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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 지분가치 트래커

구조조정 극복 김준기 회장, 'DB하이텍' 존재감 확대

보유 평가액 비중 2014년 2%→2023년 20%, 상장 4사 소유지분 '5000억'

박동우 기자  2023-07-17 08:17:18

편집자주

오너(owner)는 '소유자'다. 보유한 주식을 매개로 회사 또는 기업집단의 경영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다. 상장사 지분은 경영 승계 재원 마련, 상속세 납부 등 오너의 선택에 기여한다. 보유 주식가치 추이를 들여다보면 기업이 지나온 궤적을 살필 수 있다. 경기 변동 등 외부적 요인과 인적 분할, 대규모 투자, 공급계약 체결, 실적 발표 등 기업 내부 요인이 복합 작용한 산물이 '주가 등락'이기 때문이다. THE CFO는 재계 기업집단 총수가 보유한 상장 계열사 지분가치 변화와 기업이 직면했던 사건을 연관지어 추적해 본다.
김준기 DB그룹 창업회장(사진)은 10년 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증자에 동참하고 신주인수권을 행사하는 등 발벗고 '계열사 살리기'에 나섰으나 건설, 제철 등 주력 계열사가 그룹 품을 벗어나는 아픔을 피하지 못했다.

현재 김 회장은 4개 상장 계열사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 지분 가치는 5000억원 수준으로 10년 전 3000억원과 견줘보면 60% 넘게 불어났다.

시련을 극복한 원동력은 파운드리 기업 'DB하이텍'이다. 반도체 호황 국면과 맞물려 DB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변모했다. 보유한 상장 계열사 주식 평가액에서 DB하이텍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4년 말 2%에서 올해 20% 수준까지 상승했다.

◇'건설·제철 살리기' 증자 참여, 신주인수권 행사

김 회장은 1969년 미륭건설(현 동부건설)을 설립하면서 DB그룹 역사의 서막을 열었다. 중동에서 잇달아 공사를 수주하며 '오일 머니'를 벌어들였다. 축적한 자금을 토대로 보험, 철강, 금속, 화학, 반도체 등의 신사업을 개척해 한때 상장사 5곳을 포함해 32개 계열사를 거느린 기업집단(2010년 기준)으로 도약했다.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0년대 반도체와 철강 부문에 무리하게 투자를 단행한 여파로 그룹이 자금난을 겪었다. 김 회장은 주력 계열사를 살리는 노력에 동참했다. 2012년 동부건설의 700억원 규모 유상증자 당시 김 회장이 380억원을 납입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2013년에는 갖고 있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주식으로 바꿔 동부건설이 자본금을 확충하는데 기여했다. 2011년 말 김 회장이 보유한 동부건설 주식이 238만9521주(지분율 10.97%)였으나 2013년 말에는 1199만3538주(33.92%)까지 늘었다. 지분 평가액 역시 2년새 108억원에서 335억원으로 증가했다.

△인천스틸 △특수강 △발전당진 △익스프레스 등 계열사 매각과 자산 유동화를 병행해 3조원을 확보하는 계획을 세우는 등 DB그룹의 자구 노력은 꾸준히 이어졌다. 하지만 주력 계열사가 구조조정되는 아픔을 피할 수 없었다.

동부제철은 2015년 2월 감자를 단행했고 김 회장의 보유 지분은 255만2071주(4.04%)에서 2만5520주(0.12%)로 줄었다. 주식 평가가치는 36억원에서 4300만원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2019년 동부제철은 KG그룹 계열사로 편입됐고 사명을 'KG스틸'로 교체했다.

동부건설 역시 2015년 7월에 주식을 차등 병합했다. 김 회장의 지분이 1296만9031주에서 10만605주로 감소했다. 300억원을 웃돌았던 주식 평가액이 2년 만에 5000만원 아래까지 주저앉았다. 이후 동부건설은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키스톤프라이빗에쿼티에 인수되며 그룹 품을 떠났다.


◇2023년 보유주식가치 36% 증가, 'KCGI' 변수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힘이 된 건 DB하이텍이었다. 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에 잔뼈가 굵은 계열사였다. 2009년 DB하이텍의 자회사인 동부메탈이 유동성 위기에 처했을 때 김 회장의 조력이 회자된다.

당시 김 회장은 동부메탈 지분을 매입하며 리스크가 DB하이텍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공들였다. 사재 2844억원을 출연했다. 동부화재(현 DB손해보험) 주식을 담보로 제공하고 금융권에서 빌려온 자금이었다.

2015년부터 DB하이텍에 봄날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반도체 업계가 호황 국면에 접어든 덕분이었다. 매년 영업이익을 실현하면서 그룹의 '캐시카우' 계열사로 자리매김했다. 1만원에도 못 미치던 주가는 2015년을 기점으로 점차 우상향하기 시작했다.


김 회장이 보유한 DB그룹 상장 계열사 지분 가치에서도 DB하이텍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높아졌다. 2015년 말 △DB △DB하이텍 △DB손해보험 △DB금융투자 등 4개 종목의 소유 주식 평가액 3382억원 가운데 DB하이텍은 229억원으로 전체의 6.8%에 불과했다. 이후 주가 상승세와 맞물려 2019년 말 13.9%, 2021년 말 30.6% 등으로 상향했다.

올해 김 회장의 보유 주식 평가액은 1월 초 3602억원에서 이달 14일 기준 4897억원으로 36% 증가했다. DB손해보험의 지분가치가 단연 크다. 3131억원으로 소유한 전체 주식 가치의 63.9%를 차지한다. △DB하이텍 973억원(19.8%) △DB 699억원(14.3%) △DB금융투자 94억원(1.9%) 등으로 나타났다.


DB하이텍 소유 지분의 평가가치 변동이 눈길을 끈다. 김 회장은 160만2227주를 보유했는데 지분율이 3.61%다. 올해 3월 23일 주식 가치는 750억원 수준에 그쳤으나 4월 4일 1245억원까지 급격히 불어났다. 행동주의를 지향하는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KCGI가 DB하이텍 지분 7.05%를 매집한 시기와 맞물린다.

KCGI는 DB하이텍이 자사주를 매입하고 팹리스 자회사 DB글로벌칩을 물적분할한 대목을 문제로 거론하면서 창업주 일가의 사익을 추구하고 지주회사 전환을 회피하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KCGI는 회사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을 끌어올리려면 김 회장의 퇴진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김 회장은 DB하이텍의 경영자문역이자 미등기 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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