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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의 젊은 날

고진영 기자  2023-12-04 08:11:04
연말 시상식을 잘 안 챙겨보지만 이번 그래미 어워즈엔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지난달 공개된 후보 명단에 가수 마일리 사이러스가 6개 부문이나 들었다(그래미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대중음악 행사다). 그간 사이러스에게 있었던 우여곡절을 생각하면 꽤 감회가 남다른 일이다.

그의 스타덤은 ‘한나 몬타나’라는 디즈니시리즈로 시작됐다. 첫 사운드트랙을 미국에서만 300만장 팔아치웠을 정도로 한때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추락도 인기만큼 요란했는데, 소녀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었던 사이러스는 2013년 한 시상식에서 선정적인 무대로 업계를 발칵 뒤집어놨다.

그게 몹시 대단한 잘못이었는지는 의문이 있으나 어쨌든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약물, 폭행 논란 같은 말썽이 이어지자 사이러스의 이름은 애정보단 조롱의 대상이 됐고 상업적으로도 오래 부진했다.

최근 그의 재기는 그래서 의외롭다. 다만 갑작스럽진 않았다. 사이러스는 몇 년 전부터 록밴드 곡들을 놀라운 실력으로 커버하면서 과거 잃어버린 존중을 조금씩 되찾아왔다. 결혼을 하고 다시 이혼을 했으며 집에 불이나 잿더미가 되는 등 이런저런 굴곡도 겪었다. 자전적인 노래 ‘Used To Be Young’의 “넌 내가 미쳤었다고 하지만 난 그저 어렸던거야”라는 별것 아닌 말이 진실되게 들리는 이유는 성숙에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을 대중들도 봤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결함과 젊음은 서로 동의(同義)적인 면이 있다. 카카오는 재계에서 손꼽히게 어린 조직이다. 역사가 짧을뿐 아니라 임원들의 상대적 연령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혁신의 아이콘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덩치가 커질수록 미성숙한 기업문화가 얼룩처럼 도드라지고 있다.

우선 CFO(최고재무책임자)가 법인카드로 게임에 억단위를 써서 보직해임됐다. 홍은택 대표와 김성수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는 SM엔터테인먼트 인수과정에서 불거진 시세조종 의혹으로 수사 중이다. 지난달엔 김성수 대표와 카카오엠 고위임원이 차익을 얻으려고 드라마제작사를 비싸게 샀다는 의혹이 나왔다.

또 김정호 카카오 CA협의체 경영지원 총괄은 욕설 논란에 시달렸는데, 800억원대 프로젝트를 임원이 이렇다할 절차없이 외부업체에 맡기자 답답함에 언쟁을 했다고 한다. 진실 공방은 아직 결론이 안났다. 이런 기막힌 일들이 전부 반년 안에 일어났다.

김범수 창업자가 내부감사를 맡기려고 올 9월 김 총괄을 직접 영입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카카오도 준법경영이 다급해진 모양이다. 최근엔 외부 독립 감사기구인 준법과 신뢰위원회까지 출범했다. 그동안 '자율을 통한 성장'을 강조해왔으나 이제 무질서한 젊은 날과 안녕할 때임을 실감한 것 같다.

그도 그럴게 10년 전 어린 사이러스가 "내 집이니까 하고싶은대로 할거야. 내 입이니까 마음대로 말할거야"라고 노래할 때는 낭만과 카타르시스라도 있었지만 카카오는 집주인도 아닐뿐더러 (화난) 주주들이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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