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CFO

0

상속 & 거버넌스

LG가(家) 승계에 CFO가 관여한 이유

④재무관리팀서 총수일가 재산 관리…장자승계 위한 오랜 관행

원충희 기자  2024-02-05 14:53:23

편집자주

최근 진행 중인 OCI그룹과 한미사이언스 간의 경영통합 시작은 한미약품그룹 총수일가의 상속세였다. 통상 지분 매각과 주식담보대출 등으로 재원을 마련하는 데 이어 주식교환과 공동경영이란 승부수를 던졌다. 상속세 이슈가 지배구조 이슈로 전환된 격이다. 최근 10년간 상속·증여세 이슈가 있었던 그룹들을 찾아 이들의 유형과 주주구성 및 지배구조 변화를 살펴봤다.
재벌가 경영승계와 상속·증여 과정에서 해당 그룹의 재무라인은 관여를 하고 있을까. 재무라인의 역할은 회사의 자금 유출입을 관리하고 안정적인 재무 구조를 짜는 데 있다. 총수 일가의 재산은 직접적으론 재무라인의 관할 사항이 아니다. 다만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관리한다는 측면에서 대다수 그룹들은 재무라인이 일정 수준의 역할을 한다.

LG그룹의 경우 그 관여 강도가 다른 그룹보다 세다. 장자 승계를 통해 그룹의 지배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다 보니 다양한 장치가 필요했다. 그 중 하나가 총수 일가의 재산에 대해 관리하는 것이다.

구본무 전 회장의 배우자 김영식 씨와 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구연수 씨 등 유가족 세 모녀는 상속세 납부와 재산 관리를 LG 재무관리팀에 맡겼다. LG그룹은 70년 넘게 법정상속비율대로가 아닌 장자에게 지분을 몰아주며 지배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안정적인 경영권 지분을 물려주기 위해 가족간 합의가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비롯한 재무라인의 역할이 커졌다.

◇오너가문 자산 관리하는 '재무관리팀' 존재

작년 10월 5일 구광모 회장과 유가족 세 모녀 간의 소송 관련 첫 변론기일에서 하범종 ㈜LG 경영지원부문장(사장)이 증인으로 나왔다. 지주사 최고재무책임자로 역임 중인 인사다. 그가 재판정에 나온 이유는 LG그룹에서 경영승계와 관련해 CFO를 비롯한 재무라인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 사장은 1994년 LG상사로 입사한 뒤 2013년부터 ㈜LG 재무관리팀장을 역임해 고 구본무 회장을 보좌해 왔던 인물이다. 재무관리팀은 50년 가까이 내려온 조직으로 주요 주주들의 주식이나 장자(총수)에게 맡겨진 지분 등을 관리하면서 특수관계자 공시, 의결권 대리행사, 주식 매매 및 배당, 세금 정산과 신고 업무 등을 맡아 왔다. 실제로 유가족 세 모녀 역시 재무관리팀에서 상속세 등의 업무를 담당해 왔다.

흔히 재벌가의 지분 상속 및 증여는 가족 간의 일이라 회사 차원에서 관여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지만 LG그룹은 얘기가 다르다. LG 총수일가는 기업 설립 후 70여년 동안 장자승계 형태로 경영권과 지분을 물려줬다. 창업세대의 가족 구성원들은 자기 몫 법정상속분 가운데 일부를 떼서 장자에게 맡긴 형태다.

그룹의 안정적 경영을 위해서다. 창업자인 구인회 회장에게 다섯 형제와 열명의 자녀가 있는 만큼 대가족이 싸우지 않고 잘 경영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이 같은 전통은 구본무 회장 2018년 별세 때도 그대로 적용됐다. LG 주식 11.28%를 비롯해 약 2조원 규모의 재산을 남겼는데 구광모 회장이 LG 지분 8.76%를, 세 모녀는 LG 주식 일부(구연경 2.01%·구연수 0.51%)와 금융상품, 부동산, 미술품 등을 포함해 5000억원 규모를 물려받았다.

◇경영권 안정 위해 법정상속분 일부 장자에게 몰아줘

LG그룹은 상속·승계 과정에서 지배구조 변동은 없었다. 이미 앞서 계열분리 등을 통해 거버넌스 변동 요인이 미리 정리해버렸기 때문이다. 2000~2003년에 걸친 지주사 체제 전환 전후로 계열분리가 진행됐다. 1996년 희성그룹이, 1999년 LIG가, 2003년 LS그룹이, 2005년 GS그룹이 분리됐다.

친·인척들과 계열분리를 하면서 총수일가 구성을 깔끔하게 정돈됐다. 장자승계 가풍과 계열분리를 통해 친·인척들 몫을 떼 주고 적통이라 할 수 있는 LG그룹은 별다른 후계다툼 없이 내려왔다. LG 오너가문이 경영권 위협 등의 외풍에 시달린 적이 거의 없고 사법리스크로 총수의 위상이 크게 흔들린 적도 없는 것도 한몫했다.

LG 외 타 그룹에서도 총수의 재산관리를 맡은 '금고지기'의 존재가 있다고 암암리 알려져 왔다. 경영권 확보를 위한 오너가 지분의 안정적 관리, 세금 관리, 포트폴리오 구성 등이 이들 업무다. 국세청이나 법조계 등 외부 정보라인도 개별적으로 가동하며 팀원끼리도 서로 하는 업무를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있다고 전해진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기업 중에서 CFO 출신이나 재무라인들이 중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다는 아니겠지만 일부는 오너가의 금고지기 역할을 하며 신뢰를 쌓은 인사"라며 "헌신의 대가는 조기 승진 및 중용으로 이어지며 대부분은 그룹에서 끝까지 챙겨준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