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금융그룹이 총자산 기준 업계 7위 페퍼저축은행 인수를 타진하고 있다. OK금융에는 없는 경기·인천 영업권을 확보해 전국구로 영업을 확대할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다만 적정 인수가를 두고 양측의 이견이 갈리며 협상이 길어지는 모습이다.
그러는 사이 페퍼저축은행의 인수 매력이 커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 희망퇴직을 단행해 100여명의 임직원을 감축해 비용을 절감하고 부실채권을 빠르게 정리하는 등 체질개선을 진행하고 있어서다. 디지털 경쟁력, 자체 신용평가모델(CSS) 등 강점으로 꼽히는 인프라 역시 페퍼저축은행의 저력으로 평가된다.
◇인수가 두고 이견…페퍼그룹, 9년 간 1695억 증자해 606억 배당 금융권 및 저축은행업계에 따르면 OK금융그룹은 글로벌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인 KKR과 페퍼저축은행 인수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KKR은 2017년 당시 페퍼저축은행의 지분 100%를 쥐고 있는 페퍼그룹를 인수해 페퍼저축은행 최대주주에 올랐다.
OK금융은 올 3월 페퍼저축은행 실사에 착수해 4개월 째 협상을 지속하고 있다. 인수가를 두고 양측의 이견이 갈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KKR과 OK금융 모두 손해보는 딜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페퍼저축은행 수시공시에 따르면 페퍼그룹은 2017년부터 올 3월까지 14차례에 걸쳐 총 1695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같은 기간 페퍼저축은행이 페퍼그룹을 대상으로 한 배당은 한 차례에 불과했다. 2023년 보통주와 우선주 1주당 1만2530원의 중간배당을 지급해 페퍼그룹은 606억원을 지급받았다. 페퍼그룹이 페퍼저축은행 전신인 늘푸름저축은행을 2013년 인수할 때 가격은 120억원 전후로 알려졌다.
이를 종합적으로 보면 최소 1200억원 이상 값이 매겨지지 않으면 KKR 입장에서 매각 실익이 없는 셈이다. 인수 당시 4000억원이었던 페퍼저축은행 자산이 올 1분기 2조7637억원까지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KKR은 이를 훌쩍 상회하는 금액을 제시했을 것으로 보인다. 페퍼저축은행의 지난해 말 자기자본은 2677억원이다.
페퍼저축은행은 2020년대 초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업계 돌풍을 일으키며 가파르게 성장해 '빅5' 저축은행에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 악화가 장기화되면서 건전성은 물론 수익성이 크게 뒷걸음친 상황이다. 보수적으로 여신을 취급하고 부실채권 정리에 속도를 내면서 2022년 7조원을 넘어섰던 자산 규모는 급격히 축소됐다.
이와 달리 시장에서 저축은행을 보는 시선은 차갑다. 근 3년간 업황 악화가 이어지면서 수익성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최근 OK금융의 상상인저축은행 인수 협상은 급물살을 탔는데, 시장에서 거론되는 가격은 1080억원 수준이다. 상상인저축은행의 자기자본은 지난해 말 기준 2244억원으로,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48배 수준이다. 금융위의 행정명령에 따라 상상인그룹이 저축은행 지분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 등 복합적인 요인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SBI저축은행은 교보생명에 오는 2026년 10월까지 지분 50%를 단계적으로 양도하기로 결정했다. 매각가는 9000억원으로, PBR은 0.95배 수준으로 책정됐다. 대신 SBI저축은행은 경영권 양도 이후에도 경제적 권리 70%를 확보하기로 합의했다. 다만 1위 저축은행의 상징성을 감안하면 딜 자체가 저렴하게 클로징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OK금융이 페퍼저축은행을 노리는 이유는 영업권역 이점이 크기 때문이다. OK저축은행은 서울, 충청, 호남 영업권을 두고 있다. 페퍼저축은행은 경기도와 호남지역을 영업권으로 두고 있어 서울과 경기권에 걸친 알짜 영업권을 확보하게 돼 전국구 영업을 확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2년 3개월 동안 부실채권 3441억원 규모 상·매각 페퍼저축은행은 2023년부터 본격적으로 내실경영으로 전환했다. 앞서 취급한 주택담보대출에서 부실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경영 상황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손충당금을 대규모로 쌓으며 2023년과 2024년 각각 1072억원, 961억원의 적자를 냈다. 1분기 순손실은 240억원으로, 전년 동기(379억원)보다 적자 폭이 축소됐다.
올 초 페퍼저축은행은 첫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지난해 말 487명이었던 임직원은 올 3월 말 378명으로 줄었다. 전체 임직원의 22.4%가 회사를 떠났다. 이에 1분기 페퍼저축은행의 해고 및 명예퇴직 비용은 57억원이 발생했다. 급여는 75억원으로, 전분기(84억원)보다 9억원 줄었다.
부실채권 회수 작업에도 주력하고 있다. 페퍼저축은행은 2023년부터 올 3월 말까지 대손충당금을 2851억원을 추가로 쌓아 총 3441억원 규모 부실채권을 상·매각했다. 이를 통해 페퍼저축은행의 고정이하여신은 지난해 6월 말 5510억원에서 점차 감소하고 있는 모습이다. 올 1분기 고정이하여신은 3108억원이다.
줄어든 고정이하여신과 달리 고정이하여신비율은 올 1분기 14.83%로 업계 평균치(10.6%)와 비교해 높은 수준이다. 이는 고정이하여신비율 산출식의 분모인 총여신이 감소한 영향이다. 페퍼저축은행의 총여신은 1분기 2조951억원으로, 1년전과 비교해 1조622억원(33.6%) 감소했다.
업계는 페퍼저축은행의 체질개선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매각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 한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는 "페퍼저축은행이 비용 효율 중심으로 슬림화 작업을 진행하면서 자산 규모가 줄었고, 적정 가격에서 원매자를 찾기 더 수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페퍼저축은행이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성장을 이뤄낼 수 있던 건 디지털 플랫폼 역할이 컸다. 2022년 4월 기본 모바일앱 '페퍼루'를 리뉴얼해 '디지털 페퍼'를 출시했다. 인공지능(AI)를 기반으로 플랫폼 고도화에 나선 뒤 비대면 사업자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출시하며 업계 돌풍을 일으켰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페퍼저축은행의 경영 여건이 최근엔 좋지 않지만 수년 전만 해도 가장 가파른 성장을 보인 곳"이라며 "특히 데이터 분석, 자체 CSS 등 역량은 원매자 입장에서 매력적인 요소일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