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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재무전략은 사업과 기업가치를 뒷받침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사업자금이 필요하면 적기에 조달을 해야 한다. 증자나 채권 발행, 자산 매각 등 방법도 다양하다. 현금이 넘쳐나면 운용이나 투자, 배당을 택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선택엔 결과물이 있다. 더벨이 천차만별인 기업들의 재무전략과 성과를 살펴본다.
SK하이닉스는 올해 국내 자본 시장에서 조달이 여의치 않자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발행으로 눈을 돌렸다.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과 주주 환원 압박, 증시 부양 정책 등이 맞물려 자사주를 활용한 조달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다운 턴을 버틸 순현금 보유라는 재무 목표를 달성하려면 현금 창출력 개선 시기 자본 조달이 뒷받침돼야 했다. 남은 조달 카드는 밸류에이션 재평가를 기대할 수 있는 미국 증시 상장뿐이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부터 ADR 발행을 준비했다. 그해 12월 SK하이닉스가 보유한 자사주 1740만7808주(지분 2.4%)를 원주로 ADR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당시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상법이 개정되기 전이라 자사주를 활용한 ADR 발행은 유효한 조달 방안이었다.
자사주를 유동화해 투자 재원을 확보하려던 전략은 상법 개정이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 SK하이닉스 이사회는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안 국회 통과가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자사주를 조달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 1월 SK하이닉스가 보유한 자사주를 대부분(1530만주, 지분 2.1%)을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약 12조2400억원 규모 물량이다.
이사회가 ADR 발행 자체에 제동을 건 건 아니다. 재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신주를 원주로 한 ADR 발행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ADR 상장 공모 관련 등록 신청서(Form F-1)를 비공개로 제출했다. 올해 안에 ADR 상장이 목표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정기주주총회에서 곽노정 대표이사 사장이 순현금 100조원이라는 구체적인 재무 목표를 제시했다. 업황 변동에도 경쟁력 유지에 필요한 자본 지출을 집행할 수 있는 적정 현금을 지속적으로 보유하는 재무 건전성 관리 방안의 연장선에서 나온 수치다. 지난해 말 삼성전자가 연결 기준으로 보유한 순현금(100조6080억원)을 벤치마킹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고대역폭메모리(HBM) 성장세에 힘입어 순현금 재무 상태로 전환했다. 2024년부터 조단위 잉여현금흐름(FCF) 창출을 지속해 2023년 말 순차입금 20조5500억원이었던 연결 기준 재무 상태가 지난해 말 순현금 12조6900억원으로 바뀌었다. 지난 1분기 말 순현금은 35조100억원이다.
SK하이닉스가 자체 현금 창출력만으로 순현금 목표를 달성하기엔 투자 부담과 업황 변동성이 불확실한 요소로 남아 있다. 반도체 업황이 불황이었던 2022~2023년에는 FCF가 적자를 기록하며 순차입금이 불어났다. 순현금 재무 목표 달성을 위해선 개선된 현금 창출력과 함께 자본 조달이 필요하다.
신주 기반 ADR은 자본 확충 수단이지만 지분 희석을 수반해 국내 투자자들이 반감을 가진다. ADR로 조달한 자금을 자사주 매입에 쓰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이 경우 다운 턴에 대비할 재무 체력 확충 효과는 제한된다. 미국 주식 시장으로 투자자 저변을 확대해 적정 가격 발견 기능을 높이는 효과만 남는다.
SK하이닉스의 ADR 발행은 국내 자본 시장에서 성장 투자와 주주 환원 사이 균형점을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재투자 재원 확보보다 즉각적인 환원을 요구하는 시장 환경에서는 자본 조달 선택지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ADR은 이러한 제약 여건 속에서 SK하이닉스가 찾은 현실적인 대안이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 시장 성장성과 높은 투자 수익성을 감안할 때 가용 재원을 재투자해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것이 최선의 현금 활용 방안이라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