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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바이오 시총분석

텀시트로 L/O 임박했다고? '펩트론' 몸값 70% 급등

美 학회서 전임상 결과 발표…'구속력'은 없는 가계약, 지나친 기대 경계

차지현 기자  2023-07-24 07:42:38

편집자주

시가총액이 반드시 기업가치를 대변하는 건 아니다. 신약개발에 도전하는 바이오업체일수록 더욱 그렇다. 하지만 시가총액은 제약바이오산업의 상황을 보여주는 좋은 잣대가 되기도 한다. 임상 결과나 기술이전(라이선스아웃) 등이 빠르게 반영되고 시장 상황도 고스란히 반영되기 때문이다. 코스닥과 코스피에 상장된 제약바이오 회사의 시가총액 추이를 통해 제약바이오 산업 이슈와 자본시장의 흐름을 짚어본다.
펩타이드 기반 치료제 연구개발(R&D)를 하는 펩트론의 주가가 심상찮다. 52주 최고가를 경신하면서 한국거래소 투자경고종목으로도 지정됐다.

개발 중인 파이프라인에 대해 글로벌 제약사(빅파마)와 맺은 기술수출 계약의 가계약(텀시트)을 수령했다고 공개한 게 배경이다. 그러나 텀시트는 구속력이 없는 계약이라는 데 주목된다.

◇빅파마로부터 텀시트 수령 소식에 52주 최고가 경신

21일 종가기준으로 펩트론의 시가총액은 사흘전인 17일보다 70% 폭등했다. 같은 기간 코스닥 시총 순위는 240위에서 117위까지 높아졌다. 21일 장중 3만500원을 기록하며 52주 최고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현재 거래소는 주가가 급등한 펩트론을 투자경고종목으로 지정한 상태다.

최근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당뇨병학회(ADA)에서 빅파마로부터 개발 중인 당뇨·비만 치료제 후보물질에 대한 기술수출 계약의 텀시트를 수령했다고 게재한 게 주가를 끌어올린 요인으로 지목된다. 통상 기술수출은 '비밀유지계약(CDA)→물질이전계약(MTA)→텀시트 수령→계약 체결'의 순서로 진행한다. 펩트론이 텀시트 수령을 공개하면서 기술수출 기대감이 커졌던 셈이다.


펩트론은 1997년 LG생명과학 연구원 출신 최호일 대표가 설립한 국내 1세대 바이오벤처다. 약효지속 기간을 늘리는 플랫폼 기술 '스마트데포'를 보유했다. 펩타이드(아미노산 중합체)를 생분해성 고분자로 감싸 약물이 천천히 몸속으로 방출하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펩타이드는 체내에서 금방 분해되는 단점이 있다.

이번에 텀시트를 받았다고 발표한 파이프라인은 'PT403'이다. 노보노디스크의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당뇨·비만 치료제 '위고비'(성분명 세미글루타이드)에 스마트데포 기술을 적용했다. 이를 통해 일주일에 한 번 주사를 투여하는 위고비를 한 달에 한 번 주사 투여해도 된다는 게 펩트론의 설명이다.

위고비는 체중 감량에 탁월한 효과를 낸다고 입소문을 타면서 물량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날 정도로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제품이다. 지난 1분기 매출은 6억6600만달러(약 8500억원)로 전년대비 255%가량 늘 정도로 성장세가 가파르다.

펩트론이 'PT403'에 대한 상업화를 공개한 건 작년 12월이다. 해당 파이프라인의 MTA를 체결했다고 발표하면서다. 그리고 약 반년만인 지난달 ADA에서 전임상 결과를 포스터 발표하고 텀시트를 수령했다고 공개했다. 또 이달 실사 일정을 확정했다고도 밝혔다. 이를 두고 시장에선 기술수출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구속력' 없는 가계약…"지나친 기대 주의" 시각도

하지만 기술수출에 대한 기대감은 섣부를 수 있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텀시트는 본 계약 체결에 앞서 조건 등을 협의하는 단계로 구속력이 없다. 실현 가능성은 물론 계약의 규모 등이 정확하게 공개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CDA 단계에서 기술수출 계약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1%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펩트론이 자금 조달이 필요한 상황에서 이 같은 호재성 이슈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펩트론은 2015년 기술특례 제도로 코스닥시장에 입성한 후 단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핵심 수익원인 기술수출 계약 성과가 부진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매출 58억원에 영업손실은 152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에도 매출 12억원에 42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1분기 말 기준 현금성 자산(금융기관 예치금 포함)은 139억원수준이다. 연내 추가 기술수출 성과가 없다면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 제약바이오업계 고위 관계자는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한 후 내용을 발표하는 게 일반적이고 홈페이지에 공지하더라도 투자 위험 요소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며 "규모가 작은 바이오벤처의 경우 가계약 체결 등의 소식만으로도 주가가 급등락할 수 있기 때문에 거래소에 공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거래소 제약바이오업종 포괄공시 가이드라인에선 기술수출 계약 금액이 자본(매출)의 10% 이상에 해당하거나 계약이 해지됐을 때 등을 의무 공시 사례로 제시한다. 이 밖에도 주가나 투자자의 투자 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실은 사유 발생일 당일까지 공시토록 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바이오 업종은 기업 규모나 기술수출 계약 성격 등이 제각각이라 공시 규정을 일원화하기 어렵다"며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면 기업이 판단해 알리는 게 원칙"이라고 했다.

하지만 펩트론은 이번 텀시트 수령 공시와 관련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텀시트는 공시규정이 없는 만큼 공시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펩트론 관계자는 "구속력이 있는 바인딩 텀시트는 공시 의무 대상에 포함하지만 일반 텀시트는 언제든 취소될 수 있어 공시하라는 규정이 없다"며 "회사 쪽에서도 주가가 이만큼 오를 것으로 예상하진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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