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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BO의 우산

고진영 SR본부 차장  2026-08-05 08:10:32
금융권에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은행은 날 맑을 때 우산을 줬다가 정작 비가 오면 뺏는다는 말이다. 신용이 좋으면 돈을 잘 빌려주지만 사정이 어려워지면 위험 여신이 되는 금융업의 생리를 드러낸다.

정책금융은 이 순서를 뒤집기 위해 존재하는 공공 우산이다. 대표적인 게 P-CBO(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인데 기업들의 채권을 신용보증기금이 한 데 묶고, 전액 지급보증을 서서 AAA급 유동화증권으로 바꾸고 기관에 매각한다. 흩어져 있으면 아무도 사 주지 않을 채권을 팔기 위한 상품이다.

P-CBO는 2000년 7월 도입됐다. 이후 26년간 1만여개 기업이 74조원을 이 문에서 끌어썼다. 신용의 사다리에서 미끄러진 기업들에겐 사실상 마지막 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5월 27일엔 P-CBO로 370건에 달하는 채권이 한꺼번에 나오기도 했다. 합치면 1조1000억원 규모인데 절반 이상이 발행액 10억원 미만으로 채워졌다.

여기엔 한일시멘트도 있었다. 500억원 조달에 표면금리 3.98%로 그날 P-CBO 채권 중 가장 금리가 낮았다. 최고로 금리가 비쌌던 회사는 아이비알컴퍼니와 다원이다. 8.16%에 각각 20억원, 30억원을 빌렸다. 이자가 4%포인트 이상 차이난다. P-CBO 보증서에도 급이 있는 셈이다.

한일시멘트는 신용등급 A+짜리 회사다. 4월엔 공모 회사채로 3년물 670억원을 4.35%에 발행했다. 수요예측을 거쳐 시장이 매긴 값이다. 그보다 12일 앞서 신보 P-CBO에선 3년물 350억원을 3.98%에 조달했다. 보증료가 따로 붙긴 하지만 표면금리만 보면 공모채보다 36.7bp 싸다.

우량기업이 금융비용 때문에 P-CBO를 찾는 일은 새롭지 않은 얘기다. 2022년 A+였던 LX하우시스가 P-CBO로 1000억원을 조달하기도 했다. 당시 금리는 3.71%로 같은 등급 평균보다 25bp 이상 낮았다. 체면보다 실속을 챙겼다.

신용등급 BBB0인 이랜드월드의 케이스도 있다. 올 4월 1년물 공모채 500억원을 6.31%에 발행했다. 한 달 뒤 P-CBO에선 3년물 500억원을 4.58%에 받았다. 만기는 세 배가 되고 금리는 1.72%포인트 내려갔다.

P-CBO의 문이 넓어진 건 2020년이다. 코로나19로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자 주로 투기등급 기업용이던 제도를 위기 대응 명목으로 대기업까지 확대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났지만 문은 좁혀지지 않았다. 올 상반기 P-CBO 발행액의 절반 이상이 100억원 이상 조달한 기업들 몫이다. 이 큰손들의 평균 표면금리는 4.97%, 10억원 미만 소액 참여자는 6.50%였다.

신용도 높은 기업이 같이 묶이면 보따리가 튼튼해져 작은 기업에도 이득이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P-CBO에서 AAA를 만드는 건 보따리 구성이 아니라 원리금에 붙는 신보의 전액 보증이다. 물론 우량한 기초채권은 평균 예상손실률, 또는 필요한 신용보강 부담을 낮출 수도 있지만 문제는 그 영향이 뚜렷이 공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반면 한도는 확실히 나눠 갖는다. 신보의 올해 유동화보증 총량은 11조5000억원, 한도가 정해진 제도에서 배분은 제로섬이다. 우산은 어디에 먼저 돌아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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