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카드사들에겐 글로벌이 선택이 아닌 필수다. 포화된 내수시장을 넘어서기 위해 수익원 다각화 돌파구로 해외 진출이 절실해졌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글로벌 불확실성은 아시아 저개발국 금융시장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쿠데타 같은 정치리스크와 지진 등 자연재해도 영업을 위협하고 있다. 위기와 기회가 교차하는 시점, 카드사들 해외사업 현주소와 미래 전략을 점검해 본다.
롯데카드의 베트남 법인이 현지 신용정보 사각지대를 정면돌파하고 있다. 자체 신용정보평가 체계를 구축해 고신용자에게는 낮은 금리를, 리스크가 큰 고객에게는 위험을 반영한 금리를 적용하는 여신 모델을 적용하면서다. 신용정보 인프라가 취약한 시장에서 수익성과 건전성을 동시에 확보했다는 평가다.
국내에서 쌓은 데이터와 신용평가 기술을 기반으로 차별화한 전략을 현지에 이식한 사례다. 롯데그룹 계열사와의 연계 및 현지화 전략까지 더해지며 베트남 소비자금융 시장에서 한국 신용카드사의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
◇신용정보 빈약국에서 자체신용평가 모델 확보
베트남은 대표적인 신용정보 빈약국으로 꼽힌다. 신용카드 보급률은 4%대에 불과하며 금융기관은 고객의 소득이나 직업 등 제한적인 정보를 기반으로 금리를 산정하는 데 그친다. 베트남 중앙은행 산하 공적신용정보기관(CIC)이 존재하긴 하지만 실시간 조회나 체계적 신용이력 관리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환경은 금융기관 입장에서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한다.
고도화된 신용평가 체계를 마련하지 못하면 연체율이 급등하거나 대출을 보수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 롯데파이낸스 베트남이 한국 본사의 기술력과 데이터를 결합해 자체적인 RBP 모델을 개발한 것도 구조적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시도였다.
롯데파이낸스 베트남은 2023년 초부터 롯데카드 본사와의 협업을 통해 RBP 체계를 본격적으로 구축하기 시작했다. 1년 넘게 베트남 현지 고객 데이터를 수집하고 소득과 직업 정보뿐 아니라 대출 이력 등 10개 이상의 지표를 결합해 고객의 신용도를 정량화하는 모델을 완성했다. 이를 통해 획일적인 금리 제공에서 벗어나 고객의 신용도에 따라 금리를 차등화했다.
작년 4월부터 실제 영업에도 RBP를 작용했다. 그 결과 고신용자에게는 비교적 낮은 금리를 제공하고 리스크가 큰 고객에게는 리스크 프리미엄을 반영한 금리를 적용하면서 건전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잡을 수 있게 됐다. 같은 해 6월부터는 매월 흑자를 기록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도 내고 있다.
롯데파이낸스 베트남은 진출 6년 만인 2024년에 순이익 기준으로 첫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핵심은 우량 고객을 타깃으로 한 개인신용대출 확대였다. 주 수익원인 개인신용대출에 RBP를 도입해 고신용 직장인과 공무원을 대상으로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갖췄다.
작년 말 기준 롯데파이낸스 베트남의 자산 구성은 신용대출이 60%, 할부대출 30%, 신용카드 10% 수준이다. 주력상품인 신용대출은 베트남 현지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며 그 중 절반 이상은 고소득 직장인과 공무원에 집중돼 있다. 롯데파이낸스 베트남 측은 "RBP 체계를 기반으로 우량 고객에게 차별화된 금리를 제공할 수 있어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고 밝혔다.
롯데그룹 계열사와의 연계도 RBP 전략의 주요 성과 중 하나다. 롯데파이낸스 베트남은 자사의 RBP 모델을 롯데렌탈과 연계해 장기렌터카 고객에게 맞춤형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고객의 신용도를 분석해 적정 렌탈 상품을 추천하고 전용 신용카드를 통해 렌탈료를 자동 납부하게 함으로써 생활 밀착형 금융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지속 가능한 성장기반 확보에도 기여하고 있다.
공성식 롯데파이낸스 베트남 법인장(오른쪽)과 안성빈 롯데렌탈 베트남 법인장(왼쪽)
◇현지화 전략도 주효...1300명 중 10명만 본사 파견
롯데파이낸스 베트남의 또 다른 경쟁력은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다. 2024년 말 기준 임직원 수는 약 1300명에 달하는데 이 중 한국 본사에서 파견된 인력은 10명 내외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인력을 현지 채용으로 구성해 문화적 이질감을 줄이고 현지 시장과의 접점을 넓혔다.
과거 한국 금융사들은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을 중심으로 보수적인 영업을 펴는 식으로 해외진출해 온 측면이 있다. 하지만 롯데파이낸스 베트남은 현지 소비자 대상의 소매금융 시장을 정면으로 공략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롯데파이낸스 베트남은 한국식 금융시스템의 수출 가능성을 시험하는 무대다. 신용정보 인프라가 부족한 시장에서 자체 신용평가체계와 현지화 전략을 결합했다. 그 결과 수익성과 건전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베트남 현지에서 구축한 RBP 체계가 표준 모델로 자리잡을 경우 한국 금융사의 글로벌 전략에도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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