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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BCG컨설팅 진단

트럼프 재집권 시나리오 '위기만 있는 건 아니다'

중국에 대한 추가 제재안 영향권, 현지서 전략적 중요도 상승 효과도

이상원 기자  2024-03-14 17:13:22

편집자주

SK하이닉스가 중국 사업을 두고 딜레마에 빠졌다. 미·중 갈등 장기화로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운 데다 올해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불확실성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불어날대로 불어난 차입금으로 추가적인 자금 투입도 어렵다. 그렇다고 손해를 감수하고 철수를 결정하기도 힘들다. 여전히 미·중 양국 눈치를 봐야만 하는 처지다. 말 그대로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다. SK하이닉스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거액을 주고 컨설팅을 맡긴 배경이다. BCG는 과연 SK하이닉스의 미래를 어떻게 내다봤는지, 어떤 조언을 해줬는지 들여다본다.
SK하이닉스는 매년 수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통해 새로운 반도체 장비를 도입한다.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새 장비가 필수다. 지속적인 투자로 장비를 교체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 극자외선(EUV) 장비가 대당 4000억원 넘는 가격에도 주문이 밀려있을 정도로 첨단장비 도입 경쟁은 치열하다.

갈길 바쁜 국내와 달리 중국에서 SK하이닉스는 주춤하다. 우시공장은 첨단장비를 들여오고 있지만 핵심으로 통하는 EUV는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다롄공장 내 2공장은 장비조차 채워넣지 못해 비어있다. SK하이닉스가 현지 공장의 정리를 고민하게 된 핵심 이유다.

최대 변수는 올해 치러질 미국 대선이다. 공화당 후보로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는 중국 제재의 산증인이다. 그가 재집권할 경우 현지 시장의 불확실성은 보다 커질 수밖에 없다. 다만 중국을 향한 미국 제재가 강화될수록 SK하이닉스의 현지 입지가 보다 커질 수도 있다는 컨설팅 결과가 나왔다는 말도 들린다.

◇'VEU 지정'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 불확실성 확대

올 11월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과 도널드 트럼프의 재대결이 성사됐다. 최근 이뤄진 여론조사 결과 양 후보의 지지율은 오차범위 내에서 박빙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만큼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지만 국내 반도체 제조사들은 벌써부터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과거 집권 시절 트럼프는 중국 때리기에 집중했다. 그중에서도 미래 산업의 핵심인 반도체에 대한 제재를 강화했다. 이렇게 촉발된 미·중 갈등은 현재 바이든 정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현 정부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를 '검증된 최종사용자(VEU)'로 지정하면서 첨단장비 도입에 대한 길을 열어줬다.

트럼프가 재집궐할 경우 이러한 유예 조치도 원점에서 다시 논의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과거 중국에 강경했던 트럼프의 입장을 감안하면 SK하이닉스는 다시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 컨설팅을 맡은 BCG(보스턴컨설팅그룹) 역시 대선 결과에 따라 SK하이닉스의 중국 사업 불확실성은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는 전언이다. 당장 SK하이닉스에 부여된 VEU 지정이 취소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우시공장과 다롄공장의 첨단장비 도입은 불가능해진다. 현재 사실상 EUV만 중국으로 반입이 금지된 가운데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다른 첨단장비도 반입이 불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의 중국사업 자체가 위태로워진다.

SK하이닉스를 포함한 국내 반도체 제조사는 미국의 대중 수출 통제가 시작된 2022년부터 더 이상 중국기업에 노후화된 반도체 장비를 매각하지 않고 있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국내 반도체 제조사들은 생산라인을 첨단장비로 교체한 후 기존 장비를 다른 기업에 판매해 왔다. 주요 수요처는 중국이었다.

현재 첨단장비만 제재 대상에 포함되지만 국내 반도체 제조사들은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노후화된 장비도 판매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국내 반도체 제조사들이 일찌감치 미국 정부의 눈치를 봐온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반해 미국의 인텔, 마이크론 등은 여전히 중국 기업에 노후 장비를 판매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중국 우시공장

◇현지 수요 대거 확보 여지 '수익성 개선 기회도 있다'

다만 BCG는 'SK하이닉스에 위기만 있는 건 아니다'란 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BCG는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새로운 기회도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고 한다. 중국 내 반도체 제조사에 대한 제재가 강화될 경우 중국내 반도체 생산라인의 전략적 중요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SK하이닉스의 입지도 강화된다는 의미다.

중국 국영 통신사들은 현지에서 생산된 반도체를 우선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의사를 천명했다. 데이터센터 설립 등에 따른 메모리 물량을 확보할 경우 확실한 보너스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SK하이닉스의 수익성 확대를 부를 수 있는 요인이다. 지난해 SK하이닉스의 총매출에서 중국향 매출은 약 30% 수준이다.

이외에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메모리 수요 확대도 기대 요소다. 중국에는 화웨이, 샤오미, 오포, 비보 등 대형 제조사 4곳이 있다. 이들의 점유율을 합치면 전 세계 1위에 해당한다. 제재가 보다 강화되면 현지 제조사 수요를 SK하이닉스가 일부 흡수할 수도 있어 보인다. 특히 샤오미는 미국 제재가 강화되면 중국 내 소싱을 확대할 뜻을 밝혔다. 공기업 등의 수요도 일부 노려볼 수 있을 전망이다.

SK하이닉스 중국 다롄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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