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와 저축은행 사태 등 위기마다 금융 안전망 최전선에서 역할을 수행해온 예금보험공사가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저축은행 특별계정 운영기한이 올해 말 종료되고 내년에는 예금보험기금채권상환기금 청산 시점이 도래하면서 예금보험제도의 구조를 새롭게 설계해야 하는 분기점에 서 있다. 김성식 예보 사장이 최근 '국민의 금융 일상을 지키고 금융에 안정을 더하는 KDIC'를 새 비전으로 제시했다. 창립 30주년을 맞은 예금보험공사의 발자취와 공적자금 회수 성과, 금융안전망의 현재와 미래 과제 등을 짚어본다.
예금보험공사를 떠올리면 예금자 보호를 먼저 생각하지만 실제 역할은 그보다 훨씬 많다. 금융회사가 부실화되면 예보는 예금자 보호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정리 방식을 설계하고 구조조정을 집행한다. 지난해 말 기준 예보가 정리한 부실 금융회사는 누적 544개에 달한다.
외환위기와 저축은행 사태를 거치며 축적한 경험은 예보의 가장 큰 경쟁력으로 꼽힌다. 부실 금융회사 정리 과정에서 계약이전과 가교금융회사 설립, 예금보험금 지급, 파산재단 관리 등을 총괄하며 금융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
◇계약이전부터 제3자 P&A까지, 정리 기법 발전
1998년 6월 29일은 국내 금융 역사에서 '피의 월요일(Bloody Monday)'로 불린다. 금융감독위원회가 부실은행을 확정하고 계약이전을 명령한 날이다. '은행은 망하지 않는다'는 통념이 깨진 순간이기도 했다. 다만 금융당국은 영업정지나 청산 대신 계약이전 방식을 선택했다. 예금자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계약이전(P&A)은 부실 금융회사의 자산과 부채, 예금 계약을 다른 금융회사로 넘기는 방식이다. 문제는 대부분 부실 금융회사의 부채가 자산보다 많다는 점이었다. 인수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손실을 떠안아야 하는 구조다. 예보는 장기·저리 자금을 지원하는 '시드머니' 방식으로 자산 부족분을 보전해 인수·합병이 성사될 수 있도록 거래 조건을 만들었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회사 정리는 더욱 체계화됐다. 예보는 부실 금융회사에 대한 재산실사와 자산·부채 평가를 거쳐 정리 방식을 결정한다. 이후 인수자 선정과 계약이전 협상, 최소비용 분석, 예금보험금 지급 준비 등을 수행한다. 금융회사 퇴출 과정에서 예금자의 금융거래가 최대한 유지될 수 있도록 정리 절차 전반을 설계하는 역할이다.
정리 방식도 위기를 거치며 진화했다. 과거에는 부실 금융기관으로 결정된 뒤 영업정지를 실시하고 계약이전이나 매각을 추진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영업정지로 금융거래가 중단되면 예금자 불편이 커지고 자산 가치가 하락해 기금 손실도 늘어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예보는 2012년 하반기 금융거래 중단 없는 정리방식을 도입했다. 부실 금융기관 결정 이후 실제 영업정지 전까지 재산 실사와 최소비용 검증, 계약이전 준비, 전산 이관 작업을 모두 마친 뒤 금요일 영업 종료 후 정리 절차를 진행하고 월요일에 영업을 재개하는 방식이다.
정리가 끝난 뒤에도 예보의 업무는 이어진다. 예보는 파산관재인으로서 파산재단을 관리하며 부실 금융회사의 대출채권과 부동산, 유가증권 등을 매각해 회수 재원을 마련한다. 부실 경영진과 대주주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와 책임재산 환수도 추진한다.
◇금융시장 충격 막은 544번의 정리
예보의 정리 역량은 수차례 금융위기 속에서 검증됐다. 지난해 말 기준 예보가 정리한 부실 금융회사는 544개에 달한다. 은행과 종금사, 증권사, 보험사, 저축은행, 신협 등 업권도 다양하다.
부실정리 금융회사 현황. /사진=예금보험공사
특히 저축은행 사태는 예보의 정리 체계를 한 단계 끌어올린 계기가 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부산저축은행 사태다. 2011년 부산저축은행 계열이 영업정지되면서 대규모 예금 인출 우려가 확산됐지만 예보는 가지급금 지급과 가교저축은행 설립을 병행하며 혼란을 최소화했다.
이후 예나래·예솔저축은행 등 가교저축은행을 설립해 부실 저축은행의 예금과 우량 자산을 이전했다. 매수자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임시 영업을 지속하며 금융거래의 연속성을 확보했고 이후 경영 정상화와 가치 제고 작업을 거쳐 순차적으로 매각을 추진했다.
성과는 숫자로 나타난다. 지난해 말 기준 예보가 정리한 부실 금융회사는 544개에 달한다. 외환위기 이후 2000년 8월까지 1·2단계 구조조정 과정에서만 수십 개 저축은행이 시장에서 퇴출됐고, 예보는 정리 실무를 맡아왔다. 저축은행 사태 당시에도 대규모 예금보험금 지급과 구조조정을 동시에 수행했다.
외환위기와 저축은행 사태를 거치며 축적한 경험은 현재 예보의 가장 큰 자산이 됐다. 최근에는 대형 금융회사 자체정상화·부실정리계획(RRP)과 디지털 금융 리스크 대응 체계 구축에도 나서고 있다.
예보의 정리 업무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MG손해보험은 2022년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된 이후 공개매각과 계약이전 방안 등이 추진돼 왔다. 예별손보는 MG손해보험 정리를 위해 설립한 가교보험사다. 예보는 올 초 예별손보 공개 매각에 나섰지만 예비입찰에 참여했던 하나금융지주와 JC플라워가 본입찰에 불참하면서 매각이 무산된 바 있다.
이후 예보는 재매각 절차에 착수했다. 예별손보 인수 후보자들은 실사를 거쳐 오는 30일 최종인수제안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입찰을 통해 유효 경쟁이 성립하면 예금보험공사는 다음 달 중순까지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인수 후보자로는 한국투자금융지주, 흥국화재, 교보생명, OK금융그룹 등이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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