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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 & 거버넌스

'선위' 결정한 신세계·DB, 엇갈린 지배구조 변동

③신세계, 자녀 승계 교통정리…DB, 경영난 구조조정 결과

원충희 기자  2024-02-02 13:10:08

편집자주

최근 진행 중인 OCI그룹과 한미사이언스 간의 경영통합 시작은 한미약품그룹 총수일가의 상속세였다. 통상 지분 매각과 주식담보대출 등으로 재원을 마련하는 데 이어 주식교환과 공동경영이란 승부수를 던졌다. 상속세 이슈가 지배구조 이슈로 전환된 격이다. 최근 10년간 상속·증여세 이슈가 있었던 그룹들을 찾아 이들의 유형과 주주구성 및 지배구조 변화를 살펴봤다.
국내 재벌가의 경영승계 과정을 보면 지분은 총수의 별세 후 상속의 형태로 물려주는 경우가 다수다. 생전에 증여를 통한 승계는 사례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면에서 총수 생전에 후계자에게 최대주주 지분을 물려준 신세계그룹과 DB그룹은 흔치 않은 케이스다.

두 그룹 모두 지배구조 변동이 있었다. 다만 원인은 달랐는데 DB그룹은 구조조정 압박에 따른 사실상 '타의'로 제조업 계열사를 팔면서 그룹에 금융 색채가 짙어졌다. 반면 신세계그룹은 총수 이명희 회장 생전에 '정용진=이마트, 정유경=신세계' 후계구도를 확립하려는 '자의'로 개편이 이뤄졌다.

◇신세계·DB, 총수 지분 사전증여 대표 사례

역사 속에서 왕이 살아있을 때 후계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선위'는 드문 일이었다. 이는 현재도 마찬가지로 재벌그룹 승계를 보면 경영권 지분은 최후에 넘겨주는 일이 잦다. 대부분 총수 별세 후 상속 형태다. 상속세율이나 증여세율이 다르지 않는데다 유교적 가풍으로 살아있는 총수의 사후를 언급하기가 어려워서다.

지분을 생전에 다 물려주면 '뒷방 늙은이'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농담처럼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흔치 않음에도 사전증여를 통해 후계구도를 닦아놓은 형태를 간혹 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DB그룹과 신세계그룹이다.


DB그룹(옛 동부그룹)의 김준기 창업주는 아들 김남호 회장과 딸 김주원 부회장을 슬하에 두고 있는데 일찌감치부터 김 회장에게 지분 증여작업을 진행해 왔다. 김 회장은 1991년 DB손해보험(당시 한국자동차보험) 주식 56만주를 받는 것부터 시작해 1994년에는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1995년에도 DB손보(당시 동부화재) 주식 약 52만주를 창업주로부터 받았다. 당시 주가는 6500원으로 현재 9만원대 수준보다 크게 낮을 때다.

DB손보는 DB그룹 금융계열사의 지주회사 격인 곳이다. 지분 증여는 2002년에 완료됐는데 그 해 11월 김남호 회장의 지분이 14.06%로 김준기 창업주(12.06%)를 뛰어넘어 최대주주에 올랐다. 물론 이 과정에서 논란도 있었다. 김 회장이 주주로 올랐던 1994년 2월 4477원에 불과했던 DB손보 주가가 1995년 10월 2만6000원으로 치솟았고 이때 4.1%를 매각, 49억5800만원의 현금을 취득해 증여세로 냈다. 당시 DB그룹의 주가부양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룹 전체의 지주사격인 DB(당시 동부CNI) 지분도 2007년에 증여 받아 김 회장이 지분 16.83%로 최대주주가 됐다. 2004년 동부정밀화학 지분 21%, 2007년 동부CNI 11% 지분이 김 회장에게 넘어간 후 2010년 두 회사가 합병해 지금의 DB 틀을 갖추는 형태다. 증여세와 주식매수 대금은 김 회장이 DB손보 지분 매각 및 배당금으로 마련했다.

◇신세계 '자의'로 지배구조 변동, DB는 사실상 '타의'

신세계그룹은 2015년부터 후계 교통정리 작업이 본격화됐다. 총수 이명희 회장의 아들 정용진 부회장은 이마트를 필두로 스타필드 등 복합쇼핑몰, 식품, 편의점 등의 사업을, 딸 정유경 사장은 신세계백화점, 면세점, 패션 등의 사업을 주도했다.

정 부회장과 정 사장은 2016년 장내 매매를 통해 각각 보유하고 있던 이마트와 신세계 지분을 맞교환, 각각의 이마트 지분과 신세계 지분을 몰아줬다. 이를 통해 정 부회장의 이마트 지분과 정 사장의 신세계 지분은 각각 9.83%가 됐다.

정 사장은 그 후 아버지 정재은 명예회장에게 신세계인터내셔날 지분 150만주를 증여 받아 지분이 0.43%에서 21.44%로 상승, 신세계(45.76%)에 이어 2대 주주로 올라섰다.


2017년에는 이마트가 신세계I&C, 신세계건설, 신세계푸드 등 3개 계열사의 오너일가 지분을 블록딜 방식으로 취득했다. 이 회장의 신세계건설 지분 9.5%(37만9478주)와 신세계푸드 0.8%(2만9938주), 정 명예회장의 신세계I&C 지분 2.3%(4만주)가 대상이었다. 장남인 정용진 이마트 총괄부회장의 신세계I&C 지분 4.3%(7만4170주)와 신세계건설 0.8%(3만1896주)도 포함됐다. 총 343억원이다.

이마트가 보유한 신세계I&C 지분은 29.01%→35.65%, 신세계건설 지분은 32.41%→42.70%로, 신세계푸드지분은 46.10%→46.87%로 높아졌다. 그룹의 양대 축인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의 분리 구도가 명확해졌다. 이 회장은 2020년 결단을 내려 정 부회장과 정 총괄사장에게 각각 이마트와 신세계 지분 8.22%씩을 증여, 최대주주 자리에 오르게 했다. 증여세는 2962억원으로 정 부회장이 1917억원, 정 사장이 1045억원이다.

같은 사전증여임에도 DB그룹과 신세계그룹의 다른 점은 지분 증여과정에서 지배구조가 자의로 변동했냐, 타의에 의해 바뀌었느냐 여부다. DB그룹은 경영난을 겪으면서 채권단의 구조조정 압박으로 제조업 계열사를 다 팔고 DB하이텍 정도가 남았다. 이러는 동안 DB손보를 비롯한 금융계열사는 착실히 커오면서 금융그룹 색채가 강해졌다. 반면 신세계그룹은 이마트와 백화점을 분리하면서 승계를 위한 자의로 지배구조 개편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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