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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사 '시총 뉴노멀'

순위 다투는 현대차·기아, 만년 형동생은 없다

20년전 시총은 현대차 3분의1…탄탄한 성과·주주환원에 '형만한 아우'

허인혜 기자  2024-03-29 15:58:20

편집자주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다 꺼낼 수 없지만 이 말만은 할 수 있다. 쉽게 '대세'가 되진 않았다. 어떤 곳은 여러 번의 '빅 딜' 후 투자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또다른 곳은 적자만 냈지만 기업공개(IPO)의 적기를 제대로 잡아 그룹의 대표 주자에 올랐다. 모든 성장 전략이 다 달랐지만, 어느새 그룹에서도 가장 커져버린 시가총액이 이들의 성공과 새 시대를 주목하게 만든다. 더벨이 갖은 노력 끝에 시장을 사로잡은 주요 그룹 간판 계열사의 시총 그 뒷배경을 들여다본다.
현대차그룹에서 현대자동차는 형, 기아는 동생이라는 말은 공식처럼 여겨졌다. 현대차가 기아를 인수하며 한 가족이 됐다는 점을 상기하면 현대차와 기아는 한솥밥을 먹을 때부터 형·동생의 운명이었다. 기아는 믿음직한 동생으로서의 역할을 잘 해왔지만 현대차가 맏형으로서 생산량과 영업이익, 시가총액까지 늘 앞서왔다.

때문에 기아가 현대차의 지표를 뛰어넘는 건 이변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동안의 히스토리를 살펴보면 기아의 시총이 현대차를 추월한 순간도 있었다. 기아가 현대차를 이길 때는 '사건'으로 화자돼 기록으로 남았다. 대부분은 외부 요인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었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현대차가 앞, 기아가 뒤에 서는 순서를 되찾았다.

하지만 최근 기아와 현대차의 레이스는 조금 다른 양상이다. 기아의 시총이 현대차를 넘는 순간이 자주 찾아왔다. 그만큼 둘 사이의 간극이 좁아졌다는 의미고 이 말은 곧 기아의 추월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장기전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여전히 기아의 몸집이 현대차 대비 조금 작지만 이제는 현대차가 형, 기아가 동생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워졌다. 늘 형의 뒤에서 따라왔던 기아는 어떻게 현대차보다 큰 아우로 성장해 왔을까.


◇'인수합병·해외 브랜드 입성·IMF' 변수 많던 90년대

현대차는 1974년, 기아는 1973년 상장했다. 현대차가 기아를 인수한 건 1999년 3월이다. 기아가 현대차를 가장 많이 앞선 때는 1995년 이후부터 2000년까지에 쏠려있다. 거의 매년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달동안 기아가 현대차의 시총을 눌렀다. 사실 이 시기의 현대차와 기아의 경쟁은 지금과는 의미가 다르다. 이때만 해도 현대차와 기아는 같은 그룹에 속하지 않았다.

외부 변수도 적잖았다. 외환위기(IMF)가 찾아왔고 르노의 삼성자동차 인수와 같은 해외 브랜드의 입성에도 영향을 받았다. 현대그룹의 현대투자신탁증권이 한남투신을 인수하며 부실해졌던 여파로 현대차의 주가가 하락하기도 했다. 기아는 당시 모기업이었던 기아그룹의 부도에도 M&A 시장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주가를 방어하고 오히려 몸값을 올렸다.

한국거래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양사의 가장 오래된 시가총액은 1995년 5월부터의 기록이다. 1999년대 후반부터의 언론보도 등을 참고하면 당시에도 몇 차례를 제외하면 현대차의 시총이 대체로 기아를 앞서왔다. 이 점을 근거로 이전까지 계속 현대차가 기아 대비 몸집이 컸다고 가정하고 1995년부터 현재까지의 지표를 살펴봤다.

기아가 성적에 따른 투심과 시총으로 현대차를 이기던 때는 1995년 하반기와 1996년이다. 독일에 첫 해외법인을 설립하고 영국 로터스 엔지니어링 등과 제휴하는 성과를 냈다.

1997년부터 1999년까지는 기아(당시 기아자동차)의 모기업이었던 기아그룹의 분해가 논의되던 때다. 기아는 아시아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인수합병 시장에서 인기가 높았고 더 좋은 모기업에 편입되리라는 기대감이 주가를 밀어올렸다. 사가는 현대차보다 기아의 시가총액이 자주 더 커졌다. 이 시기는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를 통틀어 기아가 현대차를 가장 큰 격차로 앞지르던 때다. 약 5000억원에서 많게는 2조3600억원까지 차이가 났다.

인수 직후인 2000년 한해동안에도 기아가 현대차의 시총을 뛰어넘은 시기가 길고 잦았다. 당시 현대차와 기아의 시총은 3조원 초반에서 움직이고 있었는데 기아가 3조5000억원을 넘고 현대차가 3조원 초반대에 자리하는 등 격차도 수천억원대로 벌어졌다. 시장에서는 배경으로 해외 브랜드 입성 등을 들었지만 당시의 시총과 무관하게 현대차의 기업가치가 기아의 두 배는 될 것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었다.

