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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 풍향계

LG화학 딜 '한국증권 셀프참여'에 IB들 '불만'

2년물 금리하단에 집중 베팅…가격 비싸져 물량 못받은 기관 다수

손현지 기자  2024-03-08 13:42:57

편집자주

증권사 IB(investment banker)는 기업의 자금조달 파트너로 부채자본시장(DCM)과 주식자본시장(ECM)을 이끌어가고 있다. 더불어 인수합병(M&A)에 이르기까지 기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워낙 비밀리에 딜들이 진행되기에 그들만의 리그로 치부되기도 한다. 더벨은 전문가 집단인 IB들의 주 관심사와 현안, 그리고 고민 등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해 보고자 한다.
최근 IB 관계자들과 기관 투자자들 사이에선 지난달 27일 진행된 LG화학(AA+) 수요예측 딜이 회자되고 있다. 대표 주관사단이었던 한국투자증권이 2년물 트랜치에서 유독 많은 물량의 주문을 넣으며 프라이싱 과정에 참여, 채권 가격을 높여놨기 때문이다.

주관사가 증권회사 보유계정이나 자체 채권 리테일 계정을 활용해 회사채 수요예측에 투자자로 참여하는 경우는 꽤 있었다. 하지만 그 물량은 많아봐야 500억원을 채 넘기지 않는 수준이었는데 한국투자증권 혼자서 2000억원이 넘는 물량의 주문을 넣었다.

일부 기관 투자자들 노골적으로 불만을 제기했다. 주관사단이 세일즈를 해서 참여를 독려해놓고 막상 더 낮은 금리로 주문을 넣어 채권가격이 예상보다 비싸졌기 때문이다. 한 기관 투자자는 "주관사가 다 인수할거면 애초에 왜 참여를 독려했는지 모르겠다"며 "들러리가 된 듯 하다"는 불만을 내비치고 있다.

◇"우리가 들러리냐"…뿔난 기관들

증권업계 안팎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은 지난주 진행된 LG화학 수요예측에서 2년물 1000억원 모집에 총 2200억원 가량을 셀프 베팅한 것으로 알려진다. 자체 국내채권트레이딩부와 기업금융투자부, 채권상품부 등의 계정을 활용해 프라이싱에 참여한 것으로 파악된다.

주목할 건 주문 금리다. 한국투자증권에서 써낸 금리 수준은 -15bp~-11bp에 500억원, -1bp에 1000억원의 주문을 넣었다. 가장 높게 써낸 주문 금리는 5bp에 200억원이었다. 이날 2년물 입찰 금리 수준이 -15bp~+30bp 였던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한국투자증권 한 하우스에서만 최하단 금리에 주문을 대거 넣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한 기관 투자자는 "주관사들이 인수할거면 애초에 왜 참여를 독려했는지 모르겠다"며 "2년물 트랜치에선 한국투자증권이 가져간 물량으로 소진돼 물량을 못받은 기관들이 수두룩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나머지는 들러리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증액분까지 합치면 한국투자증권이 2년물 채권 대부분 물량을 홀로 독식했다는 것이다. 이번 LG화학 딜에는 국민연금 등 연기금을 비롯해 은행, 증권사, 자산운용사, 신탁사 등 다수 기관들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로 기관들 입장에선 난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LG화학 딜 규모는 조단위인 만큼 발행사와 주관사단이 일찍이 세일즈에 총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주관사가 직접 더 낮은 금리로 주문을 넣어 채권가격을 높인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융 계열사 적은 한국증권, '불가피한 선택' 평가도

LG그룹은 증권사 RM들에게 놓칠 수 없는 이슈어다. 워낙 발행 금액도 크고 자주 채권을 찍는 이슈어라 중요하게 여겨질 수 밖에 없다. 특히나 LG화학이나 LG에너지솔루션 같은 계열사들은 1년에 한 번 대규모 회사채 조달을 단행하는 만큼 수요예측 흥행여부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슈어들이다.

증권사들 마다 캡티브영업을 약속하며 주관경쟁에 나서는 이유다. 딜 수임 과정에서 보험사와 자산운용사, 종금사, 캐피탈사 등 계열사들의 참여를 약속하는 관행이 자리잡은 상황에서 한국증권만 지적하기엔 애매하다는 분석도 있다.

LG화학 발행이 조 단위 대형 딜이었던 만큼 물량을 소화하려면 캡티브 참여가 필수적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1조6000억원을 조달했던 LG에너지솔루션 회사채 수요예측 때도 주관사들의 캡티브 참여 물량이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투자증권이 주관경쟁이 치열해진 상황 속에서 딜을 따내려면 셀프 참여가 불가피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번 LG화학 회사채 발행의 주관업무를 맡은 증권사는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신한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등 5곳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은행계열 증권사인 NH, 신한, KB에 비해 동원 가능한 금융계열사가 적다.

한 대형 증권사 IB 관계자는 "사실상 증권사들 입장에서도 영업을 해야하다보니 불가피한 수순"이라며 "현재로선 금융당국 차원의 제도 개선이 뒤따르지 않는 한 규제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임 수장 김성환 대표, DCM 비즈니스 드라이브

한국투자증권의 갑작스런 회사채 참여물량 확대 행보에 작년 말 김성환 사장 체제로 바뀐 후의 변화가 아니냐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김 사장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1세대로 불리는 IB전문가다. 2016년에는 IB그룹장(전무)을 맡으면서 하우스 기업금융 역량을 크게 끌어올린 장본인으로도 평가된다. 올초 취임과 함께 "아시아의 골드만삭스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공고히 해온 만큼 DCM 부문에서 공격적인 영업기조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IB그룹장 시절 공격적인 영업 성적으로 경쟁사를 긴장시켰던 것으로 알려지는 인물"이라며 "상남자 스타일의 영업맨으로 유명한 만큼 이미 정상에 올라있는 ECM분야 뿐 아니라 리그테이블 3위권에 올라있는 DCM 분야에서도 실적향상 등의 주문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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