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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집단 톺아보기

한진그룹 '고르디우스 매듭' 푼 해결사 하은용 CFO

⑩자산매각, 아시아나 인수전 공과에 채권단 졸업까지…조원태 회장 핵심 조력자로

박기수 기자  2024-06-11 14:14:12

편집자주

사업부는 기업을, 기업은 기업집단을 이룬다. 기업집단의 규모가 커질수록 영위하는 사업의 영역도 넓어진다. 기업집단 내 계열사들의 관계와 재무적 연관성도 보다 복잡해진다. THE CFO는 기업집단의 지주사를 비롯해 주요 계열사들을 재무적으로 분석하고, 각 기업집단의 재무 키맨들을 조명한다.
한진그룹에 있어 2020년 전후는 혼란의 시기였다. 고(故) 조양호 회장이 별세하면서 40대의 젊은 조원태 회장이 리더십을 잡았다. 2010년대 중후반 오너 일가가 빚었던 사회적 물의의 여파가 희미해질만 할 때 여객업 최대 악재인 팬데믹이 찾아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너 간의 경영권 분쟁도 발생했다. 얼마 뒤에는 아시아나항공 인수라는 국내 항공사 '빅딜' 이벤트도 찾아왔다.

이 와중에 2009년에 맺었던 채권단과의 재무개선약정의 고리는 여전히 끊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 대한항공의 실적 부진과 더불어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한진해운의 재무적 여파를 10년이 넘도록 씻어내지 못했다.

어수선했던 총수 교체와 해소되지 못했던 재무 리스크, 이 와중에 찾아온 최악의 경영 환경과 항공업 '대어'를 낚아야 하는 임무까지. 한진그룹을 옭아맸던 실타래들은 마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단단히 묶여 풀리지 않는 '고르디우스의 매듭' 같았다.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난제들은 2024년 현재 대부분 해소된 모습이다. 팬데믹은 오히려 화물 사업의 호조로 이어져 대한항공에 막대한 현금을 안겼다. 팬데믹 이후 여객 수요도 회복된 모습이다. 오너 간의 경영권 분쟁도 조원태 회장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국책은행과의 호흡으로 자금 조달과 인수 계획을 완벽하게 '디자인'한 후 경쟁국의 최종 심사만을 기다리고 있다.

14년 간의 재무개선약정도 작년 8월 종지부를 찍었다. 물론 아시아나항공 최종 인수와 FSC-LCC 간 통합 작업이라는 큰 작업이 남아있다. 그러나 4-5년 전에 비해 현재의 한진그룹은 재무적 리스크를 크게 덜어낸 모습이다.

이는 조원태 회장과 더불어 석태수 전 한진칼 사장,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 등 한진그룹을 대표하는 경영인들의 공과다. 매듭을 풀지 않고 단칼에 끊어낸 알렉산더 왕의 '칼'에 비유할 법 하다. 다만 재무 현업에서 조달 계획을 세우고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그룹의 체질을 변화시킨 하은용 최고재무책임자(CFO, 사진) 부사장도 해결사 목록에서 빼놓을 수 없다.

하 부사장은 조원태 회장의 첫 임원 인사가 이뤄진 후 2020년 초 한진칼의 이사회에 참여했다. 기존 대한항공 CFO였던 하 부사장은 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의 CFO도 겸임하면서 사실상 그룹 재무 총괄로서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자산 매각·자금 조달·채권단 졸업…얽힌 실타래 '해결'

2020년대에 들어선 한진그룹의 키워드 중 하나는 '자산 매각'이었다. 대표적으로 대한항공은 2020년 초 송현동 부지 매각 계획을 세웠다. 종로구 48-3번지에 위치했던 해당 부지는 대한항공이 2008년 6월 삼성생명에 2900억원을 주고 매입했던 땅이었다. 원래 이 땅에 대한항공은 7성급 호텔과 문화복합단지를 조성하려 했지만 학교 인근에 호텔을 세울 수 없는 법에 막혀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결국 대한항공은 이듬해인 2021년 12월 말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송현동 부지를 5578억원에 매각했다.

도중에 터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단기적 영향력이 엄청났다. 결과적으로 화물 사업이 반사 이익을 봤지만 당시 감염병은 여객 수요가 핵심인 대한항공과 한진그룹에 치명적이었다.

대한항공은 2020년 5월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와 더불어 국책은행을 통한 정부 자금 지원안을 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한진칼은 300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하고 대한항공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양 사 재무를 책임지고 있는 하 부사장에는 숨가쁜 시기였다.

당해 말 아시아나항공이라는 대어도 찾아왔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인수가 무산된 후 적정 원매자를 찾고 있었던 산업은행은 조원태 회장과 '빅 딜'을 맺었다. 당시 경영권 분쟁 중이었던 조 회장은 산업은행을 우군으로 맞이했고,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관건이었던 자금 조달도 국책은행과의 정밀한 합의가 이뤄졌다. 한진칼은 산업은행이라는 주주를 맞이하면서 5000억원이라는 현금을 받고, 교환사채(EB) 3000억원을 발행하면서 추가 현금을 적립했다. 이 8000억원은 곧바로 대한항공에 대여했다.

대한항공은 3조3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이중 한진칼이 빌려줬던 대여금 8000억원은 유상증자 대금으로 전환됐다. 추가로 2조5000억원 규모의 현금을 마련한 대한항공은 올해 1분기 말 별도 기준 5조원이 넘는 현금성자산을 보유 중이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데 들어가는 돈은 1조8000억원, 이중 1조원은 이미 계약금과 중도금 등으로 납입된 상태다.


'한진칼→대한항공' 간의 자산 이동을 통해 지주사 현금을 확보하는 작업도 있었다. 2022년 6월 한진칼은 보유한 진에어 주식 전량을 대한항공에 6048억원에 매각했다. 이어 작년 8월 한진칼은 서울 중구 소재 서소문동의 대한항공 빌딩을 대한항공에 2642억원에 매각했다.

이 시점 한진그룹은 2009년 11월 5일 채권단과 맺었던 최초 재무구조약정 이후 수 차례의 연장 계약을 드디어 종결시켰다. 최초 약정 이후 약 14년 만이자 자구 계획을 세웠던 2020년 말 이후 약 3년 만이었다.

한진칼의 자산 매각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4월 한진칼은 미국 하와이 와이키키리조트 호텔의 지분 100%를 소노인터내셔널에 약 1400억원에 매각했다.

△오너 개인회사 대표부터 한진칼·대한항공 CFO까지

꽉 막혀있었던 재무 이슈를 해결한 하 부사장은 1961년생으로 1988년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대한항공으로 입사한 하 부사장은 한진그룹 학연의 상징인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국제 MBA 25기 과정을 밟았다.

하 부사장은 2008년 대한항공 재무개선프로젝트담당 상무보로 승진하며 임원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2009년 오너 일가들이 개인 지분을 쥔 '한진지티앤에스'의 대표이사를 맡았다.

2012년에는 한진 재무담당 상무를 거쳐 2013년 대한항공 기획 업무를 맡았다. 2016년 다시 재무 부서로 돌아온 하 부사장은 이 시기부터 대한항공의 재무본부장을 역임했다. 당시 상무였던 하 부사장은 2017년 초 전무B, 2019년 말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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