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CFO

0

유동성 풍향계

순손실 낸 한솔제지, 현금흐름 개선 배경은

재고자산 등 운전자본 감소…원재료 가격 하락 영향

임한솔 기자  2024-03-13 14:38:54

편집자주

유동성은 기업 재무 전략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다. 유동성 진단 없이 투자·조달·상환 전략을 설명할 수 없다. 재무 전략에 맞춰 현금 유출과 유입을 조절해 유동성을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한다. THE CFO가 유동성과 현금흐름을 중심으로 기업의 전략을 살펴본다.
한솔제지가 영위하는 제지산업은 원재료 비중이 큰 산업이다. 펄프와 폐지 등이 대체로 제조원가의 50% 안팎을 차지한다. 이렇다 보니 원재료 가격의 오르내림이 실적과 현금흐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원재료 가격의 중요성은 장부상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한솔제지는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감소 등 전년 대비 악화한 시장 환경의 영향으로 순손실을 봤다. 그러나 급등했던 원재료 가격이 안정화하면서 현금흐름은 오히려 개선되는 효과를 봤다.

◇펄프 가격 803달러→659달러, 재고자산 부담 완화

지난해 한솔제지는 별도기준 매출 2조729억원, 영업이익 286억원을 기록했다. 역대 최대 실적을 냈던 2022년과 비교하면 매출은 6.4%, 영업이익은 80.9% 줄었다. 순손익의 경우 908억원에서 마이너스(-) 126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하지만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순손익과 반대로 움직였다. 2022년 -282억원에서 지난해 2075억원으로 증가했다. 덕분에 한솔제지는 재무활동(-1578억원)과 투자활동(-363억원)에 현금을 들이고도 현금 보유량을 늘릴 수 있었다. 2022년 626억원이었던 한솔제지 현금및현금성자산은 지난해 말 759억원을 기록했다.

한솔제지가 순손실을 냈음에도 현금 사정이 좋아진 것은 운전자본이 줄었기 때문이다. 특히 재고자산의 증감이 현금흐름의 변동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2022년 한솔제지 재고자산은 4595억원으로 전년 대비 1363억원 증가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1205억원 감소해 2021년 수준으로 돌아갔다.

(자료=전자공시시스템)

한솔제지가 구매하는 주요 원재료의 가격이 하락해 재고자산 부담이 완화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솔제지는 대체로 국내에서 폐지를 조달하고 펄프는 수입한다. 폐지는 산업용지, 펄프는 인쇄용지 및 특수지에 주로 쓰인다. 품목별 매출 규모는 지난해 기준으로 산업용지 5218억원, 인쇄용지 및 특수지 1조4096억원 수준이다. 펄프 쪽의 원재료 비중이 클 것으로 보인다.

2022년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글로벌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해였다. 펄프도 예외는 아니었다. 2022년 초 1톤당 675달러였던 펄프 가격은 한때 톤당 1000달러를 웃도는 수준으로 치솟았다. 한솔제지가 구매한 펄프 평균 가격도 2021년 636달러에서 2022년 803달러로 26%가량 올랐다.

하지만 펄프 가격은 1년 만에 다시 하락 추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평균 600달러대로 내려갔다. 이에 따라 한솔제지 원재료 매입액은 2022년 7870억원에서 지난해 6141억원으로 확 줄었다. 가격이 오른 시기 들여온 원재료를 소진한 뒤 정상 가격의 원재료를 비축했으니 자연히 재고자산도 감소했다.

역대 최대 매출을 낸 시기 쌓인 매출채권 일부가 현금화하면서 현금흐름 개선에 기여하기도 했다. 실제 현금이 지출되지 않는 비용인 대손상각비와 감가상각비도 영업활동 현금흐름에 가산됐다.

(자료=전자공시시스템)

◇원재료 가격 다시 상승세, 한솔제지 판매 전략은

지난해 펄프 가격이 계속 내려가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연간 평균으로는 2022년보다 하락했지만 월별로 보면 지난해 중순부터 다시 오름세를 보이는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원자재가격정보에 따르면 펄프 가격은 지난해 6월 1톤당 565달러에서 올해 2월 785달러에 이르렀다. 캐나다 퀘벡에서 발생한 초대형 산불로 펄프 원료 수급에 차질이 빚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솔제지를 비롯한 제지업계는 원재료 가격이 크게 변동할 때마다 종이 판매 가격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지난해 한솔제지 인쇄용지 및 특수지 평균 판매 가격은 전년 대비 6.15% 하락했다. 반대로 펄프 가격이 올랐던 2022년에는 전년 대비 34% 가격 상승이 이뤄졌다.

올해 원재료 가격이 지속 상승할 경우 종이 가격도 다시 오를 공산이 크다. 한솔제지는 이미 지난해 12월 인쇄용지 가격을 한 차례 인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한솔제지의 매출 및 수익성이 지난해보다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는 중이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