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CFO

0

thebell desk

이사회를 쥔 송영숙, CFO를 쥔 임주현

원충희 THE CFO부 차장  2024-01-26 07:50:02
OCI홀딩스와 한미사이언스의 경영통합이 발표된 후 해당 내용을 팔로업하던 중 양사 최고재무책임자(CFO)들에게 이번 딜에 대한 코멘트를 받아보려 했다. 황영민 OCI홀딩스 부사장과 신성재 한미사이언스 상무. 대면과 서면 등 여러 방식을 모색했지만 성사되진 않았다.

예상했던 일이다. 이번 딜은 사실상 두 그룹의 오너 간에 다이렉트하게 이뤄진 거래다. 이 과정에서 CFO가 할 일은 많지 않다. 또 총수일가의 결정에 대해 고용된 경영자가 왈가왈부하는 것은 정무적으로 좋지 않은 일이다.

특히 신성재 상무는 경영관리본부에 속해 있다. 한미사이언스 경영관리본부를 총괄하는 이가 송영숙 회장과 함께 이번 딜을 주도한 임주현 사장이다. 통상 경영관리본부는 인사, 재무·회계, 기획, 총무 등을 관장한다. CFO를 비롯한 한미사이언스 재무라인과 지원부서들이 임 사장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송 회장의 아들이자 임주현 사장의 오빠, 한미사이언스에서 사장직을 갖고 있는 임종윤 사장이 이번 일을 사전에 간파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다. 여기에는 또 다른 키가 있는데 이사회다. 사내이사였던 박준석 부사장이 퇴사한 후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는 송 회장과 사외이사 3인만 있다. 이사회는 임 사장 모르게 만장일치로 이번 딜을 결의했다. 송 회장이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번 딜에 반발하고 있는 두 아들, 임종윤 사장과 임종훈 사장의 위치를 보면 한미약품그룹 경영진이 어떻게 나뉘어 있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임종윤 사장은 한미사이언스 미래전략 사장과 한미약품 미래전략 사장직을 갖고 있다.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에는 미등기 이사, 한미약품에는 등기이사다. 한미사이언스 이사회에는 자리가 없으나 한미약품에는 이사회 구성원이다.

임종훈 사장의 경우 한미약품 사내이사로 있다가 지난해 3월 임기만료로 나간 뒤 복귀하지 않았다. 어머니인 송 회장은 반대로 한미사이언스 등기이사인 반면 한미약품에는 미등기 이사다. 한미약품 이사회에 손을 뻗기 어렵지만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는 그의 손 안에 있다.

송영숙·임주현 모녀가 지주사를 쥐고 빅딜을 속전속결로 전개할 수 있던 비결은 이사회와 CFO로 귀결된다. 여기서 또 한번 깨닫는다. 기업의 지배력은 단순히 지분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핵심 의결기구인 이사회와 재무라인을 장악한 이가 회사를 좌우할 수 있다. 관전자 입장에선 가족 간의 불화와 별개로 흥미로운 한수였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