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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법인 재무분석

'가동률 1위' 현대차 러시아 공장, 일단 역사 속으로

2년간 러·우 전쟁 따른 실적 악화로 매각 결정, 높은 가동률·준수한 수익성 자랑

양도웅 기자  2023-12-22 15:53:46

편집자주

2022년 12월 법인세법 개정으로 국내 본사가 해외 자회사로부터 배당금을 받을 때 부담하는 세금 규모가 큰 폭으로 줄었다. 이에 따라 현금 확보가 필요한 기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들은 배당을 확대할 여력이 있는 해외 자회사는 어디인지 살펴봐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THE CFO가 기업별 국내 본사 배당수익을 책임질 우량 해외 자회사를 찾아본다.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최근 매각 결정한 러시아 생산법인(HMMR)은 오랫동안 '공장 가동률 1위'를 자랑하던 곳이다. 이를 기반으로 매년 1000억원 안팎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우량 해외 자회사 지위에 있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만 없었다면 본사의 배당 수익원으로서 또 다른 역할을 했을 것이다.

HMMR은 소형 승용차 생산을 목적으로 2008년 러시아 제2 도시로 알려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설립됐다. 최초에는 현대차만 출자했으나 2010년 기아도 참여했다. 시범 양산을 마치고 2011년 본격 양산을 시작했을 무렵에 현재 지분구도인 현대차 70%, 기아 30%가 됐다. 두 회사는 3년간 총 4293억원을 출자했다.


◇2011년 본격 생산 후 2021년까지 '가동률 1위'만 9차례

HMMR은 가동을 시작한 2011년부터 현대차 전 세계 공장 가운데 가동률 1위를 기록하며 존재감을 보였다. 연간 기준 11만5000대를 초과하는 13만8987대를 생산해 가동률 121%를 달성했다. 이듬해인 2012년 생산능력을 20만대로 확대했음에도 22만4420대를 생산하면서 가동률 112%를 기록했다. 북미 생산법인(HMMA)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가동률이었다.

초기 반짝 효과만은 아니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2014년 크림반도를 침공한 러시아에 경제재제를 가한 후폭풍이 일었던 2016년 HMMR 가동률은 104%(3위)로 떨어졌지만 이때를 제외하면 2013년과 2021년 사이에 여덟 차례나 가동률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이 기간 평균 가동률은 117%다. 쏠라리스(한국명 엑센트)와 크레타(현지 전략형 모델)는 러시아에서 '국민차'로 불리기도 했다.

높은 공장 가동률 덕분에 HMMR의 수익성도 준수했다. 현대차가 HMMR 실적을 밝히기 시작한 2013년부터 2021년까지 HMMR은 2015년 딱 한 해를 제외하고 매년 200억~2000억원의 순이익을 꾸준히 올렸다. 이 기간 순이익률도 1~8%로 양호했다.

하지만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촉발된 양국의 전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에도 끄떡 없었던 HMMR의 가동률과 수익성은 크게 뒷걸음질쳤다. 2022년 가동률은 22%로 떨어져 전 세계 8개 생산법인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2301억원 순손실로 역대 가장 안 좋은 실적을 나타냈다.


◇2년 후 '바이 백' 조건 포함한 이유는

올해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지속되면서 현대차와 기아가 HMMR을 매각할 것이란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올해는 상황이 더 심각해져 공장은 아예 멈췄고 9개월 동안 지난해 연간 순손실과 맞먹는 2270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결국 현대차와 기아는 HMMR을 현지 업체인 아트파이낸스(Art-Finance)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만약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없었다면 HMMR은 현대차와 기아의 든든한 배당 수익원 역할을 했을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세법 개정으로 해외 자회사(보유 지분 10% 이상 6개월 넘게 보유 중인 해외법인 한정)가 본사에 지급하는 배당금의 5%에 대해서만 과세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100%였다. 우량 해외 자회사로부터 저렴하게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일례로 기아는 올해 3개 분기 동안 기아아메리카와 기아슬로바키아 등 해외 자회사를 포함해 국내외 자회사 등으로부터 3조6707억원이 넘는 배당금을 받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거둔 배당금 수익의 30배가 넘는다.

달라진 세법과 HMMR의 높은 가동률·수익성은 현대차와 기아가 2년 후에 HMMR을 다시 사올 수 있는 '바이백(Buy Back)' 조항 포함을 전제로 아트파이낸스와 협상을 벌이는 이유로 판단된다. 현대차 측은 "공장 지분 매각 관련 구체적인 계약 조건을 놓고 협상 중"이라며 "기존 판매된 차량에 대한 AS 서비스 운영은 지속한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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