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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 타진한 SK케미칼의 제약 매각, 이유있는 결단

2015년부터 잇단 매각 추진, 신약 R&D 기능 포기 사실상 '영업조직'…'백신' 올인 의지

최은진 기자  2023-09-21 16:12:04
SK케미칼의 제약사업 매각 추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에도 세곳과 매각 협상을 벌였지만 조건이나 외부환경 등이 맞지 않아 좌초됐다. 그러나 백신사업에 올인하기 위한 자금마련 등이 필요한 상황에서 더이상 지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엔 의미있는 매각이 진행되고 있다는 정황이 흘러나온다. 사실상 신약을 포기한 상황에서 '마케팅' 말고는 별다른 기능이 없는 만큼 굳이 더 들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보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2015년께 신약 조직 축소 및 인력 이탈, 작년에도 매각 고민했지만 불발

SK케미칼이 제약사업부(Life Science Biz.) 매각을 추진 한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15년께 신약조직을 사실상 정리하면서 인력을 대폭 축소했다. 이 시기 SK케미칼에서 혈우병을 연구하던 김훈택 대표가 창업한 티움바이오로 상당 인력이 이동하기도 했다. 당시에도 SK케미칼은 제약사업 매각을 타진하던 찰라였다. 다케다에 일부 제약 브랜드를 매각하는 방안도 추진했다는 구체적인 상황도 전해졌다.

이 같은 정황은 작년에도 있었다. PE(사모펀드운용사) 등을 포함한 세곳의 투자자들과 유의미한 협상을 벌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가격 등 서로가 원하는 조건이 맞지 않아 딜은 이뤄지지 않았다.

SK케미칼이 보유한 제약사업은 신약개발 기능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마케팅' 조직과 다름이 없다. 그마저도 SK 브랜드를 떼면 외형유지가 가능할 지에 대한 확신이 투자자들은 없었다고 전해진다. 딜이 진정성있게 진행되지 못한 이유로 내부적으로는 파악했다.

1년만에 SK케미칼은 다시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LG화학 진단사업부를 인수한 글랜우드PE가 대상자라는 구체적인 상대방도 드러났다. 양사는 6000억원이라는 거래금액으로 단독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현재는 실사단계다.

SK케미칼의 공식 입장은 "모른다"이다. 내부 임직원들도 알지 못했다는 분위기다. 보통 딜이 이뤄지기 전 간부들에게 공유를 했지만 이번엔 상당히 비밀리에 진행됐다는 전언이다.

SK그룹 제약바이오 사업을 하는 또 다른 계열사의 고위 임원들 역시 해당 딜은 전달받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선대회장의 유지에서 비롯된 SK그룹의 생명과학사업의 초석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씁쓸한 결단이라는 뒷얘기도 흘러나온다.

◇선대회장 유지 상징성, 경쟁력은 글쎄…혈액제·백신 독립으로 '집중'

SK케미칼이 제약사업을 왜 매각하려고 하는 지는 들여다 볼만 하다. 선대회장의 유지라는 상징성 말고는 사실상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선대회장인 최종현 회장의 경우에는 SK케미칼 계열을 이끄는 최창원 회장 입장에선 삼촌뻘이기 때문에 큰 연관이 없다는 점도 작용했을 수 있다.

선대회장의 유지로 은행잎 혈액순환개선제 '기넥신', 세계 최초의 관절염 치료 패취제 '트라스트', 국내 최초 항암 신약인 '선플라', 천연물 관절염 치료제 '조인스'가 개발되면서 SK케미칼 제약사업의 기틀이 마련됐다. 그러나 이를 기반삼아 최창원 회장은 동신제약 등을 인수하면서 백신과 혈액제 사업의 기반을 새롭게 다졌다. SK플라즈마와 SK바이오사이언스로 분사해 독립시키기도 했다.


SK케미칼이 자체적으로 영위하는 제약사업만 떼어 놓으면 연간 약 3000억원 수준의 매출에 불과하다. 친환경 플라스틱 등을 취급하는 Green Chemicals Biz 사업이 약 8000억원으로 압도적인 실적을 올린다. 제약사업부가 대략 15% 안팎에 불과한데다 연구개발 기능까지 사실상 포기한 상황에서 추가 성장동력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내부적으로 백신에 더 올인하고 키우려는 의지가 막강하다는 점도 매각 결단의 뒷배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백신에 주력하기 위해 SK바이오사이언스를 분사하고 수천억원의 투자를 단행하는 등 진단 및 예방 사업에서 미래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효과를 즉각적으로 본 상황에서 추가 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급전이 필요한 상황이기도 하다.

SK그룹 내부 관계자는 "SK케미칼의 제약 매각 의지는 수년 전부터 있었고 시도도 있었지만 이렇게 전격적으로 이뤄질지는 몰랐던 상황"이라며 "백신에 투자하고 싶어하는 오너의 의지가 작용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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