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10년간 그룹 상장사들에서 받은 배당금이 9000억원에 육박하는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회장에 오른 이후 계열사들의 씀씀이가 눈에 띄게 넉넉해졌다.
이런 배당 확대는 '미완의 승계' 해소를 염두에 둔 전략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경영권을 물려받은지 오래지만 지분 측면에선 지배력이 한참 모자라기 때문이다.
◇정의선 지분보유 상장사 7곳, 4년 새 17.3조 배당 12일 THE CFO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정의선 회장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7개 상장사는 지난 10년간 총 27조5500억원 남짓을 배당했다. 2015년부터 2024년까지 보통주를 기준으로 셈한 금액이다.
계열사 별로 보면 △현대차 11조7000억원 △기아 9조8000억원 △현대모비스 3조8000억원 △현대글로비스 1조5900억원 △이노션 2390억원 △현대위아 2170억원 △현대오토에버 1690억원 등의 순으로 배당액이 많았다. 현대오토에버의 경우 기업공개(IPO)를 진행한 2019년 이후부터 계산했다.
특히 정 회장이 취임하고 이듬해인 2021년 이후 배당규모 확대가 두드러진다. 그 해부터 작년까지 7개 계열사의 보통주 기준 배당총액은 17조3479억원에 달했다. 10년 동안 배당한 전체금액의 63%가 최근 4년에 몰려 있는 셈이다. 현대차와 기아를 중심으로 배당금이 급증했다.
이중 정의선 회장이 지분에 따라 가져간 금액은 약 3% 남짓으로 파악된다. 현재 정의선 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지분 20%를 보유 중이며 그 외엔 현대차 지분 2.67%, 기아 1.78%, 이노션 2.00%, 현대위아 1.95%, 현대오토에버 7.33%, 현대모비스 0.33% 등을 가지고 있다.
10년 동안 해당 계열사들로부터 정 회장이 받은 배당금은 모두 8550억원, 4년간 받은 배당금은 5240억원이다. 배당소득에서 가장 기여도가 큰 계열사는 현대글로비스로 나타났다. 10년간 약 3470억원을 정 회장에게 밀어줘 현대차보다 많았다.
◇배당소득 기여도 1위, 현대글로비스 현대글로비스는 정 회장의 승계 자금줄로 주목받는 곳이다. 정몽구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 부자가 2000년경 150억원의 자본금으로 설립했으며 그룹 물류를 전담하고 있다. 애초 정 회장의 지분율이 약 40%에 달했는데 2005년 말 상장하면서 32% 수준으로 축소됐다. 당시 IPO 과정에서 정 회장이 7000억원대 평가차익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 정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해 2015년과 2022년 두 차례 지분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지금의 지분율로 내려갔다.
하지만 정 회장이 현대글로비스에서 얻는 배당소득이 적어지진 않았다. 지분 축소와 동시에 배당금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2014년 총 750억원을 배당했다가 정 회장 지분이 23.29%로 줄어든 2015년엔 1125억원으로 늘렸다. 정 회장의 배당소득도 덩달아 239억원에서 262억원으로 많아졌다.
그 뒤 대동소이했던 현대글로비스의 총 배당액은 2022년 다시 2000억원대로 크게 점프한다. 정 회장이 사모펀드 운용사 칼라일그룹에 지분 3.29%를 매도한 시점이다. 2024년엔 총 2775억원을 배당해 정 회장이 550억원을 받아갔다. 줄어든 지분율과 반대로 배당수익은 늘어난 셈이다.
현대글로비스 다음으론 현대차(3050억원)와 기아(1740억원)가 정 회장에게 많은 배당금을 줬다. 지분율은 1~2%대로 작지만 배당규모 자체가 크다 보니 매년 수백억원씩이 들어오고 있다. 특히 기아의 경우 최근 3년간 합산 총배당액이 6조1800억원 수준으로 현대차(6조100억원)를 추월한 상태다. 정 회장에 대한 기아의 배당 기여도를 셈하면 10년 기준으론 20%지만 근 3년만 따질 경우 25% 수준으로 높아진다.
이밖에 정 회장은 현대모비스에서 68억원, 이노션에서 48억원, 현대위아에서 43억원가량을 각각 배당으로 수령했다. 또 현대오토에버는 2019년 상장한 이후 6년 동안 131억원을 정 회장에게 배당했다.
◇'미완의 지배력' 해법, 문제는 실탄 주목할 점은 현대글로비스를 제외한 나머지 계열사들의 경우 정 회장 지분율이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는 데 있다. 지배력을 완성하기 위해선 부친 정몽구 명예회장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 7.29%뿐 아니라 현대차(5.44%)와 현대제철(11.81%) 지분까지 가져와야 한다.
게다가 현대차그룹은 국내 10대그룹 가운데 순환출자 고리를 아직 해소하지 못한 유일한 곳이다. 대략 '현대모비스 → 현대차 → 기아 → 현대모비스'로 지분구조가 이어진다. 특히 현대모비스가 현대차지분 21.86%를 보유한 최대주주인 만큼 실질적 지주사이자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으로 꼽힌다.
완벽한 승계를 위해 가장 단순한 길은, 정 회장이 현대모비스의 현대차 지분을 모조리 사들여 최대주주에 오르는 방법이다. 하지만 현재 현대차 시총이 41조5000억원, 현대모비스가 가진 지분 가치만 9조원을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밖에 부친 지분을 그대로 상속하거나 정 회장 지분율이 높은 현대엔지니어링(11.72%)의 IPO 추진,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21.27%) 활용 등이 승계 방안으로 거론된다. 관건은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내면서 정의선 회장이 지배력까지 확보하는 일인데, 어느 쪽이든 막대한 자금이 필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