이후로는 약 23년간 둘 사이의 전복은 일어나지 않았다. 2003~2004년에는 기아의 시가총액이 현대차의 3분의1 수준이었다.

◇20년 고착화된 시총, 전복 감지됐다

양사는 올해 '합산시총 100조'를 넘겼다. 그런데 현대차와 기아가 100조를 어떻게 나눠지고 있는 지를 보면 이전과는 다르다. 현대차와 기아가 각각 50조원 안팎의 시가총액을 책임지는, 거의 50대50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2000년부터 약 20년간 흔들리지 않았던 순서에 변화가 감지된 건 2019년부터다. 시총 차이를 보면 2019년 하반기를 기준으로 양사의 시총 차이가 10조원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2020년 7월에는 약 7조~8조원 안팎으로 차이가 줄었다. 이후 다시 차이가 벌어졌고 2020년 말~2021년 중순까지는 격차가 커졌지만 전체적인 흐름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2022년 이후 격차는 또 가파르게 줄었다.

23년만에 처음으로 기아가 현대차를 추월한 건 올해 1월 말이다. 최근 들어 양사의 주가 등락폭이 2~3%만 되도 순위가 바뀌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올해만 해도 1월 31일, 2월 2일, 3월 18일 기아가 현대차를 눌렀고 둘 사이의 차이가 1조원도 되지 않은 때도 여러 차례다. 특히 3월 들어 양사의 차이가 역전되거나 좁아진 날이 늘어나고 있다.

기아가 형만한 아우가 된 건 최근 3년 사이, 더 좁혀보면 2022년 이후라는 이야기다. 현대차가 시총을 줄이기보다 늘렸기 때문에 기아는 그보다 더 큰 성장을 했다는 뜻이 된다. 이 시기 기아의 어떤 움직임이 현대차에 견줄만한 성장을 이끌었을까.

◇기아가 커진 이유 1: 동반 성장, 그중에서도 알찼던 기아

우선 실적이 좋았다. 현대차와 기아는 국내 상장사 중에서도 영업이익 1위와 2위를 기록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연결 매출 162조6636억원, 영업이익 15조1269억원으로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14.4%, 영업이익은 54% 증가했다.

기아는 지난해 연결 매출 99조8084억원, 영업이익 11조6079억원을 달성했다. 역시 역대 최고 실적이다. 현대차와 기아 모두 좋은 성과를 냈지만 영업이익률 등을 보면 기아가 조금 더 알찬 성적을 보였다.


지난해 영업이익률을 보면 현대차가 9.3%, 기아가 11.6%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현대차의 9.3%도 글로벌 완성차 기업 테슬라의 같은 기간 기록인 8.2%를 넘긴 것인데 기아가 더 높은 성과를 냈다.

해외에서는 기아가 현대차보다 더 차를 잘 파는 곳도 있다. 특히 주력 시장인 유럽에서 지난해 기아가 현대차를 이겼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지난해 3분기까지 기아의 유럽 누적 판매량이 44만8000대, 현대차가 40만3000대다. 미국 판매량도 현대차와 엎치락뒤치락 경쟁한다.

최근 동향을 보면 현대차·기아가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 비등한 판매량을 보이고 있다. 현대차의 2월 유럽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5.6% 증가한 4만51대, 같은 기간 기아 판매량은 0.9% 감소한 3만9079대로 나타났다.

◇기아가 커진 이유2: 배당금 늘리고 자사주 소각하고

기아의 시가총액은 주주환원책에도 큰 영향을 받고 있다. 1월 주주환원책을 공개하자 주가가 올라 현대차를 앞질렀다. 반대로 이달 19일 배당락일을 맞자 기아의 주가는 하루만에 7.11% 빠지기도 했다. 2021년 2월 약 15% 하락세 이후 일일 주가 하락폭으로는 가장 컸다.


기아는 지난해 결산 배당금을 주당 5600원으로 정했다. 당기순이익 기준 배당성향은 25%에 달한다. 올해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 계획도 내놨다. 취득한 자사주의 50%는 상반기중으로 소각하고 3분기까지 경영 목표 달성에 따라 나머지를 추가 소각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예정대로 모두 소각한다면 주주환원율이 30%까지 오른다.

현대차도 결산 배당금으로 8400원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을 책정했지만 결산 배당만 보면 기아가 주가대비 배당률이 더 높다. 현대차는 이미 보유 중인 지분 중 4% 수준의 자사주를 매년 1%씩 소각한다는 목표다. 김평모 DB금융투자 연구원은 "기아는 배당금 증가와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책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어 이것만으로도 매력적"이라고 봤다.

다만 1배에 미치지 못하는 주가순자산비율(PBR) 등을 염두에 둘 때 현대차 역시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종목이다. 또 현대차의 자산회전율이 기아(126%) 대비 절반 수준인 63%라는 점에서 투자자산 재배치 등에 따른 자기자본이익률(ROE) 개선을 이끌면 추가적인 상승 여지가 있다고 증권가는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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