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금융환경이 또다시 변화하고 있다. 경기 둔화와 부동산 시장 조정,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등 복합적인 변수 속에서 은행의 리스크 관리 중요성도 한층 커지고 있다. 동시에 생산적 금융 확대와 자본 규제 강화 등 새로운 과제도 은행권에 요구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은행 리스크 관리의 방식도 진화하고 있다. 단순한 자산건전성 관리에서 벗어나 자본 효율성, 포트폴리오 전략, 소비자 보호까지 함께 고려하는 종합적인 리스크 관리 체계가 요구되고 있다. 각 은행의 리스크 관리 조직을 이끄는 CRO를 만나 은행권이 직면한 리스크 환경과 대응 전략, 향후 관리 방향을 들어본다.
무엇이 리딩뱅크를 결정지을까. 여신과 수신으로 대표되는 영업력이 우선이겠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은행의 경쟁력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리스크 관리'다.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은행의 희비도 엇갈리고 있다.
신한은행은 한때 전통의 리스크 관리 명가로 꼽혔다. 이러한 평가를 만들어낸 선임들의 뒤를 이어 올해 1월 막중한 업무를 맡은 김경태 리스크관리그룹장(CRO)을 3월 20일 오후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에서 만났다. 그는 CRO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에 대해 "리스크 관리 '넘버 원'의 명성을 되찾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올해 역시 건전성 악화 전망…'머니무브'는 글쎄" 지난해 대부분의 은행은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쉽지 않은 한 해를 보냈다. 신한은행 역시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신한은행의 NPL(고정이하여신)비율은 0.28%를 기록했다. KB국민은행과 함께 시중 은행 5곳(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가운데 가장 낮았지만 전년(0.24%)과 비교하면 소폭 상승했다.
김 CRO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각종 상환 유예 제도나 이자 감면 제도 등을 통해 부실화를 많이 눌러왔다"며 "이런 제도들이 모두 끝나면서 그간 눌러놓은 부실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CRO는 올해 신한은행의 NPL비율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소폭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팽데믹 여파는 지나갔지만 중동 전쟁 등으로 시장 변동성이 매우 높아진 탓이다. 그는 "금리와 환율이 차주들의 건전성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결국 어느 은행이 (NPL비율) 상승폭을 완만하게 관리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올해의 가장 큰 위험요인으로는 환율과 금리를 꼽았다. 그는 "금리가 오르고 환율이 계속 상승하면 우선 은행의 재무지표에 영향을 주고, 그 영향으로 차주들의 신용도가 떨어지게 된다"며 "이런 부실이 다시 은행의 건전성에 영향을 주는 악순환이 벌어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최근의 '머니무브'와 관련해서는 아직은 크게 걱정하고 있지 않다. 수치상으로 드러나는 게 없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의 수신은 올들어 2월 말까지 2달 동안 4조원가량 증가했다. 김 CRO는 "부동산으로 갈 자금들이 다 차단이 돼있는 상황"이라며 "부동산 등 비금융 자금들이 금융권으로 들어오는 규모가 오히려 큰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금융권의 가장 큰 화두는 생산적 금융이다. 생산적 금융 확대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좋은 기업을 알아보는 일이 중요하다. 신한금융은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반영한 평가 체계가 필요하다고 보고 '기업 성장성 신용평가 시스템' 개발에 착수했다. 현재 리스크관리그룹 내 모형공학부가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김 CRO는 "앞으로 매출도 늘고 신용도도 좋아질 기업들을 선별한 뒤 해당 기업들에게 금융 지원을 하게 되면 은행도 건전성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며 "이런 수단들을 계속해서 마련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자영업자 등 취약 차주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포용 금융에 대한 요구 역시 높아지고 있다. 그는 "취약 차주의 금융 비용 부담을 완화시켜 빠른 정상화를 지원하고, 은행은 선제적으로 충당금을 더 쌓는 식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포용 금융 차원에서 볼 때 취약 차주에 대한 지원은 수익성을 따지며 의사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만큼 은행이 어느 정도 손실을 안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자본비율 더 높게 관리해야…비용 줄이는 게 은행의 경쟁력" 최근 들어 자본비율 관리가 한층 중요해지면서 김 CRO의 어깨도 한층 무거워졌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말 향후 3년의 자본비율 관리 계획을 수립했다. 감독 당국에서 요구하는 규제 수준보다 1.5~2% 정도 상회하는 수준으로 관리하다는 내부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아직은 여유가 많다. 지난해 말 신한은행의 BIS기준 총자본비율은 17.38%로 규제 기준인 12.5%와는 차이가 크다.
김 CRO는 "현재 관리하는 데 어려움은 없지만 지주 차원의 밸류업 계획을 달성하려면 은행이 자본비율을 매우 높게 유지해야 한다"며 "지주에서 자회사별로 RWA(위험가중자산) 규모를 할당해줬기 때문에 그 범위 안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국내 은행들이 처한 경영환경은 대동소이하다.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영역 거의 비슷해 차별화가 쉽지 않다. 관건은 비용 관리다.
김 CRO는 "리스크 관리를 잘 한다는 건 결국 대손비용이 적다는 걸 의미한다"며 "부실을 줄여나갈 수 있는 평가 체계와 여신 운용 체계를 만들어 장기적으로 비용을 줄여 나가는 것이 은행의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올해 1월 공식 임기를 시작했다. CRO로서의 포부를 묻는 질문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리스크 관리는 신한은행이 제일 잘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최근엔 여러 지표에서 보여지듯 예전만 못하다는 말을 듣는 것도 사실"이라며 "리스크 관리 부문에서 '신한은행이 넘버 원'이라는 이미지를 다시 회복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경력직으로 신한은행에 입행했다.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신한은행과 인연을 맺었고 임원의 제안을 받아 '뱅커'의 길을 선택했다. 2007년 입행 때부터 리스크 관리 쪽에서 경력을 시작했고, 잠시 지점장을 지냈던 경험을 제외하면 20년 가까이 리스크 관리 외길을 걸었다
그는 "영업처럼 추진하던 딜이 성사될 때 느끼는 쾌감은 없다"면서도 "어떤 정책을 마련하고, 그 정책을 통해 사전적으로 손실을 줄이는 데서 오는 쾌감도 있고 재미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