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란 사회적 동물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무형의 압력이다. 무리마다 존재하는 암묵적 룰이 행위와 가치판단을 지배한다. 기업의 세계는 어떨까. 동일업종 기업들은 보다 실리적 이유에서 비슷한 행동양식을 공유한다. 사업 양태가 대동소이하니 같은 매크로 이슈에 영향을 받고 고객 풀 역시 겹친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태생부터 지배구조, 투자와 재무전략까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차이를 THE CFO가 들여다본다.
현대해상과 한화손해보험의 지난해 4분기 실적 차이는 기초체력에서 갈렸다. 현대해상은 실손보험 손해율 부담과 자동차보험 부진이 한꺼번에 반영돼 적자로 돌아섰다. 한화손보는 업황 악화에도 순이익 급감을 막을 만한 기초체력을 지녔다.
두 곳 모두 녹록지 않은 영업 환경에 처했다. 의료 이용 정상화에 따른 예실차 부담과 자동차보험 원가 상승은 업계 전반에 공통으로 작용했다. 다만 현대해상은 실손 관련 비용이 비교적 크게 불었고 한화손보는 합병 이후 넓어진 채널을 바탕으로 기초체력을 보충한 모습이다.
◇1년 새 순이익 46% 줄어든 현대해상 현대해상이 지난해 4분기 적자 전환한 건 보험손익이 부진한 영향이 컸다. 장기보험과 자동차보험이 동시에 흔들리면서 본업 전반의 부담이 부각됐다. 실손보험 손해율 부담이 커지면서 장기보험 손익이 급격히 약해졌다. 자동차보험 손익은 적자로 돌아섰다.
결정타는 실손보험 손해율 상승이 반영된 손실부담계약 관련 비용이었다. 손실부담계약 비용이 1464억원 늘어난 점이 분기 적자 전환의 핵심 변수로 제시됐다. 실손보험의 누적된 손해율 부담이 회계상 비용으로 크게 반영됐다.
현대해상은 지난해 4분기 별도 기준 당기순이익이 마이너스(-) 730억원까지 떨어졌다. 연간 기준으로도 2024년 1조307억원에서 지난해 5611억원으로 45.6% 감소했다. 내실을 중시한 운영 기조가 단기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한 국면이 됐다.
이런 흐름은 지난해 4분기 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2024년에도 현대해상은 4분기 적자를 기록했다. 당시에도 장기보험 손익 구성에서 예실차와 기타 요인이 크게 악화한 영향을 받았다. 연말마다 실손 관련 부담이 집중 반영되는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난 셈이다.
수익성 중심으로 영업을 조정하는 전략은 연말처럼 실손 부담이 커지는 국면에선 충격을 흡수할 물량 측면의 완충력을 약화할 수 있다. 평상시 체질 개선에 도움이 되지만 연말 대규모 비용 부담을 상쇄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드러나는 실정이다.
◇한화손보, '디지털+장기보험' 채널 전략 본격화 한화손보도 업황 악화로 쉽지 않은 한 해를 보냈다. 지난해 보험손익은 3077억원으로 전년 3982억원보다 22.7% 줄었다. 의료 파업의 기저효과로 예실차가 악화한 데다 자동차보험 보험금 부담도 늘었다.
그럼에도 채널 확장 전략은 보험손익 감소 폭을 더 키우지 않는 방어판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 캐롯손해보험과의 합병 이후 사이버마케팅(CM) 채널을 통한 장기보험 매출은 합병 전후 두 배 수준으로 확대됐다. 자동차보험을 통해 유입된 고객이 텔레마케팅(TM)과 대면 채널의 장기보험 판매로 이어졌다. 디지털과 오프라인을 결합한 구조가 실제 매출 흐름으로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장기보험 자체의 기초 체력도 한화손보에 우호적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신계약 보험계약마진(CSM)은 1조291억원으로 전년보다 38.9% 늘었다. 월평균 장기보장성 신계약도 61억원에서 75억원으로 23.6% 증가했다. 여성·시니어보험 중심의 전략 상품 강화와 계약 품질 개선이 미래이익 기반을 키웠다.
한화손보의 선방을 채널 효과만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투자손익이 지난해 6134억원으로 전년보다 21.4% 증가해 연간 실적 방어에 힘을 보탠 점도 분명하다. 다만 디지털 고객을 장기보험 판매로 연결하는 구조가 본격적으로 작동하는 만큼 중장기 매출 흐름이 긍정적인 것도 부인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