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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er Match Up정유 4사

신사업에 사활 건 정유사, '같은 듯 다른' 미래 방향성

④[신사업] SK이노, 매출액 2위는 '이차전지'…올해도 투자 확대

박완준 기자  2024-04-19 16:57:46

편집자주

'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란 사회적 동물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무형의 압력이다. 무리마다 존재하는 암묵적 룰이 행위와 가치판단을 지배한다. 기업의 세계는 어떨까. 동일 업종 기업들은 보다 실리적 이유에서 비슷한 행동양식을 공유한다. 사업 양태가 대동소이하니 같은 매크로 이슈에 영향을 받고 고객 풀 역시 겹친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태생부터 지배구조, 투자와 재무전략까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차이를 THE CFO가 들여다본다.
정유 4사는 정유 사업 외 새로운 성장 동력을 모색 중인 공통점이 있다. 글로벌 전동화 전환에 속도가 붙으며 급변하는 에너지산업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 방향성에는 크고 작은 차이점이 존재한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은 이차전지 시장에 처음 발을 들여 편중된 매출을 다변화하려고 시도했다. 다만 예상과 달리 이차전지 시장의 캐즘(대중화 전 수요침체)이 예상보다 깊고 길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GS칼텍스와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는 석유화학 사업 및 신재생에너지 사업 등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수조원대의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공장 증설에 나서고 정부와 발맞춰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

◇정유 3사, 석유화학 대규모 투자…'생존경쟁' 돌입

정유 4사 중 순수 정유사는 없다. 특히 GS칼텍스와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는 석유화학 생산시설 구축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기존에 수입하고 있는 원유 활용도를 넓히는 것이기 때문에 사업 연결성 측면에서 용이하다는 이유에서다.

정유사들이 석유화학 시장의 불황에도 발을 넓힌 것은 원가 경쟁력이 높기 때문이다. 투자를 선제적으로 단행한 GS칼텍스와 HD현대오일뱅크는 기존 석유화학 공정의 주원료인 납사와 더불어 납사보다 저렴한 원료를 활용할 수 있도록 설비를 구축했다. 정유 공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이 원료가 되는 만큼 원가 측면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GS칼텍스는 기존 사업의 안정적인 성장을 바탕으로 석유화학 제품의 생산시설을 선제적으로 구축했다. 앞서 GS칼텍스는 2022년 2조7000억원을 투자해 전남 여수 제2공장 인근에 올레핀 생산시설을 건설했다. 연간 에틸렌 75만t과 폴리에틸렌 50만t 등 다양한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GS칼텍스의 승부수는 통했다. 지난해 정유 부문에서 영업이익 8802억원을 거둬 전년보다 74% 감소했지만, 석유화학 부문은 영업이익 3385억원을 실현해 전년 대비 278% 성장했다. 주력 사업의 줄어든 실적을 석유화학이 메꿔준 것이다.

HD현대오일뱅크는 2022년 롯데케미칼과 합작해 중질유 분해 복합설비(HPC) 공장을 구축했다. HPC 공장은 합작사 현대케미칼이 3조4000억원을 투자해 대산공장 내 66만㎡ 부지에 세운 초대형 석유화학 설비다. 연간 에틸렌 85만t, 프로필렌 50만t을 생산할 수 있다.

HPC 공장은 납사, 액화석유가스(LPG) 원료를 활용하는 기존 석유화학 공장과 달리 값싼 원료를 활용할 수 있도록 있어 원가 경쟁력이 뛰어나다. HD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석유화학 사업에서 856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에쓰오일은 친환경 에너지 화학기업으로 전환한다. 에쓰오일은 2022년부터 국내 석유화학 역사상 최대 규모 프로젝트인 '샤힌 프로젝트'에 9조2580억원을 투자해 석유화학 매출 비중을 크게 확대한다. 에틸렌 연간 생산량 기준으로 그 규모가 180만t에 달할 예정이다.

신규 설비에는 TC2C(원유를 직접 원료로 전환하는 기술)를 도입해 에너지 전환 효율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TC2C 기술은 에쓰오일 모회사인 사우디 아람코에서 개발한 기술로, 상업화 설비에 적용하는 첫 사례다.

건설 용지는 울산시 온산국가산업단지에 있으며 2026년 6월 완공될 예정이다. 완공될 시 에쓰오일의 석유화학 사업의 비중은 현재의 12%에서 25%로 2배 이상 확대된다.

◇매줄 순위 '지각변동'…SK이노, 이차전지 투자 '주력'

SK이노베이션은 이차전지 사업에 투자를 늘리며 경쟁 정유사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석유화학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며 이차전지까지 발을 넓히는 내용이 골자다. 특히 지난해 이차전지 사업 매출액이 석유화학을 처음으로 앞지르며 주력 사업으로 자리 잡은 모습을 보였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이차전지 사업에서 전년 대비 69% 증가한 12조8972억원의 매출을 실현했다. 같은 기간 석유화학 사업은 10조7442억원을 기록했다. SK이노베이션의 이차전지 사업 진출 이후 처음으로 매출액 순위가 뒤바뀐 해였다.
다만 글로벌 고금리 기조와 실물 경기 부진으로 전기차 수요 증가세가 주춤한 탓에 이차전지 사업의 적자는 지속됐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은 이차전지 사업에서 영업손실 5818억원을 기록했다. 메탈가 약세에 따른 배터리 판가 하락의 영향을 받은 점도 실적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도 이차전지 사업 투자액을 늘린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계획된 9조원의 설비투자 비용 중 7조5000억원을 이차전지 사업에 쏟아붓는다. 지난해 6조7869억원보다 늘어난 규모다.

석유화학 사업의 경쟁력 강화에도 힘쓴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전략이다. SK이노베이션은 울산 콤플렉스(CLX)에 2027년까지 약 5조원을 투자한다. 순환경제 구축에 약 1조7000억원, 설비 전환 및 증설을 통한 친환경 제품 확대에 약 3조원 등을 투자하는 내용이 골자다.

주요 투자는 CLX 인근의 '폐플라스틱 재활용 클러스터' 조성이다. 약 21만5000㎡ 부지에 시설을 구축해 연간 폐플라스틱 약 25만t을 재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 공장은 내년 말 완공이 목표다. 다양한 복합소재를 모두 화학적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장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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