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CFO의 역할은 불과 2~3년 사이 완전히 바뀌었다. 2023년 당시 최대 과제는 쪼들리는 살림에도 투자자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였다. 하지만 지금은 넘치는 현금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분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같은 회사라도 재무의 계절이 바뀌면서 CFO의 존재 이유가 달라졌다.
김우현 SK하이닉스 재무담당이 CFO를 맡은 시기는 반도체 업황이 다운턴으로 전환할 때였다. 메모리 가격은 폭락했고 영업현금흐름은 급감했다. 설상가상으로 10조원을 들여 인수한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부(현 솔리다임)는 막대한 손상차손을 안겼다.
그럼에도 AI 시대를 겨냥한 HBM 투자는 미룰 수 없었다. 2023년에는 시설투자(CAPEX) 규모가 영업현금흐름을 웃돌면서 외부 자금 조달 의존도가 커졌다. 벌어들이는 돈보다 투자하는 돈이 많았으나 김 CFO는 회사채 발행과 차입 등을 활용해 투자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당시에는 재무 부담을 우려하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글로벌 신용등급에는 '부정적' 전망이 붙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이 결정은 AI 메모리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는 토대가 됐다.
2024년부터는 게임의 룰이 바뀌었다. AI 서버 투자 확대와 HBM 호황으로 영업현금흐름이 다시 CAPEX를 넘어섰다. 투자비를 외부에서 조달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벌어들인 현금으로 감당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2025년에는 유·무형자산 취득 규모가 28조6000억원까지 늘었음에도 영업현금흐름은 53조4000억원에 달해 이를 충분히 흡수했다.
이제 김우현 CFO의 핵심 역할은 돈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가장 효율적으로 쓰는 일이다. 투자 규모보다 투자수익률(ROIC)과 CAPEX 효율이 중요해졌고 AI 투자와 주주환원, 성과급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일도 주요 과제가 됐다. 여기에 환율 변동에 따른 현금관리와 안정적인 재무구조 유지까지 새로운 숙제로 떠올랐다.
한명의 CFO가 불과 몇 년 사이 완전히 다른 시대를 건너온 셈이다. 불황기에는 공격적인 투자와 과감한 자금 조달로 미래를 샀고, 지금은 AI 호황이 만들어낸 막대한 현금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하며 성장을 이어가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돈이 부족할 때는 자금 조달 능력이 경쟁력이지만, 돈이 넘칠 때는 자본 배분 능력이 경쟁력이다. SK하이닉스의 지난 3년은 CFO의 역할이 자금 조달에서 가치 창출로 진화하는 과정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필요할 때는 담대하게, 호황일 때는 절제하며 움직이는 CFO. 업황에 따라 역할은 달라졌어도 그 중심에는 언제나 회사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재무 전략이 있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SK하이닉스를 AI 메모리 시대의 승자로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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