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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풍향계

한국타이어, 쌓이는 현금이 달갑지 않은 이유는

작년 말보다 현금 6991억 증가, 순현금 1조 돌파… 오너십 공백에 투자집행 제한적

강용규 기자  2023-11-01 17:44:32

편집자주

유동성은 기업 재무 전략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다. 유동성 진단 없이 투자·조달·상환 전략을 설명할 수 없다. 재무 전략에 맞춰 현금 유출과 유입을 조절해 유동성을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한다. THE CFO가 유동성과 현금흐름을 중심으로 기업의 전략을 살펴본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한국타이어)가 올들어 현금을 대거 축적하고 있다. 이를 통해 마이너스 순차입금의 실질적 무차입 상태를 더욱 강화하고 있으며 원래부터 낮았던 부채비율 역시 더욱 낮췄다.

이처럼 재무구조의 건전성을 높여 가고 있음에도 한국타이어는 그다지 달가워하는 모습이 아니다. 의도적으로 현금을 축적하는 재무전략을 구사한 결과가 아닌 탓이다. 한국타이어는 조현범 회장의 경영 공백으로 큰 투자를 집행하지 못하고 있다. 갈 곳을 잃은 현금이 곳간에 쌓이고 있는 것이다.

한국타이어는 2023년 3분기 연결기준 매출 2조3400억원, 영업이익 3963억원을 거둔 것으로 잠정집계됐다고 1일 밝혔다. 전년 동기보다 매출은 1.8% 늘었고 영업이익은 106% 급증했다. 영업이익의 경우 1~3분기 누적 기준으로 8355억원을 거둬 지난해의 7058억원을 이미 뛰어넘었다.

올해 한국타이어의 호실적은 그대로 재무구조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지표 개선은 현금 및 현금성자산 보유량이 지난해 말 1조1394억원에서 올해 3분기 말 1조8386억원으로 61.3% 증가한 것이다.

이 기간 한국타이어는 차입금이 1조9365억원에서 1조3315억원으로 줄었다. 이에 따라 순차입금 역시 -3170억원에서 -1조1943억원까지 감소하며 순현금의 기조가 더욱 짙어졌다. 지난해 말 29.5%에 불과했던 부채비율 역시 올해 3분기 말 25.4%로 더욱 낮아지는 등 한국타이어의 재무구조는 건전성을 더해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타이어 측에서는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모양새다.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재무구조 개선의 주요 원동력이 된 현금 보유량의 증가세를 놓고 "여러 이슈들로 인해 올해 계획했던 투자를 당초 계획대로 집행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한국타이어 IR 프레젠테이션)

이날 한국타이어는 공시를 통해 2023년 예상 CAPEX(자본지출) 집행 규모를 기존 1조원 내외에서 5000억원 내외로 하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미국 테네시 생산법인의 증설투자 집행 이연과 대전공장 현대화 비용 축소를 사유로 들었다.

앞서 3월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이 계열사 부당지원과 횡령·배임 등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이에 한국타이어도 오너십에 공백이 발생하면서 대규모 투자와 관련한 의사결정의 동력이 사실상 상실된 상태다.

한국타이어는 지난해 8월 미국 테네시 생산법인의 증설을 위해 2026년까지 단계적으로 총 15억7500만달러(당시 환율기준 2조1000억원가량)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한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현금이 쌓이고 있는 것이다.

이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지표가 유동비율(유동부채 대비 유동자산의 비율)이다. 이 지표가 200% 안팎을 보이면 기업이 적정 수준의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너무 높아도 기업이 성장을 위한 투자에 유동성을 투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한국타이어의 유동비율은 3분기 말 기준으로 287.2%에 이른다.

한국타이어는 판매 포트폴리오에서 18인치 이상 고인치 타이어 및 전기차용 타이어 등 고부가 제품의 비중을 확대하는 장기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국내 대전공장의 설비를 현대화하기 위한 설비투자를 진행한다는 계획도 세워뒀다. 그러나 이 역시 조 회장 구속에 따른 투자 동력 상실로 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조 회장의 구속 직후 대전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의 대처와 복구 역시 빠르지 못했다는 평가다.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계획된 투자의 일부를 취소하는 것이 아니라 시점이 다소 뒤로 미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타이어업계에서는 우려의 시선이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완성차시장의 전동화로 말미암아 타이어업계에서도 전기차용 타이어가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르며 기업들의 투자가 가속화하고 있다"며 "시장 선점을 위한 속도가 중요한 상황에서 한국타이어는 넉넉한 투자여력을 보유하고도 오너십 공백으로 속도를 내지 못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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