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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해도, 담담하게

박동우 기자  2022-12-16 08:01:19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가늠할 수 없으면 '불안'을 느낀다. 누구나 안고 있는 감정이다. 최근 들어서는 재무 분야 인력이 겪는 심적 부담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마음의 무게를 감당하면서 담담하게 제 일을 해낸다면 자연스레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민간 발전 기업에서 근무 중인 재무팀장을 만났다. 10년 넘게 몸담으며 자금을 조달하고 운용하는 실무에 매진한 인물이었다. 전력 생산 시설을 운영하는 자회사 임원도 맡고 있었다. 기타비상무이사, 감사 등 맡은 직위와 역할의 폭이 넓었다.

재무팀장의 표정은 여느 사람들과 달랐다. 왼쪽 입꼬리가 유난히 많이 올라간 게 눈에 띄었다. 그는 한달여 전에 안면마비 증상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병원을 찾아갔으나 원인은 알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고 한다. 업무 스트레스가 컸던 건 아닌지 지레짐작할 따름이었다. 고단함의 흔적이 새겨진 것 같아 안타까움이 남았다.

마음 속 압박감이 큰 건 어쩌면 당연해 보였다. 새해를 앞두고 경영 계획을 짜는 움직임과 맞물려 주요 사업별 예산을 최종 검토하는 일이 놓여 있었다. 금리, 환율 등 거시경제 지표 흐름을 내다보고 전력 생산에 필요한 유연탄의 가격 추이도 함께 전망해야 했다.

시장의 앞날을 예상키 참으로 어려운 때다. 올해만 보더라도 금리가 급격히 치솟고 환율은 널뛰기하듯 등락했다. "변수만 없다면 내년 2분기 이후에는 시장이 안정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보는데, 불안한 건 저도 똑같아요." 재무팀장의 말에서도 미래를 쉽게 예단키 어렵다는, '불확실성'이 고스란히 배어나왔다.

정책 환경도 녹록지 않았다. 전력 도매 단가(SMP) 상한제가 시행됐기 때문이다. 한국전력이 발전사에서 전기를 사들이는 값이 일정 금액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을 두는 내용이 담겼다. 해마다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하지만 SMP 상한제 실시 여파로 자칫 이익률이 둔화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재무팀장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기업을 둘러싼 상수와 변수를 두루 살피는 와중에 재무팀장은 상환 밑그림을 제시했다. 보유 현금 일부를 써서 금융기관 차입금을 갚고 회사채 역시 가용 유동성으로 부분 상환하되 나머지 물량에 대해서는 차환하는 구상이었다. 얼마나 치열하게 고뇌했을지, 분투하느라 무척 고생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다가올 2023년에는 어떤 길이 기다리고 있을까. 자신있게 밝히기 어렵다. 기업 재무 라인에 포진한 인물들 역시 경기 변동을 몇 차례 체감했음에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인내하면서 대응 시나리오를 그려낸다. 중요한 건 묵묵히 노를 저어 배를 나아가게 하는 일이다. 그때 만난 재무팀장의 마음은 꺾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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