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글로비스는 돈을 써도 지갑이 두꺼워지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7년간 9조원을 투입하겠다는 공격적인 계획을 작년 발표했지만 지출 규모보다 현금이 더 빨리 쌓이는 중이다.
다만 아직 남아있는 투자액을 감안하면 최고재무책임자(CFO) 유병각 전무는 긴장의 끈을 늦추기 어렵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현대글로비스의 최대주주로 있는 만큼,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 계열사라는 점에서도 유 전무의 역할은 의미가 크다.
◇CAPEX 급증했지만…"돈 쓰면서 돈 번다" 9월 말 기준 현대글로비스의 연결 순차입금은 마이너스(-)5625억원을 기록했다. 남아있는 차입금을 모두 청산해도 5000억원 넘는 돈이 남는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약 4900억원의 순현금이 늘었다.
현대글로비스는 6년 전만 해도 순차입금이 1조7000억원을 웃돌았었다. 하지만 이후 매년 줄면서 2022년 순현금 상태 구축에 성공했다. 이 기간 총차입금 규모는 약 8000억원 가까이 증가했지만 현금은 더 많이 누적됐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점은 투자를 확대 중인데도 재무 건전성이 더 좋아졌다는 데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가스운반선을 새로 건조하고 자동차운반선(PCTC) 선대를 확충하는 등 최근 부쩍 투자가 활발해졌다. 2024년부터 2030년까지 총 9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이다. 인프라 경쟁력을 강화하고 물류거점 투자를 늘려 신사업도 확대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2021년부터 2023년까지 CAPEX(자본적지출)는 총 9844억원, 연평균 3300억원 수준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9580억원으로 뛰었다. 한 해 동안 기존 3년치 규모를 지출한 셈이다. 올해의 경우 9월 말까지 4290억원을 썼다.
또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인수를 위한 소시어스의 프로젝트펀드에 2006억원을 출자, 올 8월 보스턴다이내믹스 유상증자에 1474억원을 투입하기도 했다. 전반적인 자금 지출이 확대됐는데도 순현금이 오히려 늘어난 이유는 안정적인 현금흐름 덕분이다.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그룹에서 유통과 물류, 해운을 담당하고 있다. 전체 매출의 약 70% 이상을 현대차·기아를 포함한 계열사에서 벌어들이기 때문에 사업 구조가 안정적이다. 상대적으로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데다 장기공급계약과 규모의 경제 효과를 보면서 동종업계 다른 회사들보다 높은 수익성을 유지해왔다.
특히 2021년부터 현대차그룹 완성차사업이 폭발적으로 성장, 물동량이 늘면서 현대글로비스도 수혜를 그대로 누리고 있다. 올 3월엔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가 준공된 만큼 물량 증대 효과도 나타날 전망이다.
◇잉여현금만 1조 훌쩍…유병각 CFO, 밸류업 중책 현대글로비스는 4년째 연간 2조원 이상의 EBITDA를 꾸준히 창출하고 있다. 올해의 경우 9월 말 기준 2조1355억원을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1조7884억원)보다 19.4% 더 늘었다. 덕분에 배당을 준 뒤에도 1조원 내외의 잉여현금흐름을 남기고 있다. 올 3분기 말 잉여현금은 1조3500억원 수준으로 작년(7483억원) 대비 거의 두 배 불었다. 순현금이 우상향 중인 배경이다.
이에 따라 현대글로비스는 최근 한국기업평가, 나이스신용평가가 신용등급을 'AA+ 안정적'으로 상향 조정하면서 국내 3대 민간신용평가사에서 모두 AA+ 등급을 얻었다. 재무를 책임지고 있는 유병각 CFO가 부임한지 3년 만의 성과다.
다만 남아있는 대규모 투자계획을 감안하면 유 CFO의 어깨가 가볍지 않아 보인다. CFO의 역할은 현재의 장부를 관리를 넘어, 미래의 현금흐름을 예측하고 준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유 전무는 30여년간 현대차그룹에 몸담고 있다. 현대차 재경기획지원팀장, 현대차 북미권역 CFO를 거쳐 2023년 현대글로비스로 부임했다.
특히 현대글로비스는 정의선 회장이 지분 20%를 들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 곳이다. 현대글로비스 밸류가 높아질수록 정 회장이 보유한 지분의 가치도 올라가기 때문에 추후 재무건전성을 유지하면서 투자를 계획대로 집행하는 유 전무에게 주어진 중책으로 보인다.
긍정적인 부분은 관세 장벽에도 불구 HMGMA 준공에 따라 현지 생산이 늘면서 현대글로비스의 물류 매출과 CKD 매출은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재무 안정성을 바탕으로 비계열 물량 수주를 위한 공격적인 영업도 가능해졌다. 3분기 자동차선사업의 비계열향 매출은 53%로 작년 말(43%) 대비 10%p 상승했다.
회사 측은 “4분기에도 관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현대차, 기아는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 확대전략을 계속하고 있고 물량에 부정적 영향은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