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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건 관련기사
단자회사에서 종합금융그룹까지, 하나금융 55년
[$개요] "작지만 좋은 은행" 1997년 하나은행이 내세운 지향점이었다. 은행업에 진입한 지 6년, 총수신은 15조원을 넘어섰지만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은행이 주도하던 판에서는 여전히 작은 은행이었다. 규모 경쟁을 피하고 수익성과 고객 만족으로 승부하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다가온 외환위기가 판을 뒤집었다. 정부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8%를 채우지 못하는 은행을 퇴출하겠다고 했다. 이 때 조·상·제·한·서의 시대가 막을 내리기 시작했고 규모가 작았던 하나은행은 반대로 살아남는 쪽에 속했다. 하나은행은 1998년 충청은행, 1999년 보람은행, 2002년 서울은행까지 세 번의 인수합병을 통해 시중은행으로 성장했다. 충청권에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했고 대...
노윤주 기자
STX그룹의 흥망성쇠
최초 문서 작성일 : 2026년 8월18일 [$ 개요] 2000년대 초에서 201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STX라는 이름은 국내 산업계에서 굉장한 파급력을 지녔다. 전문경영인 출신 오너 강덕수 회장이 자본의 세습 없이 재계 순위 10위권의 그룹을 일궈내고 그 그룹이 한순간에 해체되는 10여년의 과정은 태양을 향해 날다 추락한 이카로스의 이야기를 연상케 한다. 시간이 흐른 지금 STX그룹은 대한민국 기업 역사의 반면교사로 남았다. 오너의 전략적 오판, 잘못된 지배구조 및 포트폴리오의 설계, 과도한 차입 경영, 도덕적 해이 등 기업을 몰락에 이르게 하는 여러 요인들이 STX그룹에 모두 있었다. STX그룹이 짧게나마 발산한 광채가 강렬했던 것도 엄연히 사실이다. 그룹이 전성기에 이르기까지 강덕수 회장이 인수합병(M&A) 전략을 통해 보여준 혜안까지 저평가될 ...
강용규 기자
KB금융, 리딩금융그룹이 되기까지
[$개요] "은행이 너무 많다" 2000년 5월, 이기호 대통령 경제수석은 국내 은행 수가 너무 많다며 통폐합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꺼냈다. 같은 해 11월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시중은행장들을 불러 모아 우량은행 간 합병을 직접 촉구했다. 지금 우량은행이라고 해서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경고였다. 12월 7일 이근영 위원장은 한 발 더 나갔다. 세계 100위권 안에 드는 대형 은행이 최소 두 개는 있어야 한다며,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합병안을 내놓지 않으면 정부가 밀어붙이겠다고 했다. 시장은 이 발언을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 예고로 받아들였다. 두 은행은 외환위기에서 살아남은 대표 우량은행이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정부가 구상한 '메가뱅크'의 후보로 지목됐다. 이듬해 두 은행은 하나가 됐다. 오늘의 KB금융이...
조은아 기자
커피믹스 왕좌 오른 동서식품 성장사
최초 문서 작성일: 2026년 8월 3일 [$개요] 동서식품이 커피믹스를 출시한 지 올해로 50년이 됐다. 원두커피가 일상으로 자리 잡은 지금도 하루 약 2200만잔의 커피믹스가 팔린다. 한 해 판매량만 약 80억잔 분량에 달한다. 커피를 마시는 방식은 달라졌지만 커피믹스 왕좌는 흔들리지 않았다. 동서식품의 출발점은 인스턴트커피의 국내 생산이었다. 수입 완제품과 미군 보급품이 비공식 경로로 유통되던 시절 수입 원두를 들여와 인스턴트커피를 국내에서 직접 만들겠다는 의지로 생산 기반을 마련했다. 1976년에는 커피, 크리머, 설탕을 한 봉지에 담은 '맥스웰하우스 커피믹스'를 세계 최초로 선보이며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시장을 선점했다는 이유만으로 반세기 동안 1위를 지켰다고 설명할 수 없다. 1989년 네슬레가 '테이스터스 초이스'...
유영진 기자
100년 기업 유한양행
최초 문서 작성일: 2026년 7월 30일 [$개요] 연 매출 2조원 돌파, 국내 최초 미국 식품의약국(FDA) 항암 신약 승인, 반세기가 넘는 전문경영인 중심의 선진 지배구조 확립, 국내 1위 제약사 입지를 구축한 유한양행을 수식하는 성과들이다. 유한양행 100년 역사의 산물이다. 유한양행은 1926년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던 척박한 조선에서 오직 "보건 주권을 되찾고 우리 동포에게 가장 좋은 약을 공급하겠다"는 청년 유일한 박사의 신념 하나로 출발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국내 의약품 국산화의 기틀을 닦고 한국 기업 역사상 가장 투명한 지배구조와 사회환원의 구조를 확립했다. 유한양행의 창업이념은 미국에서 성공한 한인 사업가의 과감한 전 재산 투입과 민족을 향한 애국심이 근간이 됐다. 창업주 유일한 박사는 사기업의 사...
이기욱 기자
네이버 M&A 27년 역사
최초 문서 작성일: 2026년 6월 4일 [$개요] 1999년 검색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네이버는 주로 인수합병(M&A)을 통해 국내 최대 인터넷 플랫폼으로 성장했다.[*이해진 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은 1990년대 중반 '한국형 검색엔진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네이버를 창업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와 KAIST 전산학 석사를 거쳐 삼성SDS에 재직했다. 사내벤처로 검색엔진 기 '웹글라이더'를 개발한 경험이 있다. 네이버컴 설립 자본금은 약 5억원 수준이었다.] 네이버는 매 시기 전혀 다른 회사를 인수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면에는 일관된 전략이 존재한다. 검색 이용자를 오래 머물게 할 서비스를 비롯해 플랫폼 경쟁력을 높일 기술, 글로벌 확장을 가능하게 할 네트워크, 이용자 데이터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 생태계를 확보...
이돈섭 기자
KAI 출범과 성장 그리고 민영화
최초 문서 작성일: 2026년 5월 19일 [$개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2026년 연간 매출 5조7000억원, 신규 수주 10조원을 목표치로 제시하며 창사 이래 최대 호황기를 누리고 있다. 폴란드로 향한 FA-50이 하늘을 가르고 국산 4.5세대 전투기 KF-21은 본격적인 양산 단계에 진입했다. 현재 누적 수주잔고는 27조원에 육박한다. 그러나 화려한 성과를 낳기까지 KAI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27년 전 외환위기 속 출범 비화를 짚어보아야 한다. KAI는 특정 오너가의 자발적인 설립이 아닌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 결과물로 출범한 회사였다. 여기에 한국수출입은행(26%), 국민연금(8%) 등이 대주주로 있는 지분 구조로 정권 교체기마다 기존 대표의 사임과 정권 인사의 선임이 반복되는 한계도 노출했다. 민영화 가능성 여부 역시 KAI 곁을 떠나지 않는...
김동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