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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조단위 투자' SK하이닉스, 재무부담 버틸 체력있나

미국 HBM 공장에 5.2조 투입…잉여금 47조, 핵심 사업에만 집중투자

이상원 기자  2024-04-05 08:02:48
SK하이닉스가 5조원을 넘게 투입해 미국에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 공장을 짓는다. 미국에 설립했던 D램 공장 문을 닫은 지 15년만에 현지 시장 재진출이자 SK그룹 편입 후 처음으로 짓게 된 HBM 공장이다. HBM 고객사가 몰려 있는 미국에서 직접 패키징 생산을 위한 목적이다.

당장은 SK하이닉스의 재무부담이 그만큼 커질 전망이다. 이미 최근 몇 년 사이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와 계속된 대규모 설비투자로 부채가 크게 늘었는데 수조원대 추가 투자를 결정했다. 작년 대규모 적자로 현금도 많이 줄었다. 저하된 체력으로 또 한 번의 대규모 투자를 버텨내는 게 관건이다.

◇유진공장 매각 15년만 '재도전', 미국에 보조금 신청

5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2028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인공지능(AI) 메모리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공장을 짓는다. 착공 시점은 내년 초로 잡혔다.

SK하이닉스가 HBM 생산 공장을 해외에 설립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위해 38억7000만달러(약 5조2322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과거 현대전자 시절 SK하이닉스는 미국 오리건주 유진에 설립한 미국생산법인(HSMA)을 2008년까지 운영한 바 있다. D램 200nm 웨이퍼 생산 설비를 갖췄지만 장비 노후화로 더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지자 300nm 전환을 계획했다. 하지만 당시 반도체 업황 침체로 수익성이 악화되며 공장 양산에 돌입한 지 10년 만에 매각을 결정했다.

이후 SK그룹에 편입되고 나서도 국내와 중국에서만 생산법인을 운영해 왔다. 다만 AI가 주목받으면서 HBM 수요가 늘어나자 SK하이닉스도 미국 패키징 시설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됐다. AI 칩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엔비디아를 비롯해 대부분의 고객사가 미국에 있어 안정적인 고객사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SK하이닉스의 이번 결정은 미국의 '칩스법(Chips Act)'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기업의 미국 내 설비 투자를 독려하기 위한 법안이다. 이에 따르면 현지에 반도체 생산 시설 투자 기업에 390억달러(약 52조7280억원), R&D 분야에 132억달러(약 17조8464억원) 등 5년간 총 522억달러를 지원한다. SK하이닉스는 이미 미국 정부에 반도체 보조금을 신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타이트한 유동성, 대규모 투자 '불안'…실적 개선에 거는 기대

다만 미국 정부의 보조금 예상 규모를 봤을 때 공장 설립에 자체 자금으로 투입해야 할 자금이 만만찮은 수준으로 예상된다. 향후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감안해도 최소 3조원 이상이 필요하다는 관측이다. SK하이닉스의 유동성은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다. 이미 재작년부터 재무구조 악화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공장 설립자금 외에도 2025년 초 대규모 지출이 예정돼 있다. SK하이닉스는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금 10조3000억원 가운데 8조원을 지급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패키지로 인수한 중국 다롄공장 인수 잔금 2조3000억원은 내년 3월까지 지급해야 한다. 대부분 차입으로 인수 자금을 확보하며 부채비율이 급등했다.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 직전인 2020년 말 연결기준 SK하이닉스의 총차입금은 12조8954억원에서 이듬해 말 19조1496억원으로 6조원 이상 증가했다. 작년 말에는 32조4985억원으로 나타냈다. 2020년 말 18.1%였던 차입금의존도가 2023년 말 32.4%까지 올랐다. 같은 기간 부채비율은 37.1%에서 87.5%로 치솟았다.

고금리 시대 차입금이 급격하게 늘어나자 이자 지급에 대한 부담이 커졌다. 작년 말 기준 SK하이닉스가 지출한 금융비용은 1조4839억원이다. 2020년 말 3131억원 수준이던 금융비용이 3년 사이 374% 급증했다.

작년 연결기준 약 8조원의 적자를 기록하면서 SK하이닉스의 재무구조는 더욱 악화됐다. 기업이 영업 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 창출 능력을 의미하는 EBITDA는 작년 5조9434억원으로 전년 대비 71.6% 줄어들었다. 2021년 23조688억원에서 2년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이익잉여금은 지난해 말 47조원으로 전년 대비 10조원가량 줄었다.

이 기간 8조원 가량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추가적인 지출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다만 그동안 설비투자 규모를 보면 유동성이 안정적인 수준은 아니다. SK하이닉스는 2021~2022년 각각 연간 19조원, 12조원을 설비투자로 지출했다. 부담이 커지자 작년 한 해는 8조3251억원으로 줄였다. 올해는 확실한 수요 개선이 없으면 투자를 늘리지 않겠다며 속도 조절에 나섰다.

물론 산업 특성상 설비투자를 멈출 수는 없다. SK하이닉스의 재무부담을 줄이며 투자비를 집행하기 위해서는 결국 실적이 중요하다. 일단 메모리 가격이 상승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12조원이 넘는 반도체 재고가 평가손실에서 이익으로 반영될 수 있다. 작년 4분기 전 분기 대비 흑자전환에 성공한 데 이어 올 1분기 실적은 컨센서스를 크게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올해 발행하는 회사채는 모두 차환 물량이다. 아직 자금 확보를 위한 추가적인 발행 소식은 없는 상황"이라며 "올해 업황 개선과 이에 따른 실적 개선이 확실시되면서 재무구조를 개선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재무구조 개선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투자도 결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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