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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er Match Up정유 4사

업황 둔화에 주춤한 영업이익률, 윤활유 성장에 촉각

[수익성]②윤활유 공략한 SK이노·에쓰오일, 정유 집중한 HD현대오일

박완준 기자  2024-04-17 17:03:17

편집자주

'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란 사회적 동물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무형의 압력이다. 무리마다 존재하는 암묵적 룰이 행위와 가치판단을 지배한다. 기업의 세계는 어떨까. 동일 업종 기업들은 보다 실리적 이유에서 비슷한 행동양식을 공유한다. 사업 양태가 대동소이하니 같은 매크로 이슈에 영향을 받고 고객 풀 역시 겹친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태생부터 지배구조, 투자와 재무전략까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차이를 THE CFO가 들여다본다.
글로벌 전동화 시대가 성큼 다가오며 도로 위 전기차는 평범한 일상이 됐다. 하지만 석유의 종말은 없었다. 내연기관 차량이 줄어들며 석유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와 달리 석유 수요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실생활과 산업 현장 등 석유를 사용하지 않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 덕에 국내 정유업계의 연간 매출액은 매년 수십조원을 기록한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국내 정유사의 입지를 탄탄하게 쌓아둔 덕에 제품을 찾는 고객도 몰린다.

문제는 수익성이다. 정유 4사는 지난해 유가 하락과 들쑥날쑥한 정제마진 탓에 영업이익률이 1~2%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국내 정유사들은 해외에서 원유를 수입한 후 정제 과정을 거쳐 휘발유·경유를 생산해 국내외에 판매하는 사업 구조로 이뤄져 있다.

돈을 내고 원유를 사 오는 만큼 외부환경 변화에 따라 유가 변동에 민감하고 정제마진 하락 시 수익성이 떨어진다. 같은 상황 속에서도 각사별 영업이익과 이익률은 다르다. 정유 4사는 외부환경에 민감한 정유 사업 외 수익원 다양화 등 각기 다른 사업구조와 전략으로 변동성에 대응하고 있다.

◇정유 4사, 1년 만에 영업이익 반토막

국내 정유 4사의 지난해 실적이 모두 공개됐다. 정유 4사의 연간 매출은 189조7310억원, 영업이익은 5조623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각각 11%, 60% 감소한 규모다.

영업이익은 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 순으로 나타났다. SK이노베이션은 전년 대비 51% 감소한 1조9039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GS칼텍스와 에쓰오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58% 줄어들어 각각 1조6838억원, 1조4186억원을 기록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전년 대비 78% 감소한 6167억원으로 집계됐다.


정유 4사는 지난해 정제마진의 하락으로 본업인 정유 사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 통상 정제마진은 배럴당 4~5달러를 손익분기점으로 본다. 정제마진은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윳값·수송비 등의 비용을 제외한 수치로 정유사들의 실적을 가르는 핵심 지표로 꼽힌다.

하지만 정제마진은 지난해 2분기 평균 배럴당 0.9달러까지 추락했다. 3분기엔 7.5달러까지 반등했으나 4분기 다시 4달러대로 떨어졌다. 손익분기점보다 낮은 가격이 장기간 유지돼 정유 4사의 실적이 낮아진 것으로 볼 수 있는 배경이다.

실제 SK이노베이션의 정유 부문 영업이익은 8109억원으로 전년 대비 76% 줄었고, GS칼텍스 역시 전년 대비 74% 감소한 8802억원을 거뒀다. 에쓰오일과 HD현대오일뱅크는 각 3991억원, 6248억원을 기록, 전년 대비 각각 83%, 70% 감소했다.

정유 부문 영업이익률은 1% 안팎의 차이를 보였다. 지난해 HD현대오일뱅크의 정유 부문 영업이익률은 2.4%를 기록했다. 뒤를 이어 GS칼텍스 2.3%, SK이노베이션 1.7%, 에쓰오일 1.4% 순으로 나타났다. 동일하게 적용된 정제마진에 각사의 마진은 1~2% 수준에 그쳤다.

◇'윤활유 강자' SK이노·에쓰오일, 고부가 전략 통했다

지난해 정유 4사의 실적 하락 폭을 줄여준 것은 윤활유 사업이다. 변동성이 큰 정제마진에 영향을 받지 않아 안정적인 수익을 가져다줬다. 특히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은 비주력 사업으로 분류되던 윤활유 사업이 이제는 본업을 뛰어넘어 확고한 수익원으로 자리 잡았다.

앞서 정유 4사는 전동화 시대를 맞아 전기차용 윤활유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낙점한 바 있다. 전기차의 모터를 냉각하고 기어의 마찰저항을 줄여 '전비'를 향상시키는 전용 윤활유 시장이 점차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윤활유 사업은 정유업계의 대표적인 비정유 사업이다. 정유사는 휘발유, 경유 등에서 정제하고 남은 잔사유를 재처리해 윤활유 원료인 윤활기유를 생산하고 윤활기유에 산화안정제, 내마모제 등 여러 첨가제를 더하면 윤활유가 된다.

지난해 윤활유 사업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창출한 곳은 SK이노베이션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윤활유 부문에서 997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전체 사업부 가운데 가장 많은 영업이익을 거뒀다.

에쓰오일도 윤활유 실적이 돋보였다. 지난해 영업이익 8157억원을 기록하며 정유 부문보다 좋은 성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GS칼텍스와 HD현대오일뱅크는 각각 4651억원, 1463억원을 기록했다.

높은 영업이익률로 마진을 가장 많이 남긴 곳은 에쓰오일이다. 에쓰오일은 지난해 영업이익율 26.4%를 기록하며 2위인 GS칼텍스(22.7%)와 큰 격차를 보였다. SK이노베이션과 HD현대오일뱅크는 각각 21.3%, 11.2%를 기록했다.

윤활유 부문의 수익성이 업체별로 다른 이유는 품질 차이 때문이다. 윤활유는 미국석유협회(API)가 품질에 따라 나눈 기준은 1~5의 등급을 두고 있다. 1, 2등급은 상대적으로 점성과 포화물 함량이 낮아 중·저급으로 평가받고, 3등급 이상은 고품질 윤활유로 고급 자동차용과 특수 목적 용도로 사용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은 2~3등급의 고부가 윤활유 생산량이 상대적으로 많아 높은 이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며 "GS칼텍스와 HD현대오일뱅크는 상대적으로 1~2등급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탓에 상대적으로 윤활유 수익이 적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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