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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 출범과 성장 그리고 민영화

김동현 기자  2026-05-19 11: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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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THECFO가 제공하는 ‘아카이브(Archive)’는 시장에서 벌어진 이슈의 발단과 결말을 기록한다. 기업의 현재를 만든 이정표적 사건은 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전개됐을까. 사건의 방향성을 흔들어 놓은 주요 이벤트는 뭘까. 기사 한 건이 하나의 조각이라면 아카이브는 조각이 맞춰진 퍼즐이다. 거대 사건을 구성하는 수많은 사실관계를 아카이브가 담았다.

목차

1. 개요

2. IMF 위기와 산업 구조조정

2.1. 1990년대 대기업 3사의 경쟁

2.2. IMF 위기와 1999년 강제 빅딜

3. 국산화로 이어진 독자생존의 집념

3.1. 3사 문화의 충돌과 재정비

3.2. 독자개발 군용항공기 KT-1의 비행

3.3. 록히드마틴 협력과 T-50 사업의 결단

3.4. 회전익 확장, 국산헬기 '수리온' 개발

4. 주인 없는 기업의 지배구조 역사

4.1. 코스피 상장과 대기업 주주의 '엑시트'

4.2. 민영화 시도와 무산

4.3. 정권 교체기마다 불거진 낙하산 논란

5. 르네상스 맞은 K-방산 속 KAI

5.1. 완제기 수출 확대, 글로벌 100위 진입

5.2. KF-21 보라매, 비상 준비 완료

5.3. SW 전환, 뉴스페이스 시대 준비

6. 한화, KAI '경영참여' 예고…민영화 재점화

최초 문서 작성일: 2026년 5월 19일

1. 개요접기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2026년 연간 매출 5조7000억원, 신규 수주 10조원을 목표치로 제시하며 창사 이래 최대 호황기를 누리고 있다. 폴란드로 향한 FA-50이 하늘을 가르고 국산 4.5세대 전투기 KF-21은 본격적인 양산 단계에 진입했다. 현재 누적 수주잔고는 27조원에 육박한다.

그러나 화려한 성과를 낳기까지 KAI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27년 전 외환위기 속 출범 비화를 짚어보아야 한다. KAI는 특정 오너가의 자발적인 설립이 아닌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 결과물로 출범한 회사였다.

여기에 한국수출입은행(26%), 국민연금(8%) 등이 대주주로 있는 지분 구조로 정권 교체기마다 기존 대표의 사임과 정권 인사의 선임이 반복되는 한계도 노출했다. 민영화 가능성 여부 역시 KAI 곁을 떠나지 않는 논란거리였다. 2026년 현재 국내 방산업체 중 가장 높은 존재감을 보이는 한화그룹이 KAI 지분을 5% 이상 확보하며 민영화 이슈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상태다.

이 문서는 KAI의 출범과 민영화 시도 역사, 무기체계 고도화와 성장 등을 중심으로 정리하고 민영화 진행 현황을 살펴본다.

2. IMF 위기와 산업 구조조정접기



2.1. 1990년대 대기업 3사의 경쟁접기



1990년대 초중반 주요 대기업은 항공우주 산업에 진출하기 위해 개별 계열사를 설립해 투자를 진행하고 있었다. 당시 항공우주산업에 대한 환상이 마구잡이식으로 팽배해 있었다. 21세기 국가적으로 우주항공 산업 육성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항공우주산업 개발 기본계획'이 수립되며 재계 주요 그룹들이 미래 먹거리 선점을 목표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대표적으로 삼성항공산업, 대우중공업, 현대우주항공 등을 꼽을 수 있다. 삼성그룹의 삼성항공산업은 1977년 설립된 삼성정밀공업이 전신으로 항공기용 가스터빈 엔진을 시작으로 항공기 부품, 항공운수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1986년 '한국 전투기 사업(KFP)' 주력업체로 선정되며 이듬해 삼성항공산업으로 사명을 바꿨다. 록히드마틴으로부터 F-16을 국내에서 라인선스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생산 본거지가 현 KAI의 경남 사천이었다.
제미나이를 통해 생성한 이미지

대우중공업은 1984년 항공사업부문을 신설하고 경남 창원에 항공기 공장을 준공했다. 창원 공장을 중심으로 민항기 기체 구조물의 설계·제조와 헬기 조립 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미국 제너럴다이나믹스, 보잉 등과 기체부품 공급계약을 체결해 수출에서 존재감을 나타냈다. 1990년에는 정부의 군용항공기 기본훈련기사업(KTX-1)과 경전투 헬기사업(KLH)의 주계약자로 지정됐다.

