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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O 의사결정의 무게

이경주 차장  2022-04-27 15:20:44
"시장이 우려하고 지적했던 원게임(One Game) 리스크가 시간이 지나니 들어 맞았다. 공모가 거품논란에 반론의 여지가 없다.“

평소 알고 지내던 한 자산운용사 기업공개(IPO) 심사역이 상장한지 반 여년이 지난 대형게임사 크래프톤에 대해 내린 평가다. 크래프톤은 2021년 7월 공모가 49만8000원으로 코스피에 상장했다. 이달 29일 종가는 27만3000원으로 거의 반토막이 났다.

크래프톤이 상장한 이후 국내 증시에 미국금리 인상과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대형악재가 있긴 하지만 주가급락에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실적이었다. 장밋빛으로 전망했던 게임신작 효과가 정반대로 나왔다.

크래프톤은 글로벌 히트작이자 배틀로열 장르를 개척한 ‘배틀그라운드’로 대형사로 발돋움했다. 2019년 2788억원이던 순이익이 코로나19 효과로 2020년 5562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최대 기록이었다.

그리고 공모를 진행했던 2021년 중순엔 그해 1분기 순이익(1940억원)을 근거로 연간으로 7760억원(1분기 실적 연환산)의 순이익을 낼 것으로 전망해 IPO 기업가치(공모가 기준 25조783억원)를 산출했다. 배틀그라운드 IP(지적재산권)를 활용한 신작 ‘뉴스테이트’가 성장 모멘텀을 이끌 것이라고 강하게 확신하고 기관들을 설득했다.

하지만 뉴스테이트가 출시된 지난해 4분기 당기순이익은 62억원에 그쳤다. 전망대로라면 최소 4분기에도 그해 1분기 순이익(1940억원)은 냈어야 했다. 크래프톤은 IPO 당시에도 고평가 논란이 있었는데 우려가 현실이 되자 다시 성토의 장이 돼 버렸다. 원게임 리스크가 현실화된 셈이다.

업계에선 최고재무책임자(CFO) 배동근 이사의 역할에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자본시장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배 이사는 글로벌 투자은행(IB)인 JP모간 출신이다. JP모간 한국IB본부장으로 일하며 다수의 IPO를 주관했다. 넷마블 IPO를 주관하며 게임사 상장 겸험도 갖췄다. IPO전문가가 CFO가 된 케이스다.

배 이사의 역할은 대주주와 주관사·투자자(기관)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며 적절한 가격(공모가)을 도출해 딜을 흥행시키는 것이었다. 전문가이기 때문에 양측에 모두 강한 입김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였다. 그만큼 신뢰감을 줄 수 있다. 일반적 CFO라면 균형을 잡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배 이사는 대주주측 이해를 극대화하는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원게임 리스크에 기반한 시장의 공모가 할인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관수요예측 경쟁률이 243.15대 1로 상대적으로 저조했던 이유였다. 당시는 조단위 빅딜도 1000대 1이 넘을 정도로 공모시장에 대한 투심이 우호적이었던 시기다.

결과적으론 대주주도 지금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오너인 장병규 의장은 올 초 우리사주 투자로 손해를 본 직원 달래기에 나섰다.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려 주가 급락에 대한 이유를 소명하고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겠다고 전했다. 더불어 사재를 털어 약 300억원 규모의 크래프톤 주식을 장내 매수하기도 했다.

CFO에게 화살을 돌리고자 함이 아니다. CFO도 회사의 녹을 먹는 월급쟁이일 뿐이다. 대주주 입장이 강경하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배 이사도 그랬을 수 있다. 하지만 크래프톤 사례는 다른 기업들이 반면교사 삼아야 할 일이다. CFO가 누구보다 현안에 대해 가장 잘 안다면 소신대로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중장기적으로 기업에도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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