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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위기의 '투자형 지주사'…투자지분 손상 현실화

투자지분 7206억 손상 인식에 순익 급감…플러그파워 등 지분가치 하락 반영

이민호 기자  2024-04-18 16:03:32
SK
SK는 투자형 지주사를 천명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다수 성장기업에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왔다. 하지만 지난해 종속·관계기업 투자지분에서 7200억원이 넘는 손상차손을 반영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예년에 비해 당기순이익이 큰폭으로 쪼그라드는 결과를 낳았다.

주가 부진과 당기순손실 확대에 직면한 미국 수소기업 플러그파워(Plug power)가 원흉으로 지목된다. 하지만 이외에도 미국 표적단백질분해(TPD) 기업 SK라이프사이언스랩스(SK Life Science Labs)나 미국 스마트글라스 기업 할리오(Halio) 등 SK가 미래사업 육성을 위해 투자한 기업에서도 손상이 발생했다.

◇투자지분 7206억 손상처리…순익 급감 원흉


SK의 지난해 별도 기준 영업이익은 1조5505억원이었다. 2022년보다 4500억원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당기순이익은 3630억원으로 2022년보다 오히려 1800억원 이상 감소했다. SK의 당기순이익은 최근 수년간 흑자를 유지하고 있지만 2020년 1조7160억원에서 매년 꾸준히 줄고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 증가에도 당기순이익이 감소한 이유는 기타영업외비용이 7597억원으로 예년에 비해 치솟은 탓이다. 기타영업외비용이 치솟은 데는 종속·관계기업 투자지분에서 손상차손을 대거 인식한 이유가 크다. 2020년에는 '제로(0원)'였고 2021년 5억원, 2022년 22억원에 불과했던 것이 지난해 7206억원으로 치솟았다.


SK의 지난해말 자산총계 28조6389억원 중 종속·관계기업 투자지분이 77.2%(22조1190억원)다. 여기에는 SK이노베이션이나 SK스퀘어 등 중간지주사 지분뿐 아니라 SK가 직접 투자한 회사의 지분도 포함돼있다.

이는 SK가 투자형 지주사를 표방하고 있는 탓이다. △첨단소재(반도체 소재·배터리 소재·EV SCM) △그린(전기화·청정연료·폐기물) △바이오(CDMO·제약) △디지털(EV 충전·자율주행·AI) 등 4개 투자센터를 설치해 미래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美 SPC 투자지분 3467억 손상인식…누적출자금 1.2조 육박


SK가 지난해 손상차손을 가장 크게 인식한 곳은 완전자회사인 미국 플루투스캐피탈(Plutus Capital NY)이다. 지난해 이 회사 지분에 대한 손상차손 규모는 3467억원에 이른다. 전체 손상차손 규모(7206억원)의 절반에 육박한다. 2017년 이 회사를 설립한 이래로 투자지분을 손상처리한 첫 사례다.

플루투스캐피탈은 SK가 미국 투자를 위해 설립한 투자형 중간지주사 성격의 특수목적법인(SPC)이다. 이 회사의 자회사로는 허드슨에너지(Hudson Energy NY)와 그로브에너지캐피탈(Grove Energy Capital) 등 SPC가 있으며 이들 SPC가 다수 미국 사업회사에 최종 투자하는 형태다.


문제는 SK가 그동안 미국 투자를 넓히기 위해 플루투스캐피탈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은 점이다. 2017년 설립부터 지난해까지 이 회사 유상증자에 투입한 자금만 9416억원이다. 플루투스캐피탈은 2022년 플루투스패션(Plutus Fashion), 플루투스캐피탈II(Plutus Capital NY II), 플루투스캐피탈III(Plutus Capital NY III)를 흡수합병했다. 모두 플루투스캐피탈과 같은 목적의 투자 비히클이다.

SK가 유상증자로 투입한 금액은 플루투스패션 741억원, 플루투스캐피탈II 1233억원, 플루투스캐피탈III 316억원이다. 따라서 이를 합산하면 플루투스캐피탈에 투입한 합산 유상증자 자금은 1조1707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SK는 2021년 플루투스캐피탈에 3885억원의 장기대여를 실시했으며 이 대여금은 현재도 유지하고 있다. 대여금까지 고려하면 플루투스캐피탈에 투입한 자금은 1조5000억원이 넘는다.

◇플러그파워 주가 3년새 87% 하락…작년 순손실폭도 급증


SK가 플루투스캐피탈에 1조원이 넘는 유상증자 자금을 투입하고도 지난해 3500억원 가까이 손상차손을 인식한 이유는 무엇일까. 플루투스캐피탈 자회사인 그로브에너지캐피탈이 투자한 플러그파워가 원흉으로 지목된다. 이는 SK의 지난해 연결 기준 지분상품 공정가치 변화를 통해 알 수 있다. 플러그파워는 SK의 손자회사(그로브에너지캐피탈)의 종속·관계기업이 아닌 투자지분으로 분류돼 그 공정가치가 별도가 아닌 연결 재무제표에 반영된다.

SK는 2022년말 8617억원으로 평가했던 플러그파워 지분 공정가치를 지난해말 3189억원으로 큰폭으로 낮춰잡았다. 불과 1년 새 5400억원 이상 하락한 것이다.

플러그파워(Plug power) 최근 5년 주가 흐름. 2024년 04월 18일 기준. 출처: 미국 NASDAQ 캡쳐

여기에는 플러그파워 주가 하락이 계기가 됐다. 플러그파워는 미국 나스닥시장 상장사다. 2020년말 종가 기준 33.91달러였던 플러그파워 주가는 2021년말 28.23달러에서 2022년말 12.37달러로 하락했고 지난해말에는 4.50달러까지 추락하기에 이르렀다. 3년간 주가하락률이 86.7%나 된다. SK가 플러그파워에 대한 투자를 처음 공시한 것은 2021년 1월로 최근 5년 내 주가가 고점이었던 시기다.

플러그파워 투자 이후 이어진 주가 부진에도 SK가 그동안 플루투스캐피탈 투자지분에 대한 손상차손을 반영하지 않다가 지난해에서야 반영한 이유는 무엇일까. 플러그파워의 당기순손실 폭이 지난해 크게 확대되면서 투자지분에 대한 손상처리가 불가피했던 것으로 보인다. 플러그파워 매출액은 지난해 9억달러까지 늘었지만 당기순손실은 2020년 6억달러, 2021년 5억달러, 2022년 7억달러에 이어 지난해 14억달러로 크게 불어났다.


지난해 투자지분에 대한 손상차손 인식은 플루투스캐피탈에 그치지 않았다. SK라이프사이언스랩스에서 1732억원이 반영됐고 SK시그넷에서 803억원이 반영됐다. 이외에 텔루스인베스트먼트파트너스(Tellus Investment Partners) 534억원, 쏘카모빌리티말레이시아(Socar Mobility Malaysia) 292억원, 에스엠코어 105억원, 할리오 84억원 등이었다. 텔루스인베스트먼트파트너스도 플루투스캐피탈처럼 미국 투자를 위해 설립한 SPC다.

SK 관계자는 "성장기 사업이나 인프라 사업 특성상 투자 시점과 회수 시점간에 차이가 있다"며 "회계 기준상 현재 시점 평가손을 반영한 것으로 향후 시장상황 및 가치 상승에 따라 추가 환입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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