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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건 관련기사
사다리를 걷어차버린다면
주가는 오르는데 기업은 돈을 구하기 어려워졌다. 현재 한국 자본시장이 내는 기묘한 이상 신호다. 금융당국은 일반주주 보호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대규모 유상증자에는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중복상장에도 사실상 제동을 걸겠다는 기조를 분명히 했다. 취지는 이해할 만하다. 대주주와 경영진 판단에 따라 기존 주주가 일방적으로 희생되는 구조는 더는 방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한쪽에서는 밸류업과 증시 부양을 외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기업의 핵심 자금조달 경로를 잇따라 좁히고 있다. 시장에는 주가를 끌어올리라는 신호를 보내면서 기업에는 자금은 다른 방식으로 알아서 마련하라는 주문을 내리는 셈이다. 한화솔루션 사례는 이 모순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회사는 재무구조 개선과 투자 재원 확보를 위해 2조4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추진했다. 금융감독원은 증...
최명용 부국장 겸 SR본부장
AI는 자산일까 부채일까
"AI는 안 할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편하게 할 수 있는 투자도 아니다." 회계법인 출신의 기업 재무 담당자는 자신의 상관인 CFO의 얘기를 이렇게 한줄로 요약했다. 요즘 기업들 사이에서 AI는 가장 뜨거운 이슈지만 재무를 맡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은 조금 다르다는 의미다. 열광의 이면에 숨겨진 '불확실성'이라는 비용을 누구보다 먼저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AI 투자는 구조부터 단순하지 않다. 막대한 하드웨어 비용과 라이선스 비용이 먼저 집행되고 수익 및 비용 절감 효과는 뒤늦게 따라온다. 그마저도 장담할 수 없다. 겉으로는 CAPEX처럼 보여지나 실제로는 벤처 투자에 가깝다. 언제, 어떻게 회수될지 가늠하기 어려운 투자다. 문제는 이 투자에서 발생하는 리스크의 성격이다. 잘못된 데이터로 학습된 모델, 설명하기 어려운 의사결정, 외부로 흘러나간 정보는 어느 순...
원충희 서치앤리서치(SR)본부 부장
CJ와 콜마, 주가와 오너십
주가는 오르면 좋은 것일까. 대부분의 투자자에게는 그렇다. 하지만 어떤 오너에게는 주가 상승이 오히려 부담이 되기도 한다. 최근 콜마그룹과 CJ그룹을 둘러싼 상황은 이 질문에 정반대의 답을 보여준다. 콜마그룹이 지주사 콜마홀딩스의 자기주식 매입을 검토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크게 눈길이 가지 않았다. 밸류업 이슈가 한창인 시기, 자사주 매입은 흔한 선택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사정을 들여다보니 얘기가 달랐다. 콜마 오너가에게 주가는 단순한 지표가 아니라 생존 문제였다. 오너 일가는 지주사 지분을 담보로 상당한 대출을 일으킨 상태다. 윤상현 부회장과 윤여원 사장 모두 보유 지분의 상당분을 금융권에 맡겼다. 일부 담보의 유지비율은 170% 수준으로, 주가 기준 1만1200~1만1400원대다. 문제는 주가가 이미 1만원 미만이라는 점이다. 이 구간에서는 추...
캐즘 한복판에 선 삼성SDI CFO
김종성 전 삼성SDI 경영지원실장(CFO)의 건배사는 '배터리'였다. "배가 터지게 이익을 내자"는 다짐이다. 2차전지 호황기에는 유쾌한 구호였지만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난 현재, 그 말은 더 절실한 각오로 들린다. 삼성SDI는 전기차 캐즘의 한복판에서 거센 파도를 건너는 중이다. 수요 둔화와 가격 경쟁, 정책 불확실성이 겹친 불황은 예상보다 길어졌고 일시적 조정이라던 캐즘은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터널이 됐다. 지난해 삼성SDI는 1조722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로 돌아섰다. 외형 성장 기대가 컸던 시점이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다만 위기는 방향을 다시 잡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회사가 5년 만에 CFO를 교체한 것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재무 전략을 재설계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전임 체제에서 2조원 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하고 삼성디스플레이 지분 매각을...
오너의 트라우마와 재무전략
"그 회사 오너가 예전에 OO은행에 엄청 시달렸거든. 지금도 회사 CFO가 은행 대출 받자고 하면 학을 떼." 한때는 은행 간부로, 지금은 자기 사업을 하는 한 지인이 꺼낸 말이다. 특정 기업을 콕 집어 언급하진 않았지만 기업금융이나 IB 분야에 몸담은 이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이야기다. 숫자와 조건으로 설명되는 기업의 자금조달 뒤에는, 이처럼 개인의 기억과 감정이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순간들이 적지 않다. 특히 창업주가 겪은 자금 압박의 경험은 시간이 흘러도 기업의 재무 의사결정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스마일게이트와 셀트리온은 이 같은 자금조달 트라우마가 기업 전략으로 구조화된 대표적 사례다. 스마일게이트는 대표 IP인 '크로스파이어' 출시 후 한때 곳간이 바닥난 적이 있다. 당시 MVP창업투자(현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로부터 투자를 유치했으나 얼마 안 ...
