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후반 북미 시장에서 매출 정체를 경험한 현대자동차는 2020년부터 사업 로드맵을 대대적으로 조정했다. SUV·제네시스 등 프리미엄·고수익 차종 전동화(EV) 비중을 확대하는 전략을 썼다.
현대자동차의 EV와 프리미엄 세단 판매를 늘리는 과정에서 오토파이낸싱의 중요도가 높아졌다. 오토파이낸싱은 초기 가격이 높고 잔존가치 예측이 어려운 EV, 가격 진입장벽이 높은 고가 모델의 판매를 확대하는 데 유효했다.
다만 오토파이낸싱은 초기 현금흐름의 괴리를 가져왔다. 채권 회수 시점이 되면 원리금이 회수되지만 그 이전까진 영업현금흐름에 악영향이 생긴다. 현대차의 미국 오토파이낸싱이 본격적으로 커진 2022년부터 지금까진 영업현금흐름이 악화됐고 3년~5년이 지나는 시점부터 현금 흐름이 급격히 개선될 수 있다. 현대차의 유동성에 대한 재평가도 가능해지는 시점이다.
◇운용리스자산이 말하는 전략 변화 '고급화·EV' 2020년대 이후 현대차의 연결 영업현금흐름과 개별 영업현금흐름의 괴리는 현대차의 미국 자동차 판매 포트폴리오 변화와 연관돼 있다. 현대차는 2010년 초반까지 자동차 가운데 낮은 등급(엔트리카) 차량 판매에 주력했다면 2016년 플래그십 라인업 제네시스를 미국에 진출시켰다.
제네시스는 미국 진출 초기 실적이 그리 좋진 않았다. 진출 이듬해인 2017년엔 2만대를 팔았지만 2018년 역성장(1만312대)했고 2019년 다시 2만1236대로 올라섰다. 2020년엔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을 받으며 판매대수가 1만6384대로 줄었다.
그러나 2021년 리스와 할부 등 오토파이낸싱을 가미한 마케팅을 시작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2021년 제네시스 브랜드의 판매는 4만9621대로 상승하고 2022년엔 5만6410대, 2023년엔 6만9715대로 순증세를 보였다.
반면 현대자동차의 연결재무제표상 영업활동현금흐름은 이시기부터 유출된다. 미국 현지에서의 사업이 호조를 보이는 가운데 현금유출은 심화된 이유는 재무제표상 '운용리스자산'이 대거 늘어난 것과 관련이 있다.
2019년부터 시행된 국제회계기준(IFRS16)은 금액이 너무 적거나(미화 5000달러 미만) 기간이 짧은 경우(3개월 미만)를 제외하고 대부분 리스 계약을 재무상태표에 반영하도록 했다.
리스는 IFRS16 도입 전에는 순자산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그러나 IFRS16 도입 이후론 부채로 인식된다. 더불어 임대료 등 리스의 성격이 있지만 기타부채 등으로 뭉뚱그릴 수 있는 부분도 IFRS16 이후부터는 명확히 구분해 기재하고 있다.
현대차의 오토파이낸싱으로 요약되는 할부와 리스는 현대자동차 연결재무제표에서 회계상 부채인 '리스자산' 항목으로 잡힌다. 리스자산은 운용리스자산과 금융리스자산으로 나뉜다. 고객이 리스나 할부계약으로 구매한 현대차의 완성차 소유권이 리스사(운용)에 있느냐 고객에게 있느냐(금융)에 따라 갈린다.
현대차의 미국 현지 오토파이낸싱을 담당하는 현대캐피탈아메리카(HCA)는 차량 리스와 정비, 보험을 하나로 묶은 구독 서비스도 제공한다. 이 구독 서비스 역시 차량 소유권이 HCA에 있는 경우이므로 현대자동차 연결재무제표상 운용리스자산 항목에 계상된다.
고객은 오토파이낸싱을 활용하면 현대자동차 북미판매법인 HMA로부터 구입한 자동차 구매대금 전부나 일부를 할부금융이나 리스(오토론) 등을 통해 마련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의 오토파이낸싱은 HCA가 중개한다.