현대우주항공은 1994년 설립된 현대그룹 계열사로 산업기계·플랜트 설비, 산업용 로봇, 항공기 및 부품 등의 제조·판매를 담당했다. 설립 첫해 다목적 실용위성 개발사업 전력계 주관사로 선정됐고 이듬해 통상산업부로부터 방위산업체에 지정됐다. 앞선 사업자들과 비교하면 후발주자라 할 수 있으나 1996년 보잉 747기의 주익(날개) 생산 계약을 맺는 등 존재감을 나타냈다.

2.2. IMF 위기와 1999년 강제 빅딜접기



그러나 1990년대 국내 항공산업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 대한항공을 포함한 항공 4사가 출혈 경쟁을 벌이는 위기 상황이었다. 1990년대 냉전 체제의 붕괴 이후 미국, 유럽 등에선 정부 주도의 항공 구조조정을 통해 대형·복합화를 추진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에 국내서도 산업 구조조정을 통해 공멸을 막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1997년 몰아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는 항공산업 빅딜에 속도를 붙였다. 이미 1996년 대우중공업, 대한항공, 삼성항공, 현대우주항공 등 4사는 사장단 회의를 열어 통합법인 설립을 논의한 바 있다. 그러나 각사의 여러 이해관계로 실질적인 성과로는 이어지지 않던 상황이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산업 구조조정 정책에 따라 항공산업도 주요 '빅딜(Big Deal)' 대상으로 떠올랐다. 1998년 8월 정부 주도의 기업 구조조정을 전담할 태스크포스(TF)가 출범하며 항공산업 빅딜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논의 과정에서 대한항공은 현물출자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다 결국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며 남은 3개사(대우중공업·삼성항공·현대우주항공)만이 '한국항공우주산업(가칭)' 설립에 의견을 모았다.

합병 과정은 마냥 순탄하지 않았다. 자산 가치 평가와 지분율 산정, 중복 시설의 매각 등을 놓고 주도권 싸움이 이어졌다. 1998년 말 유화, 철도차량, 반도체 등 업종의 빅딜이 승인되는 사이 항공산업 빅딜은 지연됐다.

1년 가까이 이어지던 대치는 1999년 2월 대우그룹의 부도 사태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통합법인 설립이 지연되면 부도 위기가 연쇄적으로 항공업까지 번질 우려가 커졌고 결국 3사는 각 사업부문을 현물출자하는 동시에 현금 510억원을 균등분배 출자하기로 합의했다.

1999년 10월 출범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초기 지분율은 대우중공업·삼성항공·현대우주항공 3사가 33.3%씩 나눠 가졌다.
1999년 KAI 창업 제막식(사진=KAI)

3. 국산화로 이어진 독자생존의 집념접기



3.1. 3사 문화의 충돌과 재정비접기



'한 지붕 세 가족'이 된 KAI는 삼성, 대우, 현대 출신의 임직원이 서로 다른 인사 제도와 기업 문화, 협력사 관리 체제 등으로 혼란을 겪었다. 도면을 그리는 방식부터 결재 라인까지 모든 것이 달랐다. 대우중공업의 창원공장, 삼성항공의 사천공장, 현대우주항공의 서산공장 등 흩어진 생산 체계를 하나로 묶어야 하는 과제도 있었다.

중복 자산의 매각과 인력 감축이 단행됐고 사천 공장 중심의 집약화가 추진됐다. 1700억원 규모의 적자가 쌓였던 B717 주익 사업을 종결하기로 하며 해당 사업을 담당하던 서산공장을 738억원에 현대차그룹에 매각했다. 당시 유일하게 완제기를 생산하던 사천공장에선 원가절감을 통해 KT-1(기본훈련기)의 수출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사업 재정비를 단행했다.

