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2026년 연간 매출 5조7000억원, 신규 수주 10조원을 목표치로 제시하며 창사 이래 최대 호황기를 누리고 있다. 폴란드로 향한 FA-50이 하늘을 가르고 국산 4.5세대 전투기 KF-21은 본격적인 양산 단계에 진입했다. 현재 누적 수주잔고는 27조원에 육박한다.
그러나 화려한 성과를 낳기까지 KAI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27년 전 외환위기 속 출범 비화를 짚어보아야 한다. KAI는 특정 오너가의 자발적인 설립이 아닌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 결과물로 출범한 회사였다.
여기에 한국수출입은행(26%), 국민연금(8%) 등이 대주주로 있는 지분 구조로 정권 교체기마다 기존 대표의 사임과 정권 인사의 선임이 반복되는 한계도 노출했다. 민영화 가능성 여부 역시 KAI 곁을 떠나지 않는 논란거리였다. 2026년 현재 국내 방산업체 중 가장 높은 존재감을 보이는 한화그룹이 KAI 지분을 5% 이상 확보하며 민영화 이슈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상태다.
이 문서는 KAI의 출범과 민영화 시도 역사, 무기체계 고도화와 성장 등을 중심으로 정리하고 민영화 진행 현황을 살펴본다.
3.1. 3사 문화의 충돌과 재정비펼쳐보기 접기
'한 지붕 세 가족'이 된 KAI는 삼성, 대우, 현대 출신의 임직원이 서로 다른 인사 제도와 기업 문화, 협력사 관리 체제 등으로 혼란을 겪었다. 도면을 그리는 방식부터 결재 라인까지 모든 것이 달랐다. 대우중공업의 창원공장, 삼성항공의 사천공장, 현대우주항공의 서산공장 등 흩어진 생산 체계를 하나로 묶어야 하는 과제도 있었다.
중복 자산의 매각과 인력 감축이 단행됐고 사천 공장 중심의 집약화가 추진됐다. 1700억원 규모의 적자가 쌓였던 B717 주익 사업을 종결하기로 하며 해당 사업을 담당하던 서산공장을 738억원에 현대차그룹에 매각했다. 당시 유일하게 완제기를 생산하던 사천공장에선 원가절감을 통해 KT-1(기본훈련기)의 수출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사업 재정비를 단행했다.
내부 구조조정 작업도 병행했다. 2001년 조직개편을 통해 35명의 임원진을 20명으로 40% 이상 감축했고 중복 사업은 하나로 묶었다. 이러한 자구안을 토대로 KAI는 2003년 경영혁신 선언식을 개최해 2010년 세계 10위권 항공우주업체로 성장하겠다는 목표를 선언했다.
3.4. 회전익 확장, 국산헬기 '수리온' 개발펼쳐보기 접기
KAI가 항공기 체계종합업체로 성장하기 위해선 고정익뿐 아니라 회전익까지 체계 포트폴리오에 포함해야 했다. 이를 위해 2005년 한국형 헬리콥터 사업(KHP)에 착수하며 첫 국산헬기 개발에 뛰어들었다.
2008년 도면 출도를 완수하고 1호기 구조조립, 동체조립 등 단계에 따라 개발을 수행했다. 2009년 4월 대국민 공모를 통해 한국형 헬리콥터의 이름이 수리온으로 지어졌고 그해 7월 시제 1호기 출고기념식이 열렸다. 2010년 초도비행과 시험평가 등을 거쳐 2012년 12월 양산 1호기를 납품했다.
KAI는 수리온 수출을 위해 국산 항공기로는 처음으로 해외에서 시험·검증하는 절차도 거쳤다. 2012년 국내에서 분해한 수리온을 알래스카로 운송한 후 현지 재조립을 거쳐 시험을 단행했다. 굳이 많은 비용을 들여 해외에서 시험하느냐는 반대도 있었지만 국내에선 불가능한 체계결빙 비행시험 등을 완수하며 체계를 고도화했다.
수년에 걸친 시험과 개선작업을 통해 고도화에 성공한 수리온은 국내 무장헬기의 시초격으로 자리 잡았다. KAI는 2011년 수리온 수출 전담회사인 KAI-EC를 설립하며 수출 다변화를 모색했다.
4.2. 민영화 시도와 무산펼쳐보기 접기
KAI의 주요 주주였던 대기업들이 지분을 매각하고 떠나면서 시장에 풀린 지분은 국책은행의 손으로 흘러 들어갔다. 대기업 지분이 빠져나간 뒤 정부 정책에 따라 한국산업은행이 보유하던 KAI 지분이 2017년 한국수출입은행으로 현물출자되며 현 한국수출입은행 대주주 체제(26.41%)로 전환됐다. 국민연금공단도 주식을 매입하며 8.30%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사실상 정부 소유의 '사기업'인 만큼 KAI는 늘 민영화 대상에 이름이 오르내리곤 했다.
