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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달전략 분석

한미약품 자금유입 선택지에서 사라진 '회사채'

②4년째 발행내역 전무, 단기성차입 비중 급상승 '만기분산 필요성 대두'

박동우 기자  2023-11-30 15:39:55

편집자주

조달은 최고재무책임자(CFO) 업무의 꽃이다. 주주의 지원(자본)이나 양질의 빚(차입)을 얼마나 잘 끌어오느냐에 따라 기업 성장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결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난다는 특징이 있다. 최적의 타이밍에 저렴한 비용으로 딜(Deal)을 성사시키는 것이 곧 실력이자 성과다. THE CFO는 우리 기업의 조달 전략과 성과, 이로 인한 사업·재무적 영향을 추적한다.
한미약품은 2008년 이래 사채를 찍어내 6400억원을 확보했다. 하지만 근래 들어 실탄유입 선택지에서 '회사채'가 사라졌다. 2019년을 마지막으로 4년째 발행 내역이 전무하다. 기술수출 계약 해지, 신용등급 하향 조정 등의 악재가 작용했다.

올들어 신용평가사들이 한미약품의 신용등급에 '긍정적' 전망을 내리면서 조달기조 변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4년여 동안 단기성 차입 비중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차입만기 분산 필요성이 거론되는 상황이다. 2024년 5월 750억원어치 회사채 만기 도래가 유동성 유입 전략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15년간 6400억 확보, 3·5년물 구성

한미약품이 2008년 이래 회사채를 발행해 확보한 금액은 6408억원이다. 사모채 대신 공모 회사채 시장으로 접근하는 기조가 이어졌다. 공모채 발행액 비중이 86.1%(5517억원)를 차지한 대목이 방증한다. 사모채는 특정한 기관투자자와 조건을 협의해 발행하는 만큼 금리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아 조달에 불리하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회사채 발행은 만기를 분산해 상환압력을 완화하는데 기여했다. 5년 만기 채권 발행액이 2900억원으로 15년간 공모채 발행액의 52.6% 규모다. 공모사채 조달액 5517억원 가운데 47.4%인 2617억원은 3년물이다.

증권가와 돈독한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부수효과도 얻었다.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은 각각 세 차례나 공모채 발행 대표주관사로 참여했다. 2012년과 2013년에 주관사로 나선 삼성증권은 한미약품 창업주 고(故) 임성기 회장이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90만주를 계열사 임직원들에게 무상 증여할 당시 주식 수령 계좌를 일괄 개설해줬다.

공모채로 얻은 5517억원 중에서 운영·시설 자금으로 투입된 금액이 3571억원(64.7%)이다. 당뇨병 치료제 'LAPS-Exendin4', C형간염 신약 'LAPS-IFNα' 등의 임상을 진행하고 경기도 화성시에 완제의약품 공장을 새로 짓는데 실탄을 썼다. 은행권에서 단기 차입한 자금을 갚는데도 요긴하게 활용했다.


다만 한미약품의 회사채 발행은 2019년을 기점으로 자취를 감췄다. 그해 5월에 3년(1000억원)과 5년(750억원)으로 만기 트렌치를 구성해 1750억원어치 공모채를 찍은 사례가 마지막이다. 이후 4년 내내 외부 자금조달 수단을 금융기관 대출과 기업어음(CP)에 의존하는 양상이 이어졌다.

◇'수익성 증진→신용등급 변화' 구상, 2024년 5월 분수령

회사채 발행을 멈춘 건 신용도 하향과 궤를 같이했다. 2020년 5월 한국신용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가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한 단계 내렸다. 다국적 제약사 사노피가 당뇨병 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 라이선스 아웃(기술수출) 계약 해지를 통보한 대목이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실적 변동의 불확실성이 신용등급 하향 조정 요인이었던 만큼 한미약품 경영진은 수익성 증진을 입증하는데 공력을 기울였다. 신약 파이프라인 R&D 비용을 해외 파트너 기업이 부담하는 방식으로 연구개발비의 과도한 증가를 억제했다. 여기에 고혈압 신약 '아모잘탄 패밀리', 이상지질혈증 치료제 '로수젯' 등의 판매 호조도 달성했다.

노력한 결과 영업이익률이 2020년 3%에서 2022년 8.1%, 올해 3분기 누적 9.8%까지 상승했다. 수익성 개선세와 맞물려 올해 6월 한국신용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는 한미약품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조정했다. 과거 회사채 발행이 활발할 당시에 부여된 신용등급 'A+'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간 셈이다.

한미약품이 회사채 발행에 나설 경우 단기성 차입 비중을 낮추는 효과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2023년 9월 말 기준으로 별도기준 총차입금 5111억원 가운데 상환 만기가 1년 이내인 잔액은 4144억원이다. 전체의 81.1%를 차지한다. 2019년 말 32.9% 대비 48.2%포인트(p) 오른 수치다.


2024년 5월에 750억원 규모 5년물 회사채의 만기가 도래한다. 경영진이 어떠한 대응 방안을 구사할지 관심이 쏠린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공모채 상환·차환 계획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회사채 발행에 나설지 여부도 아직은 정해진 바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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