내부 구조조정 작업도 병행했다. 2001년 조직개편을 통해 35명의 임원진을 20명으로 40% 이상 감축했고 중복 사업은 하나로 묶었다. 이러한 자구안을 토대로 KAI는 2003년 경영혁신 선언식을 개최해 2010년 세계 10위권 항공우주업체로 성장하겠다는 목표를 선언했다.

3.2. 독자개발 군용항공기 KT-1의 비행접기



불필요한 자산 매각과 구조조정 등을 통해 정비를 마친 KAI는 완제기 개발사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KT-1은 1988년부터 1998년까지 국방과학연구소가 주관하고 대우중공업이 체계종합업체로 개발한 기본훈련기로 KAI가 사업을 이관받아 양산을 수행했다.

2000년 7월 양산 1호기 초도비행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후 같은해 11월 양산 1호기 출하기념식을 개최해 국내 독자개발 군용기의 탄생을 알렸다. 1호기 출하기념식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KT-1 사업의 성공으로 그 역량과 미래 가능성을 확인한 KAI가 21세기 항공우주산업을 선도할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KT-1은 국내 항공산업의 염원이던 완제기 수출을 이끈 첫 무기체계다. 스위스 필라투스와 브라질 엠브레어, 미국 레이시온 등이 군림하던 기본훈련기 시장에서 KAI는 인도네시아와 KT-1 7대 수출 계약을 맺으며 처음으로 국산 완제기의 수출을 이뤘다. 당시 거래액은 6000만달러에 육박했으며 인도네시아는 이후 KAI의 핵심 수출국으로 자리잡았다.
2003년 초음속 돌파 비행을 하고 있는 T-50(사진=KAI)

3.3. 록히드마틴 협력과 T-50 사업의 결단접기



KT-1의 개발·양산에 성공 직후 곧이어 초음속 고등훈련기 개발도 성공했다. 삼성항공이 추진하던 사업을 KAI가 이관받아 공식 명칭 'T-50' 개발에 속도를 냈다. 이 사업은 미국 록히드마틴과 계약을 맺고 기술 이전 형식의 공동 개발 성격을 띠었다.

독자 기술이 부족했던 국내 개발진은 록히드마틴을 찾아 중요 핵심 기술을 들여왔다. 당초 2000년 3월 완료 예정이던 도면 출도를 109% 초과 달성하며 개발 일정을 앞당겼고 같은해 7~8월 두차례에 걸쳐 체계종합, 세부계통, 구조 등 8개 분야에 대한 기술 검증을 실시했다. 이후 1년 뒤인 2001년 9월 국내 최초 초음속기의 시제 1호기가 출고됐다. T-50은 2002년 8월 초도비행에 성공했고 2003년 양산계약을 거쳐 2005년 8월 양산 1호기가 출고되며 공군에 도입됐다.

개발 일정이 마냥 순탄하진 않았다. 기술이전에 보수적이던 록히드마틴 측을 설득하며 기술을 들여와야 했고 주익 생산·납품권을 확보하기 위한 비용도 지불했다. 감사원은 2004년 6월 KAI가 록히드마틴에 배상금으로 1억1000만달러를 지불한 데 대해 배임, 조세포탈 혐의를 들어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검찰이 "배임은 무혐의로 종결하고 조세포탈 혐의에 대해선 피의사실은 인정하지만 정상 참작의 이유가 있어 기소유예 처분한다"고 밝히며 사건은 일단락됐다. 록히드마틴이 제시한 대당 주익 단가(360만달러)보다 KAI의 자체 생산 주익 단가(250만달러)가 저렴해 보상금을 지급해도 국고에 이득이 된다는 판단이었다.

결과적으로 KAI의 결단으로 초음속기 주익생산 국산화와 기술력 확보, 외화 절감 등의 효과를 모두 가져온 셈이다. T-50을 통해 한국은 세계 12번째 초음속 비행기 개발국에 이름을 올렸다.
산불진화 훈련 중인 산림청의 수리온 헬기(사진=KAI)


3.4. 회전익 확장, 국산헬기 '수리온' 개발접기



KAI가 항공기 체계종합업체로 성장하기 위해선 고정익뿐 아니라 회전익까지 체계 포트폴리오에 포함해야 했다. 이를 위해 2005년 한국형 헬리콥터 사업(KHP)에 착수하며 첫 국산헬기 개발에 뛰어들었다.