정부가 KAI 민영화에 손을 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2012년 7월 당시 대주주였던 한국정책금융공사는 공사 지분과 주요 주주인 삼성테크윈, 현대자동차 등의 지분을 모두 합친 41.75%를 시장에 매물로 내놨다. 연내 매각 마무리를 목표로 인수의향서(LOI) 접수를 받았다.
8월 1차 예비입찰에 대한항공이 단독으로 입찰했으나 정부 주도의 계약에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다수의 입찰자가 참여하는 일반경쟁에 부쳐야 한다는 국가계약법에 따라 자동으로 유찰됐다. 9월 2차 예비입찰에는 현대중공업이 인수전에 뛰어들었으나 12월 본입찰에 대한항공이 불참하며 이 역시 단독입찰로 인해 유찰됐다.
이후 KAI 민영화는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였고 이후 삼성테크윈, 두산DST 등을 연이어 인수한 한화그룹이 강력한 인수 후보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한화그룹 역시 보유하던 KAI 지분 10%를 2016년과 2018년 두차례에 걸쳐 모두 매각하며 그 가능성이 옅어졌다.
4.3. 정권 교체기마다 불거진 낙하산 논란펼쳐보기 접기
KAI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정부에서 택한 인사로 대표이사(CEO)가 교체되는 이른바 '낙하산 인사' 리스크가 늘 뒤따라왔다. 1999년 회사 출범부터 2026년 현재까지 회사 대표를 역임한 9명의 사장단 중 내부 출신 CEO는 한명뿐이었다.
1대 대표인 임인택 사장은 교통부 장관 출신이었으며 2대 길형보(육군참모총장), 3대 정해주(통상산업부 장관), 4대 김홍경(산업자원부 차관보), 6대 김조원(감사원), 7대 안현호(지식경제부 차관), 8대 강구영(공군 참모차장), 현 9대 김종출 사장(방위사업청 국방기술보호국장) 등 8명이 관료 출신이었다. 5대 사장인 하성용 사장만 KAI 부사장을 역임하다 대표직에 앉았다.
관료 출신 대표들은 낙하산 논란을 의식한 듯 부임과 함께 인사·조직을 개편했다. 내부 출신인 하 사장 이후를 살펴보면 2017년 11월 업무를 시작한 김조원 사장은 취임 2주도 안 된 시점에 고위임원 7명을 해임했다. KAI 방산비리가 불거진 시점에 부임한 만큼 회사를 쇄신하겠다는 의지였다.
안현호 사장은 전임 김조원 사장이 투명경영에 집중한 사이 부진하던 수출 사업에 전사 역량을 쏟겠다는 의미로 수출활성화TF, 미래 성장동력 전담 TF 등을 구성했다. 후임자 강구영 사장도 2부문 3그룹 9실 32팀으로 운영하던 경영지원조직을 1부문 8실 30팀으로 축소했다. 고정익·회전익·기체·미래 등 4대 사업조직은 그대로 뒀다.
2026년 올해 3월 취임한 김종출 사장은 내부 안정화에 방점을 찍었다. 김 사장은 강구영 전 사장이 새정부 출범 직후인 2025년 7월 대표직을 내려놓고 9개월간 이어진 공석을 채웠다. 역대 최장기 공백이었던 만큼 내부를 추스르고 지연되던 수출 사업 확대 등의 역할을 맡았다.
6. 한화, KAI '경영참여' 예고…민영화 재점화펼쳐보기 접기
시장의 가장 큰 관심사는 국내 최대 방산 그룹으로 성장한 한화그룹의 KAI 지분 매입 행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중심으로 육상과 해상, 우주를 아우르는 방산 밸류체인을 구축한 한화그룹이 다시 한번 KAI 지분을 '경영참여'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한화그룹을 중심으로 한 민영화 시나리오가 재점화했다.
시작은 2025년 10월이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KAI 지분 매입을 시작한 데 이어 한화시스템, 한화에어로스페이스USA 등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자회사들이 뒤이어 KAI 지분을 확보했다. 2026년 3월 4.99%였던 한화그룹의 KAI 지분율은 5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지분 0.1% 추가 취득에 따라 5.09%로 상승했다.
상장사 발행 주식을 5% 이상 보유하면 지분 내역과 보유 목적 등을 공시해야 하는 제도에 따라 한화그룹은 KAI 지분 취득 목적을 밝혔다. 5% 미만일 때까지 단순투자였던 한화그룹의 KAI 투자 목적이 경영참여로 변동됐다.
2015년 삼성테크윈 인수로 KAI 지분을 보유했던 한화그룹은 2018년 해당 지분을 전량 매각한 바 있다. 이후 한화그룹은 시장에서 KAI 매각설이 떠돌 때마다 부인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던 셈이다.
특히 경영권 행사와 참여 방식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며 연내 5000억원을 추가로 KAI 지분 매입에 투입하겠다고도 했다. 사실상 한화그룹이 KAI 민영화에 시동을 걸었다는 해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