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CFO

0

재계 차세대 지형도

삼표, 승계 키워드 '연쇄 합병'

②에스피네이처, 2017년 이후 8개 계열사 흡수…10년간 자산 11배 키웠다

고진영 기자  2023-06-14 08:53:23

편집자주

소유와 경영이 드물게 분리되는 국내에서 오너기업의 경영권은 왕권과 유사하게 대물림한다. 적통을 따지고 자격을 평가하며 종종 혈육간 분쟁을 피할 수 없다. 재계는 2022년 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승진과 함께 4대그룹이 모두 3세 체제로 접어들었다. 세대 교체의 끝물, 다음 막의 준비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주요기업 차기 경영권을 둘러싼 후계 구도를 THE CFO가 점검해 본다.
삼표그룹의 뿌리는 '삼표연탄'으로 이름을 알린 강원탄광(강원산업)이다. 석탄에서 골재와 레미콘까지 손을 뻗은 강원산업그룹은 경제개발계획에 참여하며 급성장, 1980년대 황금기를 누렸다. 그러나 경영권의 이동과 함께 뜻밖의 위기가 닥친다.

정문원 회장은 부친 정인욱 명예회장으로부터 총수자리를 물려받은 뒤 철강과 중공업 위주로 사업구조를 재편했다. 1998년 30대그룹 반열에 오르기도 했는데 모래위의 성이었다. 무리한 투자가 기반을 무너뜨린 화근이 됐다. 유동성이 메마른 강원산업그룹은 그 해 바로 워크아웃에 들어간다.

결국 정문원 회장은 집권 10여년 만에 퇴진했고 그룹은 해체 수순을 밟았다. 동생 정도원 회장이 대주주로 있던 삼표산업이 힙겹게 맥을 이었다. 2000년대 경기 부양책이 천재일우가 되면서 다시 일궈낸 것이 지금의 삼표그룹이다.

명운이 한 번 흔들렸던 만큼 삼표그룹은 외연을 크게 넓히기보다 지키는 경영기조가 눈에 띈다. 동양시멘트를 제외하면 M&A(인수합병) 역시 대부분은 그룹 내부에서 계열사끼리 이뤄졌다. 확장을 위한 합병이 아닌 대물림을 염두에 둔 구조개편이다. 연쇄 합병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3세 정대현 사장의 지배력은 차츰 높아졌다.

◇승계 자금줄 '신대원'의 탄생

특히 주목해야할 곳으로 2004년 설립된 에스피네이처가 있다. 골재, 레미콘 등의 제조판매를 영위 중이며 옛 '대원'이 전신이다. 정대현 사장은 애초 대원을 비롯해 네비엔, 삼표선설, 알엠씨 등의 최대주주로 있었다. 대원과 네비엔을 통해 물류회사 삼표로지스틱스와 경한 등 철스크랩 회사를 거느리는 구조였다.

지배구조가 크게 바뀐 시점은 2013년이다. 삼표가 지주사 체제 전환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삼표로지스틱스가 대원에 흡수됐고 대원은 다시 '대원'과 '신대원'으로 갈라졌다. 또 삼표가 '삼표'와 '삼표산업'으로 물적분할 했으며 삼표가 대원을 삼켰다. 삼표를 정점에 둔 지주사 체제가 완성된 셈이다.

필연적으로 지분율 변화가 동반됐다. 지주사 전환 전 삼표의 지분구조를 보면 정 회장이 99.79%에 달했고 정 사장의 지분은 0.21%뿐이었다. 그러나 흡수합병 과정에서 정 사장이 대원 주식을 삼표에 현물출자했기 때문에 삼표 지분이 12.70%로 훌쩍 뛰었다.

대원이 정 사장의 지분율을 높였다면 승계 자금줄 역할은 신대원에 남겨졌다. 2013년 당시 신대원의 최대주주는 지분 77.96%를 보유한 정대현 사장, 나머지는 누나 정지윤 씨와 정지선 씨가 각각 11.02%씩 나눠갖고 있었다. 별도 자산총계가 680억원에 채 못 미쳤다.

◇계열사 줄줄이 흡수, 덩치 커진 에스피네이처


그러나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몸집을 불리기 시작한다. 신대원은 그 해 1월 삼표기초소재, 이듬해 3월 남동레미콘을 흡수합병했다. 남동레미콘은 정 사장이 지분 76% 이상을 보유한 개인회사였다. 삼표기초소재의 경우 정 사장 지분은 5.7%뿐이었으나 나머지를 신대원이 가지고 있었다.

또 2019년 1월엔 알엠씨와 당진철도를 품에 안았으며 이때 사명을 신대원에서 지금의 '에스피네이처'로 바꿨다. 같은 해 3월 경한과 네비엔을 연달아 삼킨 뒤 반년 후인 9~10월 네비엔알이씨, 당진에이치이를 흡수합병한다. 알엠씨, 네비엔은 정 사장이 각각 70%의 지분을 쥐고 있었고 당진철도는 삼표기초소재의 자회사였다. 사실상 정 사장의 영향력 아래 있던 계열사들을 에스피네이처로 모았다. 대부분 그룹 내부 일감을 양분으로 성장한 회사들이다.

2년 동안 바쁘게 진행된 연쇄합병은 가파른 외형 증식을 낳았다. 에스피네이처의 자산규모는 삼표기초소재 합병 전인 2016년 1260억원(별도)에서 2019년 5812억원, 같은 기간 매출은 842억원에서 5529억원으로 뛰었다. 지난해의 경우 자산 7106억원, 매출 6779억원을 기록했다. 10년간 자산은 약 11배, 매출은 약 71배가 늘었다.


이 기간 에스피네이처에서 정 사장에게 배분된 배당금은 얼마일까.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정 사장이 지분율에 따라 가져간 배당금은 약 450억원 안팎으로 계산된다. 가장 최근인 지난해는 총 103억원을 배당했으며 이 가운데 74억원가량이 정 사장(71.95%) 몫이다.

2019년 이후 별다른 움직임이 없던 삼표그룹은 최근 합병 카드를 재차 꺼냈다. 삼표산업이 지주사 삼표를 흡수하는 역합병을 결정했다. 힙병이 이뤄지면 삼표산업엔 자사주가 대량(48.89%)으로 생긴다. 이 자사주는 에스피네이처와 별개로 정 사장이 승계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핵심 지렛대가 될 전망이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