2008년 도면 출도를 완수하고 1호기 구조조립, 동체조립 등 단계에 따라 개발을 수행했다. 2009년 4월 대국민 공모를 통해 한국형 헬리콥터의 이름이 수리온으로 지어졌고 그해 7월 시제 1호기 출고기념식이 열렸다. 2010년 초도비행과 시험평가 등을 거쳐 2012년 12월 양산 1호기를 납품했다.

KAI는 수리온 수출을 위해 국산 항공기로는 처음으로 해외에서 시험·검증하는 절차도 거쳤다. 2012년 국내에서 분해한 수리온을 알래스카로 운송한 후 현지 재조립을 거쳐 시험을 단행했다. 굳이 많은 비용을 들여 해외에서 시험하느냐는 반대도 있었지만 국내에선 불가능한 체계결빙 비행시험 등을 완수하며 체계를 고도화했다.

수년에 걸친 시험과 개선작업을 통해 고도화에 성공한 수리온은 국내 무장헬기의 시초격으로 자리 잡았다. KAI는 2011년 수리온 수출 전담회사인 KAI-EC를 설립하며 수출 다변화를 모색했다.

4. 주인 없는 기업의 지배구조 역사접기



4.1. 코스피 상장과 대기업 주주의 '엑시트'접기



KAI는 2011년 6월 30일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 상장했다. 6월 23~24일 실시된 일반공모 실시 결과 일반 투자자 배정물량 732만2777주에 총 3억5842만4170주의 청약이 이뤄졌다. 청약증거금으로는 총 2조7158억원이 몰렸다. 이는 그해 기업공개(IPO)를 실시한 상장사 중 현대위아(5조3901억원), 골프존(3조5639억원)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금액이었다.

상장 첫날부터 화려한 고공비행에 성공했다. 상반기 최대 공모주로 꼽혔던 KAI는 상장 첫날 가격제한폭인 14.77% 급등하며 2만2150원에 장을 마감했다. KAI 시초가는 1만9300원으로 공모가 1만5500원 대비 24.5% 높은 가격에 형성됐으며 장 초반부터 급등세를 보였다.

그러나 KAI의 상장은 주주사에 합법적인 엑시트 통로를 마련해줬다. 당시 KAI는 한국정책금융공사(30.1%)를 대주주로, 삼성테크윈(20.7%)·현대자동차(20.7%)·디아이피홀딩스(10.7%)·오딘홀딩스(10.3%) 등 대기업을 주요 주주로 두고 있었다.

이들 주주사들은 KAI 상장 이후 순차적으로 지분을 매각하고 떠나며 엑시트에 성공했다. 오딘홀딩스가 2014년 보유 주식을 매각하며 엑시트에 시동을 걸었고 삼성그룹은 2015년 삼성테크윈을 한화그룹에 매각하며 KAI 지분 전량을 한화에 넘겼다. 현대차는 2016년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 총수익스와프(TSR) 방식으로 지분을 분할 매각했다. 두산 자회사였던 디아이피홀딩스 역시 2016년 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KAI 지분을 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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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민영화 시도와 무산접기



KAI의 주요 주주였던 대기업들이 지분을 매각하고 떠나면서 시장에 풀린 지분은 국책은행의 손으로 흘러 들어갔다. 대기업 지분이 빠져나간 뒤 정부 정책에 따라 한국산업은행이 보유하던 KAI 지분이 2017년 한국수출입은행으로 현물출자되며 현 한국수출입은행 대주주 체제(26.41%)로 전환됐다. 국민연금공단도 주식을 매입하며 8.30%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사실상 정부 소유의 '사기업'인 만큼 KAI는 늘 민영화 대상에 이름이 오르내리곤 했다.

정부가 KAI 민영화에 손을 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2012년 7월 당시 대주주였던 한국정책금융공사는 공사 지분과 주요 주주인 삼성테크윈, 현대자동차 등의 지분을 모두 합친 41.75%를 시장에 매물로 내놨다. 연내 매각 마무리를 목표로 인수의향서(LOI) 접수를 받았다.

