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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 & 거버넌스

이종기업 통합까지 간 한미, 상속세 전략 종합판

①공익법인·사모펀드·백기사 등 총동원, 재원 마련책이 지배구조 개편 촉발

원충희 기자  2024-01-31 15:16:01

편집자주

최근 진행 중인 OCI그룹과 한미사이언스 간의 경영통합 시작은 한미약품그룹 총수일가의 상속세였다. 통상 지분 매각과 주식담보대출 등으로 재원을 마련하는 데 이어 주식교환과 공동경영이란 승부수를 던졌다. 상속세 이슈가 지배구조 이슈로 전환된 격이다. 최근 10년간 상속·증여세 이슈가 있었던 그룹들을 찾아 이들의 유형과 주주구성 및 지배구조 변화를 살펴봤다.
국내 재벌가의 상속세 재원 마련 방식은 크게 배당 확대와 주식담보대출, 비주력 계열사 지분 매각이다. 때로는 돈이 부족해 주력 계열사 지분도 소폭 매각한다. 그룹 지배력을 최대한 유지하되 자금을 끌어모을 온갖 방책을 짜내는 게 핵심이다.

한미약품그룹 오너가 모녀(송영숙 회장·임주현 사장)의 행보는 상속세 재원 마련의 종합판 격이다. 공익법인 증여와 사모펀드를 우군(백기사)으로 영입하는 방안을 넘어 OCI와의 이종기업 통합까지 진행하고 있다. 총수일가 상속 이슈가 지배구조 개편으로 이어졌다.

◇세금 낼 돈 구하라…재단 증여, 주담대는 기본

2013년 고 이운형 세아그룹 회장 별세부터 2022년 넥슨그룹 창업주 김정주 회장 별세까지 최근 10여년간 발생한 국내 9개 기업집단의 상속·증여 이슈들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재원 마련 방식이 지분 매각과 주식담보대출, 배당 등이라는 점이다.

재벌가 구성원 재산의 대부분은 주식이기 때문이다. 주식을 활용한 금전 융통으로 재원을 마련하는 게 핵심이다. 지분율이 높은 총수일가는 배당 확대를 통해 현금을 융통할 수도 있지만 한계가 있다. 지분율이 낮은 오너가는 이럴 경우 회사 자금 유출이 심해진다. 보유지분 매각과 담보대출 등이 주류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한미약품그룹 오너가는 상속시장에 획기적인 발상을 선보였다. 사모펀드와 환매조건부 주식매매에 이어 우호적인 제3자(백기사)와 손잡고 지배구조 개편에 나섰다. 최근 화제가 된 OCI-한미약품 경영통합의 시작도 결국 상속세 재원 마련이었다.

2020년 고 임성기 회장이 별세함에 따라 배우자 송영숙 회장과 세 자녀는 1조원(당시 기준)에 달하는 주식을 상속받았다. 배우자와 자녀들이 2대 1의 비율로 받았다. 송 회장이 40%, 세 자녀가 20%씩이다. 이때 부과 받은 상속세가 5400억원으로 송 회장이 2000억원 이상, 세 자녀가 각각 1000억원 이상을 부담해야 한다.

나머지 주식은 그룹 산하 공익법인인 가현문화재단(330만주), 임성기재단(202만주)에 증여됐다.

한미약품그룹이 선택한 첫 번째 상속 전략은 공익법인 증여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증법)에 따르면 비영리법인에 증여된 지분은 일정 규모에 한해 세금이 면제된다. 때문에 승계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으나 규모는 제한적이다. 내국법인 지분의 경우 10%,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과 특수관계에 있는 공익법인의 경우 5%로 제한된다. 한미약품 오너가는 공익법인 증여로 일부나마 세액절감 효과를 얻었다.

◇PE와 환매조건 주식매매, 제3자 투자 무산…결국 OCI와 손잡아

유가족들은 여느 기업 총수 일가들이 그렇듯 은행, 증권사, 한국증권금융 등으로부터 대규모 주식담보대출을 받았다. 송 회장의 경우 2021년 3월부터 5월까지 농협은행, 교보증권 등으로부터 대출을 받았다. 이때 받은 주식담보대출의 만기가 올해 2~5월에 집중돼 있다. 송 회장과 장남 임종윤 사장의 대출금액은 1000억원을 웃돌고 장녀 임주현 사장과 차남 임종훈 사장도 각각 700억원 안팎에 달한다.

5년 연부연납으로 매해 세금을 분납해야 하는데다 대출만기가 돌아오면서 거금이 필요해졌다. 여기서 두 번째 카드를 뽑았는데 지분 매각이다. 매각방식이 다소 독특하다. 작년 5월 인연이 있는 사모펀드 '라데팡스파트너스'에 송 회장과 임주현 사장의 지분 11.78%를 팔았다. 6개월 뒤 10% 이자를 물고 다시 지분의 일부를 되사오는 환매조건(콜옵션)이 붙은 거래였다. 공동보유약정을 맺어 경영권 분쟁 리스크에 방어책도 준비하면서 라데팡스는 별개 주주가 아닌 총수일가 특수관계자로 포함됐다. 오너가와 같이 움직이는 우호적인 제3자란 뜻이다.

라데팡스는 더 나아가 전체 오너가의 지분 매입을 통해 상속세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기획했다. 이 과정에서 주요 출자자(LP) 새마을금고 뱅크런 사태 등으로 자금모집이 어려워지자 IMM인베스트먼트, KDB인베스트먼트, 스톤브릿지캐피탈 등과 함께 PE 연합을 구성했다. 지분투자 규모는 7000억원 정도로 이 가운데 5000억원은 오너가 지분을 매입해 상속세 문제를 해결하고 신약 개발자금까지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한미약품그룹 팩트체크 공지

진행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두 아들 임종윤·종훈 사장은 빠지고 송 회장과 임 실장 지분만 매입하는 쪽으로 투자구조가 결정된 것이다. 임종윤 사장은 자기 사업체인 코리그룹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 임종훈 사장은 상속세를 상당분 납부했다는 점 등으로 유가족 간에 길이 갈렸다. 한미약품그룹 총수일가는 이때부터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LP들이 총수일가 지분을 고루 매입하지 못하면 향후 경영권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 등으로 난색을 표하면서 '플랜 B'가 가동됐다. 결국 OCI그룹과 경영통합이란 새로운 방식이 나왔다. OCI홀딩스는 7703억원을 투입해 한미사이언스 지분 27%를 확보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약 2400억원은 한미사이언스, 약 2775억원은 송 회장 등에게 돌아가 상속세 재원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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