이사회 참호를 어떻게 깰까
참호구축, 부패한 이너써클, 골동품. 금융지주 이사회를 향한 금융당국과 정치권의 비판 수위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금융지주 회장과 인연이 있거나 친한 인사들로 참호를 구축했다는 비판에서 시작해 이너써클이 부패했다고 비난했다. 6년이 지나면 골동품이 된다고 사외이사들이 경영진과 이해 관계가 같아지는 모습을 비판했다. 금감원은 특별 점검을 하고 지배구조 TF를 만들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금융사들도 할 말은 있다. 금융지주 이사회는 어느 나라보다 강력한 규제와 감시 속에서 일을 한다. 한달에 몇차례씩 회의를 한다. 복잡한 금융 용어와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정책들에 회의 내용을 따라가기도 버겁다. 조금만 잘못된 결정을 내려도,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현재는 옳았던 결정이 먼 미래엔 잘못된 결정이 되어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정권이 바뀌면 그때 왜 그런 결정을 했...
최명용 SR본부장 겸 부국장
롯데의 솔직한 선택
지주회사 CEO 하면 떠오르는 인상은 대체로 비슷하다. 그룹 전략통이거나 오너의 신임을 받는 관리자형 혹은 그룹의 캐시카우를 쥐어본 핵심 계열사 사장이다. LG의 권봉석 부회장, 롯데의 황각규 전 부회장을 생각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이와 달리 지주사 CFO는 중요하지만 조연에 가깝다. 숫자를 관리하는 역할이지 비전을 설명하는 자리는 아니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CFO가 CEO로 가는 경우는 흔치 않다. 특히 지주사라면 더 그렇다. GS 홍순기 부회장은 이례적인 케이스다. 하지만 위기가 오면 이런 공식은 종종 깨진다. 시장의 질문이 "다음 비전이 무엇인가"에서 "이 회사 괜찮은 건가"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때 필요한 CEO는 비전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숫자로 설명하는 사람이다. 차입 만기는 언제고, 우발채무는 어디에 있고, 가용현금이 얼마인지 등 이런 질문에...
테슬라, 우버 그리고 쿠팡
"해킹에 성공하면 10만달러를 지급합니다." 연이은 해킹 사고를 보며 더보드는 정보보안을 둘러싼 기업들의 고민을 기사로 담아 냈다. 정보보안을 위해 이사회에선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떤 투자를 하는지 살펴봤다. 다양한 얘기들을 담았지만 결국 핵심은 예방과 대응책이다. 제대로 예방을 냈나, 사고가 발생한 뒤 제대로 대응을 했느냐가 기업의 명운을 가른다. 가장 좋은 건 예방이다. 해킹에 성공하면 10만달러를 지급하겠다는 위의 사례는 테슬라가 내걸은 버그카운티 프로그램이다. 테슬라는 오토파일럿을 해킹하면 10만달러를 지급한다고 내걸었다. 그외 중대한 해킹 이슈는 2만~5만달러의 상금을 내걸었다. 그만큼 해킹 대응에 자신있다는 얘기다. 아직 10만달러를 타갔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해킹을 당해도 10만달러를 지급하면서 또 하나의 스토리텔링 마케팅을 할 듯하다. 언젠가 해...
엔비디아 다음 무엇을 준비할까
매입가 4800만원, 수익률 4000%, 평가금액 19억4000만원. 한 삼성전자 직원의 엔비디아 투자 수익 인증이 화제다. 4800만원을 투자해 19억원의 이익을 남겼다. 하필이면 삼성전자 직원이 올린 인증이라니 배가 더 아프다. 부러움과 대단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었다. 기를 받으러 왔다는 댓글까지 달렸다. 엔비디아 인증은 여럿 있었다. 사실 엔비디아에 장기 투자한 사람들은 모두 대박을 쳤다. 일본의 모 투자자는 2024년 1만7000% 인증을 올려 화제가 됐다. 2015년 1600만원을 들여 엔비디아 주식을 5달러 대에 매수했는데 10년만에 28억원을 벌었다. 1년이 지난 지금은 수익률이 더 올랐을 게다. 10년 전 엔비디아는 게임용 컴퓨터에 들어가는 그래픽 카드를 만들던 회사다. 젠슨 황은 PC방 덕에 오늘날 엔비디아가 있었다고 한국을 칭송했다. PC방 매출이 ...
게임업계에도 ‘캐즘’이 찾아왔다
수익성이 흔들리는 국내 주요 게임사 CFO들의 최근 발언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전략은 성장보다 '방어'다. 배동근 크래프톤 CFO는 컨퍼런스콜에서 기존 IP 트래픽의 견조함을 강조했고 조혁민 카카오게임즈 CFO는 실적 악화를 전제로 비용과 자원 재배분에 속도를 내며 내년을 기약하고 있다. 넷마블도 상황은 비슷하다. 도기욱 CFO는 내년 8종 신작을 앞세워 모멘텀 회복을 노리면서도 비용 효율화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게임만으로는 성장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판단 아래 사명 변경을 검토하며 전사적 전환 가능성을 드러냈다. 겉으로는 서로 다른 설명을 내놓고 있지만 게임업계 CFO들이 시장에 전달하는 메시지는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초호황기부터 반복된 신작 중심 사업구조만으로는 성장의 해법을 찾기 어려워졌고 과거와 같은 확장도 기대하기 힘들다는...
최은수 서치앤리서치(SR)본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