8월 1차 예비입찰에 대한항공이 단독으로 입찰했으나 정부 주도의 계약에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다수의 입찰자가 참여하는 일반경쟁에 부쳐야 한다는 국가계약법에 따라 자동으로 유찰됐다. 9월 2차 예비입찰에는 현대중공업이 인수전에 뛰어들었으나 12월 본입찰에 대한항공이 불참하며 이 역시 단독입찰로 인해 유찰됐다.

이후 KAI 민영화는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였고 이후 삼성테크윈, 두산DST 등을 연이어 인수한 한화그룹이 강력한 인수 후보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한화그룹 역시 보유하던 KAI 지분 10%를 2016년과 2018년 두차례에 걸쳐 모두 매각하며 그 가능성이 옅어졌다.

4.3. 정권 교체기마다 불거진 낙하산 논란접기



KAI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정부에서 택한 인사로 대표이사(CEO)가 교체되는 이른바 '낙하산 인사' 리스크가 늘 뒤따라왔다. 1999년 회사 출범부터 2026년 현재까지 회사 대표를 역임한 9명의 사장단 중 내부 출신 CEO는 한명뿐이었다.

1대 대표인 임인택 사장은 교통부 장관 출신이었으며 2대 길형보(육군참모총장), 3대 정해주(통상산업부 장관), 4대 김홍경(산업자원부 차관보), 6대 김조원(감사원), 7대 안현호(지식경제부 차관), 8대 강구영(공군 참모차장), 현 9대 김종출 사장(방위사업청 국방기술보호국장) 등 8명이 관료 출신이었다. 5대 사장인 하성용 사장만 KAI 부사장을 역임하다 대표직에 앉았다.

관료 출신 대표들은 낙하산 논란을 의식한 듯 부임과 함께 인사·조직을 개편했다. 내부 출신인 하 사장 이후를 살펴보면 2017년 11월 업무를 시작한 김조원 사장은 취임 2주도 안 된 시점에 고위임원 7명을 해임했다. KAI 방산비리가 불거진 시점에 부임한 만큼 회사를 쇄신하겠다는 의지였다.

안현호 사장은 전임 김조원 사장이 투명경영에 집중한 사이 부진하던 수출 사업에 전사 역량을 쏟겠다는 의미로 수출활성화TF, 미래 성장동력 전담 TF 등을 구성했다. 후임자 강구영 사장도 2부문 3그룹 9실 32팀으로 운영하던 경영지원조직을 1부문 8실 30팀으로 축소했다. 고정익·회전익·기체·미래 등 4대 사업조직은 그대로 뒀다.

2026년 올해 3월 취임한 김종출 사장은 내부 안정화에 방점을 찍었다. 김 사장은 강구영 전 사장이 새정부 출범 직후인 2025년 7월 대표직을 내려놓고 9개월간 이어진 공석을 채웠다. 역대 최장기 공백이었던 만큼 내부를 추스르고 지연되던 수출 사업 확대 등의 역할을 맡았다.

5. 르네상스 맞은 K-방산 속 KAI접기



5.1. 완제기 수출 확대, 글로벌 100위 진입접기



KAI는 2022년 폴란드와의 대규모 수출 계약으로 글로벌 탑티어 방산 기업 반열에 올렸다. FA-50 48대를 납품하는 데 계약한 금액만 4조원에 육박한다. 이어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 중동 지역으로 수출 영토를 확장하며 수출 주도형 기업으로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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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조7869억원이었던 KAI 매출은 2025년 3조6964억원으로 30% 이상 증가했다. 이중 완제기 수출 금액은 같은 기간 1271억원에서 9254억원으로 7배 이상 급증했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이 기간 5% 수준에서 25%로 올라갔다. 회사의 2026년 매출과 완제기 수출 목표액은 각각 5조7000억원과 1조4000억원이다.

2025년 말 수주잔고는 27조원이 넘는다. 매년 조단위 신규 수주를 추가하며 안정적인 수주잔고를 이어가고 있다. 2024년 4조9000억원이던 신규 수주액이 2025년 6조4000억원으로 30% 증가했다. 2026년 목표 신규 수주액은 10조4000억원에 이른다.

