와 사회환원의 구조를 확립했다. 유한양행의 창업이념은 미국에서 성공한 한인 사업가의 과감한 전 재산 투입과 민족을 향한 애국심이 근간이 됐다. 창업주 유일한 박사는 사기업의 사...
이기욱 기자
네이버 M&A 27년 역사
최초 문서 작성일: 2026년 6월 4일 [$개요] 1999년 검색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네이버는 주로 인수합병(M&A)을 통해 국내 최대 인터넷 플랫폼으로 성장했다.[*이해진 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은 1990년대 중반 '한국형 검색엔진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네이버를 창업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와 KAIST 전산학 석사를 거쳐 삼성SDS에 재직했다. 사내벤처로 검색엔진 기 '웹글라이더'를 개발한 경험이 있다. 네이버컴 설립 자본금은 약 5억원 수준이었다.] 네이버는 매 시기 전혀 다른 회사를 인수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면에는 일관된 전략이 존재한다. 검색 이용자를 오래 머물게 할 서비스를 비롯해 플랫폼 경쟁력을 높일 기술, 글로벌 확장을 가능하게 할 네트워크, 이용자 데이터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 생태계를 확보...
이돈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