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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거래 모니터

자회사 쿠팡페이에서 유동성 끌어쓰는 쿠팡

단기 대여 4000억원 2년 연속 연장, 미지급금으로 늘린 유동성 활용

김형락 기자  2022-12-13 08:15:18

편집자주

내부거래는 잘 쓰면 약이 되고, 잘못 쓰면 독이 된다. 캡티브 물량을 확대해 비용 절감을 도모할 수도 있고, 자산·자금 거래 등으로 난관에 봉착한 계열사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도 있다. 하지만 적적한 내부통제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일감 몰아주기와 오너 일가의 사익 편취 논란 등과 같은 오점을 남길 수 있다. 치밀한 계산에 따라 움직여야 내부거래를 리스크가 아닌 기회로 만들 수 있다. THE CFO는 주요 기업들의 내부거래 현황과 전략을 조명한다.
쿠팡이 자회사 쿠팡페이에서 유동성을 끌어 쓰고 있다. 적자를 지속하며 영업활동현금흐름(이하 별도 기준)을 창출하지 못하는 쿠팡이 순이익 이상으로 영업활동현금흐름이 들어오는 쿠팡페이에서 운영자금을 차입하고 있다. 쿠팡페이 차입금은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지배기업(Coupang, Inc)의 증자대금과 함께 쿠팡 자금줄로 기능하고 있다.

쿠팡이 지난해 비금융사가 계열 금융사로부터 차입한 금액이 큰 대기업집단 중 하나로 꼽혔다. 지난 2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22년 공시대상기업집단 내부거래 현황 분석'에 따르면 쿠팡은 농협 다음으로 계열 금융사로부터 차입한 금액이 큰 곳이다.

쿠팡은 지난해 100% 자회사인 쿠팡페이에서 단기로 차입한 운영자금 4000억원 만기 상환을 연장하면서 자금 내부거래가 잡혔다. 같은 기간 농협에서는 농협경제지주가 농협은행과 농협중앙회로부터 2조8800억원을 차입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벼 매입 대행 사업 등을 위해 매년 일어나는 내부거래다.



쿠팡은 지난해 5월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서 대규모 내부거래 공시 의무가 생겼다. 공정거래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은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속한 기업이 50억원(또는 자본금·자본총계 중 큰 금액의 5%) 이상 내부거래를 하고자 할 때에는 사전에 이사회의 의결을 거치고, 이를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밖에 △계열사 채무보증과 △상호출자 등도 금지된다. 쿠팡과 쿠팡페이는 양 사 이사회 결의를 거쳐 대출 계약을 맺고, 지난해 10월 해당 거래를 처음으로 공시했다.

쿠팡이 쿠팡페이에서 차입 거래를 튼 건 2020년이다. 그해 4월 '쿠페이' 결제서비스를 담당하던 핀테크 사업 부문을 쿠팡페이로 분사했다. 자회사로 독립한 첫해부터 단기 차입으로 3000억원을 빌렸다가 2998억원을 상환했다.

결제 대행 서비스 사업을 펼치는 쿠팡페이는 매출이 오르면 그에 비례해 보유 현금도 늘어난다. 2020년 당기순이익은 71억원에 불과했지만, 영업활동현금흐름으로 1조381억원이 유입됐다. 기타유동자산 증가분(7662억원), 미지급금 증가분(3825억원) 등이 당기순이익에 더해진 덕분이다.

'계획된 적자'를 감내하며 물류 네트워크 구축 투자를 이어가던 쿠팡과는 현금 사정이 달랐다. 쿠팡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영업활동현금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유상증자 납입자금과 차입으로 영업활동현금흐름 부족분을 메우고, 투자활동에 썼다.

지난해부터는 쿠팡페이 차입금을 상환하지 않고 만기를 연장하고 있다. 그해 10월 쿠팡페이에서 최대 5000억원 한도로 맺은 단기 차입 약정 계약을 1년 연장했다. 당시 쿠팡은 쿠팡페이에서 운영자금 4000억원을 차입하고 있었다. 이자율은 법인세법 시행규칙에 따른 당좌대출 이자율인 4.6%로 책정했다.

지난 10월에도 기존 5000억원 한도 단기 차입 대출 계약을 재연장했다. 차입금액은 4000억원으로 그대로이고, 이자율만 5.6%로 상승했다.



쿠팡페이는 매출을 전적으로 쿠팡에 의존하고 있다. 쿠팡에서 결제서비스 용역 수익을 거둔다. 지난해 쿠팡페이 매출은 5689억원, 당기순이익은 358억원이다. 수익 정산은 보통 1년 안에 이뤄진다. 쿠팡페이가 지급결제대행업체(PG사) 등으로부터 회수해 쿠팡에 지급할 금액은 쿠팡페이에는 유동부채 항목인 미지급금, 쿠팡에는 유동자산 계정인 매출채권으로 잡힌다.

지난해 쿠팡페이 부채총계(1조5855억원)는 대부분 쿠팡에 1년 안에 치러야 할 미지급금(1조4905억원)이다. 쿠팡이 매출채권 회수 압박에 시달린다면 쿠팡페이가 유동성을 소진해 대응해야 하는 구조다. 쿠팡페이가 보유하고 있는 현금성 자산(단기금융자산 포함 8697억원)은 미지급금보다 6208억원 적다.

더구나 현금성 자산을 함부로 쓸 수 없다. '전자금융업자의 이용자 자금 보호 가이드라인'에 맞춰 선불충전금으로 들어온 833억원(지난해 말 기준)은 따로 관리해야 한다. 선불충전금 중 47%(390억원)는 우리은행에 신탁하고 있다. 나머지는 안전자산에 예치해 두고 있다.



쿠팡은 쿠팡페이와 차입 거래로 유동성이 기업진단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통제하고 있다. 지난해 말 쿠팡 단기차입금(4094억원)은 대부분 쿠팡페이 차입금이다. 쿠팡이 쿠팡페이 차입금에 지불하는 이자는 쿠팡페이에는 금융수익으로 잡힌다. 장기차입금 6395억원(이자율 2.65~8.5%)은 금융기관 20곳으로 분산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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