미국 국방전문지 디펜스뉴스가 조사해 발표하는 글로벌 100 방산업체 순위에서 KAI는 2024년 순위권에 들지 못했지만 2025년 62위로 진입했다.

5.2. KF-21 보라매, 비상 준비 완료접기



KAI의 현재 최우선 과제는 한국형전투기(KF-21 보라매)의 성공적인 양산과 인도다. "2015년까지 최신예 국산 전투기를 개발하겠다"는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의 선언 이후 수차례 사업타당성 분석을 거쳐 2009년 본격적으로 사업이 추진됐다.

2009년 전투기 공동개발 LOI를 체결한 인도네시아도 개발비 8조원 가운데 20%(1조6000억원)를 분담하기로 하며 사업에 참여했다. 2015년 KAI가 체계개발 사업자로 선정되기까지 7차례에 걸친 사업타당성 조사가 이어졌고 이후 상세설계 검토 과정 끝에 2019년 시제기 제작에 돌입했다.
KF-21이 무장 비행시험을 실시하고 있다.(사진=KAI)

이후 2021년 4월 1호 시제기를 출고하고 2022년 7월 초도 비행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첫 비행 후 2023년 마하 1을 돌파하며 초음속 비행에 도달해 '잠정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았다. 양산을 위한 마지막 절차를 마친 셈으로 1000회의 시험 비행 끝에 확인한 KF-21의 최대 속도는 마하 1.8이다.

2026년 3월 출고된 양산 1호기는 9월 공군에 인도될 예정이다. 잠재 수출 물량은 200대 이상으로 추산되며 이에 따른 생산 유발 효과는 24조원, 기술 파급 효과는 49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5.3. SW 전환, 뉴스페이스 시대 준비접기



2020년대 들어 KAI는 소프트웨어(SW) 분야로 투자를 확장하고 있다. 기존 하드웨어(HW) 제조 중심에서 벗어나 SW로 투자범위를 확장하며 미래 뉴스페이스 시대를 준비 중이다.

KAI는 본래 제조업을 기반으로 우주산업에 진입했다.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체계총조립과 1단 추진체탱크 및 엔진 4기의 일체화 작업(클러스터링 조립) 등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2027년까지 예정된 추가 발사에도 참여해 차세대중형위성 3호를 싣는다.

이미 뉴스페이스 HW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KAI는 위성 '다운스트림' 산업에 해당하는 위성 운용, 데이터 활용 등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2021년 9월 처음으로 위성·드론 데이터 분석 기업 메이사에 40억원을 투자했다. 스타트업 투자인 만큼 그 규모가 크진 않았으나 회사는 이후 인공지능 빅데이터 기업 코난테크놀로지(81억원), 메이사플래닛(위성영상 분석·28억원), 펀진(로봇 AI 솔루션·133억원), 젠젠에이아이(국방 합성데이터솔루션·60억원)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2025년 7월에는 위성통신 기업 제노코를 인수하며 SW 밸류체인을 확장했다. 초기 투자를 넘어 SW 기업을 자회사로 편입한 첫 사례로 제노코 투자에만 500억원을 투입했다.
2026년 2월 열린 KAI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국산항공 무장 개발 통합 및 수출 공동마케팅 업무협약식. 사진 왼쪽부터 차재병 KAI 대표이사 직무대행,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이사.(사진=KAI)


6. 한화, KAI '경영참여' 예고…민영화 재점화접기



시장의 가장 큰 관심사는 국내 최대 방산 그룹으로 성장한 한화그룹의 KAI 지분 매입 행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중심으로 육상과 해상, 우주를 아우르는 방산 밸류체인을 구축한 한화그룹이 다시 한번 KAI 지분을 '경영참여'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한화그룹을 중심으로 한 민영화 시나리오가 재점화했다.

시작은 2025년 10월이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KAI 지분 매입을 시작한 데 이어 한화시스템, 한화에어로스페이스USA 등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자회사들이 뒤이어 KAI 지분을 확보했다. 2026년 3월 4.99%였던 한화그룹의 KAI 지분율은 5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지분 0.1% 추가 취득에 따라 5.09%로 상승했다.

