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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O & Credit

롯데물산 '등급 스플릿' 왜 발생했나

한신평 AA- 유지, 한기평은 '싱글에이' 강등…그룹 통합신용도-지원가능성 관계 관점 차이

고진영 기자  2023-06-23 10:01:18

편집자주

신용평가사들이 부여하는 기업의 크레딧은 자금 조달의 총괄자인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주목할 수밖에 없는 핵심 변수다. 크레딧이 곧 조달 비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THE CFO는 기업 신용등급의 방향성을 좌우할 CFO의 역할과 과제를 짚어본다.
롯데그룹 계열사 신용등급이 무더기 하향되면서 롯데물산도 충격파를 피해가지 못했다. 다만 롯데물산 등급을 떨어뜨린 신용평가사는 한 군데에 그쳐 등급 불일치 상태가 됐다. 유사시 그룹의 지원가능성을 두고 신평사간 예측이 달랐을뿐 아니라 그룹을 고려하지 않은 롯데물산 자체신용도 평가에도 차이가 있었다.

◇한신평 "그룹 통합 신용도와 지원 의지는 별개"

한국기업평가는 22일 롯데물산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AA-, 부정적'에서 'A+, 안정적'으로 강등했다. 이달 7일 한국신용평가가 'AA-, 안정적'을 유지한 것과 반대되는 결정으로 등급 스플릿(불일치)이 발생했다. 사실상 예견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롯데그룹 계열사들의 신용등급 연쇄 하락 가능성은 최근 투자은행(IB)업계에서 최고 관심사로 손에 꼽히던 이슈다. 롯데케미칼을 필두로 지난해 말 이미 그룹 계열사들 신용등급 전망에 줄줄이 '부정적' 꼬리표가 붙었다.

당시에도 한국기업평가는 가장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는데 롯데케미칼과 롯데지주 뿐 아니라 롯데물산 아웃룩도 부정적으로 바꿔 달았다. 롯데물산에 안정적 아웃룩을 견지했던 한국신용평가와 대조적이다.

관점 차이는 어디서 생겼을까.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는 모두 롯데물산에 자체 신용도와 대비해 한 노치(notch) 올린 등급을 부여하고 있었다. 유사시 그룹의 지원 가능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원주체는 그룹이며 지원능력은 자체신용도와 지원주체의 신용도(계열통합신용도) 차이를 기준으로 산출한다.

한국기업평가의 경우 지원 가능성을 더 이상 반영할 수 없다고 판단해 이번 평정에서 롯데물산의 등급하향을 단행했다. 롯데물산의 자체신용도, 그리고 지원주체 신용도인 계열통합신용도 사이의 간격이 좁혀졌다는 이유를 들었다. 계열통합신용도는 롯데케미칼과 롯데제과, 롯데쇼핑 등의 자체신용도를 가중평균해서 정해지는데 이달 롯데케미칼 신용등급이 떨어지면서 계열통합신용도가 덩달아 하락했다.

반면 한국신용평가는 롯데그룹의 통합 신용도와 그룹의 지원가능성을 별개로 봤기 때문에 등급을 낮추지 않았다. 한국신용평가는 "지원주체 신용도가 떨어지면 지원객체와의 신용도 차이가 줄어들어 지원능력은 약화한다"면서도 "그룹의 지원 의지에 변동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지원가능성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칭 업' 없이도 AA- 부여한 나신평

지난해 말 아웃룩이 갈렸을 때부터 두 신용평가사가 이같은 논리를 적용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롯데물산의 등급 스플릿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등급 불일치가 발생하면 조달 금리를 산정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재무 전략에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 롯데물산이 나이스신용평가에 추가로 신용평가를 의뢰한 것 역시 이를 신경쓴 조치로 보인다.

롯데물산은 이달 20일 나이스신용평가로부터 한국신용평가와 동일한 'AA-, 안정적'을 부여받았으며, 미공시였던 등급을 롯데물산이 공시 전환해달라고 요청하면서 22일 등급확정이 이뤄졌다. 1년 뒤 소멸되는 기업신용등급이다. 약정상 기업이 미공시를 선택하는 경우 신용등급은 공시되지 않는다.

다만 나이스신용평가의 경우 그룹 지원 가능성을 고려한 '노칭 업(Notcing up)'을 하지 않고도 롯데물산에 AA- 등급을 줬다. 롯데물산의 자체신용도 자체를 한국기업평가 또는 한국신용평가보다 후하게 보고 있는 셈이다. 계열 내 수입에 기반한 사업 안정성을 높게 평가했다.

실제 롯데물산은 그룹 이슈와 별개로 견고한 수익 기반이 두드러진다. 현재 그룹 핵심자산인 잠실 롯데월드타워, 롯데월드몰의 임대·관리와 분양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분양수익은 롯데월드몰·타워 내 레지던스와 프라이빗오피스가 대상이고 임대수익은 쇼핑몰과 오피스, 포디엄 등에서 나온다.


◇강점은 계열 기반 '장기 임대'

롯데물산의 전체 매출에서 임대수입 비중은 올 3월 말 기준 약 60% 수준이다. 임대차계약 상당 부분이 계열사와의 장기계약인 만큼 현금이 안정적으로 유입될 수 있다.

분양수익의 경우 지난해 롯데월드타워 내 레지던스 분양이 끝난 탓에 규모가 축소되긴 했다. 하지만 2021년 6월 롯데월드타워 단지의 단일 소유주가 되면서 수익 기반을 일부 만회했다. 기존에는 롯데월드타워 및 월드몰에 대해 롯데물산과 롯데쇼핑, 호텔롯데가 각각 75%, 15%, 1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가 롯데물산이 나머지 지분을 전부 양수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단지 내 쇼핑몰에 공실 없이 총 270여개 업체가 입점해 있으며 주요 브랜드는 10년 이상, 그 외의 업체는 2~5년의 임대기간을 계약하고 있다. 임대료가 매출과 연동되지만 최소보장 금액이 있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임대료가 보장되는 방식이다.

또 오피스는 작년 말 기준 임대대상 면적(14.7만㎡)이 전부 채워진 상태로 이중 롯데그룹 계열사가 약 55.6%인 8.2만㎡를 빌려쓴다. 이밖에 복합시설 공간인 포디엄은 병원, 파이낸스센터 등이 입점돼 있다. 올해 3월 말 기준 공실률은 8.6%, 그룹 계열사가 총 면적의 35.9%를 사용 중이다.

롯데물산 관계자는 "안정적 임대수익을 바탕으로 한 연간 1800억원 수준의 EBITDA 창출력과 부동산, 보유주식 등을 감안하면 자체적으로도 재무 융통성이 충분한 수준이고 유사시 그룹의 지원 가능성 역시 상당히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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