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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BCG컨설팅 진단

다롄으로 덩치 불린 중국사업, 우시 조차도 위험하다

수십억 들여 사업성 진단…매각 vs 유지, 경영진 의사결정 명분 만들기

이상원 기자  2024-03-13 16:19:13

편집자주

SK하이닉스가 중국 사업을 두고 딜레마에 빠졌다. 미·중 갈등 장기화로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운 데다 올해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불확실성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불어날대로 불어난 차입금으로 추가적인 자금 투입도 어렵다. 그렇다고 손해를 감수하고 철수를 결정하기도 힘들다. 여전히 미·중 양국 눈치를 봐야만 하는 처지다. 말 그대로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다. SK하이닉스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거액을 주고 컨설팅을 맡긴 배경이다. BCG는 과연 SK하이닉스의 미래를 어떻게 내다봤는지, 어떤 조언을 해줬는지 들여다본다.
SK하이닉스가 중국 진출을 선언한 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채권단 시절이던 2004년 ST마이크로, 중국 정부와 손잡고 우시에 반도체 공장을 설립하며 중국 사업을 시작했다. D램 분야에서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도 자금력이 부족하던 가운데 중국 지출을 추진하던 ST마이크로, 투자 유치를 원하던 중국 정부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2012년 SK그룹에 편입된 뒤 SK하이닉스의 중국 사업은 탄력을 받았다. SK는 그룹 차원에서 중국 사업에 공을 들였다. 2014년 충칭에 후공정 생산법인을 설립하고 우시공장은 전체 D램 생산의 약 절반을 책임지는 핵심 생산기지로 삼았다. 2021년 인텔로부터 다롄공장을 인수하며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미·중 갈등이 불거지자 SK하이닉스의 중국 사업은 계륵으로 전락했다. 미국의 제재로 첨단장비 반입이 어려워지자 우시공장의 첨단화 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다. 다롄공장 인수에 10조원 넘게 투입된 가운데 중국 사업의 수익성 악화는 사업 의지를 약화시키고 있다. BCG(보스턴컨설팅그룹)에 중국 사업에 대한 컨설팅을 의뢰한 배경이다.

◇빛바랜 최태원의 중국 사랑, 무리한 확장이었다

SK하이닉스가 중국 사업에 공을 들여온 데에는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중국 사랑이 크게 작용했다. SK그룹은 1990년 SKC 비디오테이프 공장을 세우며 국내 대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중국에 진출했다. 뚜렷한 성과는 없었지만 30년 이상 꾸준히 중국 시장에 공을 들여왔다.

최근 들어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졌지만 최 회장의 현지 시장 애정은 여전하다. 2023년 11월 대한상의 제주 포럼에서 최 회장은 중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중국을 셧다운시키고 다른 마켓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중국이 대체 가능한 시장이 아니다"라며 "중국 시장을 잃어버리면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입고 내부 혼란이 온다"고 말했다.

최 회장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SK하이닉스가 중국에서 처한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과 디커플링이 진행되는 가운데 SK하이닉스는 2021년 다롄공장을 인텔로부터 인수하며 정반대되는 행보를 보였다. 그리고 미·중 분쟁이 장기화되면서 중국 사업은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한 회계법인 M&A 담당자는 "2000년대 초 중국 붐이 일면서 국내 기업들이 대거 중국에 공장과 법인을 설립하며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왔다"면서 "지금은 사업성이 전반적으로 떨어지고 불확실성이 커지다 보니 중국에 공장을 보유하고 있는 다수의 기업들이 현재 공장 청산과 매각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중 분쟁 장기화에 계획 차질, 실적악화에 재무부담도 가중

중국에서 SK하이닉스의 고전은 미·중 갈등 영향이 가장 컸다. 미국 정부가 중국으로 첨단장비의 반입을 금지했다. 당장 우시공장은 첨단장비 반입이 어렵다. 그나마 지난해 미국 정부가 SK하이닉스를 '검증된 최종사용자(VEU)'로 지정하며 숨통이 트였고 대부분의 장비는 투입이 가능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만큼은 예외다.

반도체 공장은 차세대 제품을 양산하기 위해서는 설비와 생산 시스템을 변경해야 한다. 특히 우시공장에서 생산하는 D램은 낸드보다 공정 수준이 높다. 고성능 설비가 필수적인만큼 EUV 노광장비 반입 제한은 치명적이다. SK하이닉스의 전체 D램 생산량 절반이 우시공장 몫이다. 그렇다고 구형 제품만 양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특히 미·중 분쟁이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도 없다. 수년째 양국 간의 관계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데다 올해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불확실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중국에 강경한 태도를 보여온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SK하이닉스의 중국사업은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할 정도다.

이러한 가운데 메모리 업황 침체는 중국 사업의 수익성 하락으로 이어지며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핵심 거점인 우시는 2020년 순손익이 4847억원에 달했지만 2021년부터 줄기 시작해 2022년 4649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적자 폭은 줄었지만 여전히 순손실을 이어갔다.

다롄공장은 잔금 지급 전까지 운영권을 인텔이 보유해 당장 연결로 반영되지 않았다. 하지만 인텔로부터 패키지로 사들인 미국 낸드플래시 사업부 솔리다임의 누적 적자만 7조원에 달한다. 잔금 지급일은 2025년으로 이 시점부터 솔리다임을 포함 다롄공장의 실적이 SK하이닉스 연결로 그대로 잡히게 된다. 다롄공장 적자까지 반영할 경우 중국법인의 실적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충칭 공장이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후공정 생산법인으로 비중이 크지 않다.

다롄공장은 현재 낸드 공정을 플로팅게이트(FG)에서 CTF(Charge Trap Flash)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낸드가 2D에서 3D로 넘어가며 적층이 중요해졌고 이를 위해서는 CTF로 전환해야 한다. 하지만 수익성 악화에 다롄공장 인수에만 10조원이 넘는 자금이 투입되면서 재무구조 악화로 당장 대규모 투자도 어려운 현실이다.

SK하이닉스가 중국사업을 두고 BCG에 컨설팅을 의뢰한 핵심 배경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업성을 점검하겠다는 차원이다. 그만큼 SK하이닉스 경영진이 중국사업을 두고 고심에 들어갔다는 의미다. 완전한 정리가 맞는 것인지, 아니면 어떻게든 끌고 가는 게 맞는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M&A 업계 관계자는 "BCG에 자문을 요청했다는 것은 이미 내부적으로 중국 내 자산을 매각하거나 사업을 청산하는데 컨센서스가 있다는 의미"라며 "경영진의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위한 명분을 쌓는 차원에서 의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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