상장사 발행 주식을 5% 이상 보유하면 지분 내역과 보유 목적 등을 공시해야 하는 제도에 따라 한화그룹은 KAI 지분 취득 목적을 밝혔다. 5% 미만일 때까지 단순투자였던 한화그룹의 KAI 투자 목적이 경영참여로 변동됐다.

2015년 삼성테크윈 인수로 KAI 지분을 보유했던 한화그룹은 2018년 해당 지분을 전량 매각한 바 있다. 이후 한화그룹은 시장에서 KAI 매각설이 떠돌 때마다 부인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던 셈이다.

특히 경영권 행사와 참여 방식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며 연내 5000억원을 추가로 KAI 지분 매입에 투입하겠다고도 했다. 사실상 한화그룹이 KAI 민영화에 시동을 걸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 [1] 항공사업 분리 후 2000년 3월 삼성테크윈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삼성테크윈은 2015년 한화그룹에 매각되며 한화 방산사업의 중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됐다.
  • [2] 항공산업뿐 아니라 유화, 석유화학, 철도차량, 발전설비, 선박용 엔진, 반도체, 자동차 등의 산업이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됐다.
  • [3] T-50의 성공은 단순한 훈련기 생산에 그치지 않는다. KAI는 이를 기반으로 전술통제기 KA-1과 무장 장착 능력을 대폭 강화한 경공격기 FA-50 개발에 착수했다. FA-50은 뛰어난 가성비와 높은 가동률 등을 기반으로 글로벌 수요를 흡수하며 2020년대 동유럽과 아시아 시장을 휩쓴 K방산 수출의 핵심 무기체계가 됐다.
  • [4] 출고식을 앞둔 2009년 4월 대국민 공모를 통해 명칭을 선정했다. 하늘의 제왕인 독수리의 용맹함과 빠른 기동성을 의미하는 '수리'와 숫자 100을 뜻하는 순 우리말 '온'을 합쳐 국산화 100% 및 완벽함을 추구한다는 뜻을 담았다.
  • [5] 에어버스헬리콥터와의 합작사다. 합작 합의 기간 만료와 독자 마케팅을 이유로 2019년 청산했다.
  • [6] 2009년 두산그룹이 사업재편과 재무구조 개선 작업에 나서며 그룹 구조조정을 전담하도록 한 지주사 두산의 자회사. 2018년 두산이 디아이피홀딩스를 흡수합병하며 소멸했다.
  • [7] 미래에셋자산운용, IMM PE 등 재무적투자자(FI)로 참여해 결성한 특수목적법인이다. 두산그룹의 구조조정 시 KAI 지분 10.3%를 950억원에 인수했다.
  • [8] KAI와 함께 민영화 대상으로 거론되던 대우조선해양은 2022년 한화그룹에 인수돼 현 한화오션이 됐다.
  • [9] 항공기 정비 및 동체 제작 부문과 시너지를 노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진그룹의 부족한 재무 여력과 고가 매입 논란, KAI 노조의 반발 등 복합적 이유로 대한항공이 마지막에 인수전에 뛰어들지 않았다는 해석도 있다.
  • [10] 하성용 사장 시절 수리온와 T-50의 원가를 부풀려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하성용 사장은 구속됐다. 대부분의 혐의는 무죄 판결이 선고됐으나 업무상 횡령과 채용비리에 따른 업무방해죄 등은 일부 유죄가 나왔다.
  • [11] KF-21은 한반도를 수호할 21세기 중추 전력을 의미하며 별칭 보라매에는 미래 공군 핵심 전투기로 성장할 것이라는 상징성이 담겼다.
  • [12] 개발 과정에서 가장 잡음이 많았던 지점이다. 인도네시아는 1조6000억원을 부담하는 대가로 기술을 이전받아 48대를 현지생산하기로 했으나 이후 자국 경제 사정을 이유로 분담금 재조정을 요구했다. 우리 정부는 분담금을 6000억원으로 낮추는 대신 기술 이전 혜택과 현지 생산 물량을 축소했다. 2024년에는 KAI에 파견된 인도네시아 기술진이 KF-21 관련 자료를 유출하다 적발되는 사건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동안 인도네시아가 한국 무기체계를 가장 먼저 사들여 검증하는 등 수출 신뢰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여전히 핵심 협력국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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