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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 서한은 현대엘리베이터를 바꿨나

회장은 떠났지만 행동주의·현대엘리 '동상이몽', 주가는 하락

허인혜 기자  2024-03-08 10:08:59

편집자주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는 정부의 '밸류업' 정책과 맞물려 한국형 행동주의가 그어느때보다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작게는 주주환원 확대부터 크게는 경영권 변화로 기업가치를 제고하라는 목소리를 내놓는다. 그만큼 기업들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평가는 밸류업과 기업 사냥꾼으로 엇갈리지만, 인식과 관계없이 기업도 만반의 방어책을 구축해야할 때가 왔다. 더벨이 국내 기업에 미치는 행동주의 펀드들의 움직임을 짚어보고 기업 전략을 살펴본다.
2023년 8월, 약 반년 전 현대엘리베이터는 공개 주주 서한을 받는다. KCGI자산운용으로부터다. KCGI운용은 크게 지배구조 개선과 수익성 전략 등 두 가지를 요구했다. 주주 서한은 의결권 행사와 더불어 주주가 회사에 의견을 표출하는 주요 창구다.

아무 의미 없는 주주 서한은 없다. 현재의 행보를 더 강화하라는 주문이든, 변화를 촉구하는 요구이든 회사의 행동을 요청하는 내용이 담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주가와 이사회 구성을 포함해 여러 변화를 맞았다. KCGI운용 뿐 아니라 주요 주주인 쉰들러홀딩스의 영향도 컸다. 주주 서한을 받은 뒤 반년이 지난 지금 현대엘리베이터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왜 현대엘리였고 무엇을 지적했나: 현정은 회장과 쉰들러홀딩스

행동주의 전략이 기업가치 제고와 최종 엑시트라는 목표까지 도달하려면 일정 기간의 동행은 필수다. 물론 주가를 밀어올린 뒤 빠져나가는 전략을 취하는 곳도 없지 않겠으나 일단 주주 행동주의가 내세우는 지향점을 모아보면 기업과 동행의 시간은 꼭 필요하다. 결국 투자 회사의 몸값을 누르고 있는 어떤 지점을 변화시키면 주가가 오르고 이익을 본다는 명제를 믿고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행동주의 펀드는 그냥 기업을 고르지 않는다. 주주 레터를 살펴보면 KCGI운용이 왜 현대엘리베이터를 골라 투자했고 행동주의에 나섰는지가 보인다. 또 KCGI운용이 짚어낸 현대엘리베이터 저평가 요인도 요약돼 있다.


KCGI운용 주식운용본부는 현대엘리베이터 이사회에 주주서한을 보내 현 회장의 사내이사직 사임을 포함해 지배구조 개선을 우선 요청했다. 현 회장의 연봉이 과다하고 겸직도 과도하며 이해관계도 상충된다는 주장이었다. 또 적자사업 재검토 등 중장기 수익성 개선 전략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이후에도 목소리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연말 현 회장이 등기이사 사임 의사를 밝힌 뒤 임시 주주총회 일정과 안건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감사후보 등을 검토할 시일이 촉박해 3%룰의 취지에 어긋날 수 있다는 게 요지다. 다만 올해 주주총회에 주주안건은 제시하지 않았다.

KCGI운용의 요구는 현대엘리베이터에게는 아주 색다른 이야기는 아니다. 20년 악연으로 불리는 세계 2위 엘리베이터 업체 쉰들러 아게 홀딩스가 꾸준히 현 회장의 경영권을 논해왔다. 현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에게 손해를 끼쳤으니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요구는 수익성 강화 전략을 요구한 주주 레터와 내용은 달라도 지향점이 같다.

◇방어 전략은: '선진지배구조' 명분, 현 회장은 떠났지만 '동상이몽'

현 회장은 이사회를 떠났다. KCGI운용이 주주 서한을 통해 요청한 바다. 하지만 현 회장과 현대엘리베이터는 사임 배경을 지배구조 고도화라고 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현 회장의 행보를 두고 '선제적인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현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도 이사회 중심 경영이라는 핵심가치에 부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내용은 들어가지 않았다. 실제로도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방어라기보다 경영권을 지키는 수순에 가까워 보인다. 행동주의 펀드가 원했든 그렇지 않든 현 회장의 결정에 약 2~3% 주주인 KCGI운용의 레터가 결정적 작용을 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현 회장은 떠나는 대신 임유철 H&Q코리아파트너스 공동대표를 새 이사진으로 추천했다. H&Q코리아는 현 회장의 개인회사인 현대홀딩스에 대규모 자금을 지원하며 백기사로 떠올랐다. 현 회장은 쉰들러의 소송으로 1700억원의 배상금과 지연이자를 지불해야할 상황에 놓이는 등 유동성 확보가 절실했다.

이원종 H&Q코리아 공동대표가 현대홀딩스 이사회에 기타비상무이사로 합류한 바 있어 현대엘리베이터에 이사 파견도 예정된 수순이었다. 아군들로 빈 자리를 채웠다는 의미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주주총회 소집공고를 통해 임 대표의 장기적인 업력 등을 바탕으로 전문성을 강조했다.

◇현대엘리 주가는: 반짝 상승, 재료 소진에 하락세

주가를 보면 초반에는 효과가 있었다. KCGI운용이 주주서한을 발송한 소식이 전해진 지난해 8월 23일 현대엘리베이터의 주가가 치솟았다. 장중 5만400원을 기록했고 종가는 4만9300원까지 올랐다. 전 거래일 주가는 4만6900원으로 하루 사이 5.12%가 상승했다.


주주행동이나 경영권 분쟁처럼 주가를 자극하는 요인이 발생하면 통상적으로 주가는 오른다. 다만 대주주의 반대편이 별다른 수확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확실해질 수록 주가는 동력을 잃는다.

현 회장의 이사회 사임도 현대엘리베이터 주가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현 회장의 사임 소식이 전해진 11월과 실제로 사임한 12월 내내 주가는 눈에 띄는 변화 없이 천천히 내려갔다.

현재 주가는 4만원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6일에는 3만99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같은 주가는 주주서한을 보내기 전의 흐름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주주서한을 보낸 8월 주가는 4만1000원대에서 4만9000원대까지 진폭이 컸지만 4만원 이하로 떨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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