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산업 확산으로 반도체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AI 학습과 추론에 방대한 데이터가 활용되면서 메모리 공급 부족 현상을 촉발한 상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규모 투자에 돌입한 배경이다.
다만 생산능력(캐파) 확보를 위한 비용이 급격하게 불어나면서 양사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수년 전 반도체팹 1기를 짓는데 20조~30조원이 투입됐다면 이제는 최소 50조원이 드는 실정이다. 증가세가 가팔라 추후 공장마다 100조원 이상 필요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소재·장비 '인플레이션'에 고환율 여파까지
반도체 투자비 확대에는 여러 원인이 작용하고 있으나 전반적인 물가 상승이 핵심이다. 건설비 증대가 대표적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라인 구축은 그룹사인 삼성물산, 삼성E&A, 삼성중공업 등이 주로 담당하고 있다.
15일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작년 12월부터 삼성전자와 건설 계열사 3곳의 반도체 공사 관련 계약금액은 4조8383억원 늘어났다. 이달 12일 3건을 비롯해 총 17건의 금액 변경에 따른 정정공시를 포함한 수치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로 범위를 넓히면 증액 규모는 6조3314억원으로 상향 조정된다.
*작성 : 더벨
가장 증가세가 컸던 건 삼성물산의 올 9월 공시(9041억원 증액)다. 삼성전자의 평택캠퍼스 4공장(P4) 페이즈4(상동) 마감하는 공사로 올 7월 계약 이후 2개월 만에 1조원 가까이 불어난 것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 인건비 등이 뛰면서 공사에 필요한 액수가 올라가는 추세"라며 "설립 과정에서 비용이 확대되는 자체는 일반적이지만 늘어나는 폭의 수준이 과거와 비교하면 상당한 편인 게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전용팹도 짓고 있다. 이미 높은 미국 물가는 계속 상승 중이고 고환율 이슈까지 더해진다. 1년 동안 증가된 건설비가 4조8383억원을 훌쩍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삼성전자의 비용 부담은 다양한 요소로 커지고 있다. 전기, 용수 등 기본적인 인프라 요금은 3~4년간 곱절로 늘었다.
반도체 생산라인 운영을 위해 필수적인 소재와 장비 등도 인플레이션 대열에 합류했다. 활용 범위가 넓어진 극자외선(EUV) 분야가 이를 주도하고 있다.
최신 노광 기술인 EUV는 장비 가격이 1000억원대에서 2000억~3000억원으로 뛰었다. 다음 버전인 '하이NA' 전용 설비는 5000억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연간 생산량이 제한적인 데다 필수 부품의 몸값도 오르고 있어 추가적인 판매가 증가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UV와 하이NA 구현을 위해 쓰이는 포토마스크, 펠리클 등 소모품도 전용화되면서 기존 대비 크게 비싸졌다. 이외에 공정 미세화 대응 차원에서 식각, 증착 등 주요 공정에서 차세대 방식이 등장하면서 반도체 제작에 쓰이는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는 신공장 설립은 물론 기존 공장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삼성전자는 한국과 중국 메모리 세대 전환을 위한 시설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최근 전영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부회장)은 이재명 대통령에 "오픈AI, 엔비디아 등 글로벌 하이퍼스케일러가 AI 학습·추론·연산 서비스에 수조달러를 투입하는 시점에서 이에 필요한 반도체 투자는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토로한 바 있다. 전 부회장의 우려가 엄살이 아니었던 셈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발표한 평택 5공장(P5) 구축과 용인 첨단 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 프로젝트 등을 앞두고 있다. 미국에서도 추가적인 투자가 예상된다. 이를 종합하면 삼성전자의 자본적 지출(CAPEX)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감도
◇SK하이닉스, 용인 클러스터 투자금 5배 증가
고대역폭 메모리(HBM)로 존재감이 커진 SK하이닉스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수익성이 대폭 향상된 것과는 별개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도 전 부회장과 같은 날 "반도체 팹을 짓고 장비를 넣는 데 3년 이상 걸린다"면서 "돈을 벌어서 투자하면 이미 시기를 놓친다. 대규모 자금 확보가 쉽지 않은 만큼 투자 활성화를 위한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앞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만 600조원 이상 투자될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120조원으로 추정됐으나 약 5배 증가한 것이다. 해당 클러스터에는 1~4기 팹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러한 부담을 일부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첨단전략산업 한정으로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시사했다. 지주회사의 증손회사 의무지분율을 100%에서 50%로 완화하는 것이 골자다. 현실화하면 SK하이닉스는 반도체 투자를 위한 특수목적법인을 세우고 이를 통해 외부 자금유치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