HCA가 HMA와 이용자간 할부거래를 중계할 경우엔 HCA가 고객에게 받은 원리금을 HMA에 직접 지급한다. 리스 계약을 중개할 땐 대출로 자동차 구매대금을 납입한 고객으로부터 대출원리금을 받고 대출 계약 과정에서 인계받은 차량 소유권을 유동화해 수익을 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운용리스자산은 담보대출과 같은 성격을 띤다. IFRS16 도입 후 담보대출자산과 더불어 운용자산 모두 회계상 부채다. 대신 HCA는 이 리스를 통해 확보한 차량 소유권을 대출채권형태로 유동화할 수 있다. 이 특유자산은 현대자동차의 연결재무제표상 '금융업채권' 등으로 계상된다.
현대자동차의 연결재무제표상 금융업채권과 운용리스자산이 늘어난다는 것은 오토금융을 통한 차량 판매가 확대되고 있다는 의미다. 직전 5년간 현대차의 운용리스자산은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2020년 한 해를 제외하면 모든 기간에서 순증했다.
추계를 보면 현대차의 운용리스자산은 2019년 약 21조원에서 2024년 말 약 43조원으로 2배 넘게 늘었다. 특히 2024년은 43조2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13조5000억원 늘었다. 증가세가 가파른 건 오토파이낸싱이 3년 이상의 장기계약인 것과 관련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존 계약에 새 계약이 들어오며 리스자산이 적층되는 구조다.
2020년엔 운용 리스자산이 전년 대비 6000억원 감소했는데 당시엔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수요 둔화의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이 시기는 현대차가 본격적인 고급화 전략을 펴기 전이다. 반대로 고급화 전략에 맞춰 오토파이낸싱에 힘을 실은 현대자동차의 2024년 운용리스자산 증가세가 한층 가파라진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기간 별도영업현금흐름 대비 연결영업현금흐름이 과도하게 내린 건 오토파이낸싱의 특수성과 관련이 있다. 할부와 리스 모두 최소 3년 이상의 장기계약이라 실제 거래가 일어난 해 재무제표상으론 현금이 모두 회수되지 않다. 이 부분이 오토파이낸싱을 확장하는 현대자동차 연결재무제표상 현금유출로 나타난다.
통상 금융리스제도를 기업이 도입하거나 확대하면 운전자본에 큰 자금이 묶이게 된다. 판매 후 한 번에 들어와야 할 현금이 리스나 할부 기간에 따라 나눠 들어오는 구조다. 초기에는 영업현금흐름이 급감할 수밖에 없다.
다만 기존 채권이 상각되고 새 채권이 들어오는 순환이 시작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단순히 차량 판매 외에 할부와 리스 등 계약에 따른 이자수입, 특유자산 유동화 수익도 기대할 수 있다. 통상 리스 계약이 3년 이상인 점을 고려하면 자산 유동화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연결재무제표상 현금 유입을 기대할 수 있을 전망이다.
◇출범 약 40년, 오토금융 전진기지 부상하는 HCA 현대자동차는 앞으로도 고급차량 판매를 늘릴 계획이다. 그만큼 이 판매를 촉진하는 역할을 맡은 오토파이낸싱 규모도 증가할 전망이다. 이는 단순히 판매 호조를 보인다고 해서 현대차의 리스채권으로 인한 현금흐름 순유출 추세가 순유입으로 돌아올 시기를 특정하기 쉽지 않단 뜻이다.
그러나 현대차는 결과적으로 고급화와 전동화 중심의 사업 확장을 선택했고 이 과정에서 부대수입도 확보하게 됐다. 특히 이를 중개하는 HCA 등 금융자회사 및 손자회사의 중요도가 확실히 높아졌단 뜻이다.
HCA는 1989년 현대캐피탈이 미국 시장에 진출할 당시 합작 파트너였던 GE캐피탈(GE Capital)과의 계약에 따라 설립됐다. 당초 현대캐피탈은 GE캐피탈과의 합작을 통해 미국 사업 확대에 나설 계획이었다. 그러나 당시 GE캐피탈이 HCA의 유상증자에 비토(Veto)를 행사하는 등 반대 입장을 펴면서 사업 계획이나 확장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현대차는 미국 시장의 경우 오토파이낸싱이 신차 판매 중 약 70%를 차지하는 걸 고려하고 있다. 특히 과거 GE의 입김이 작용하던 것과 달리 이제는 HCA의 주주 구성이 현대자동차의 완전자회사이자 미국 현지 판매를 담당하는 Hyundai Motors America(80%)와 기아(20%)로 정리가 됐다. 사업 확장을 위해 본격적으로 힘을 실을 준비가 됐다.
오토파이낸싱 구조상 HCA를 통한 거래가 늘어날수록 현대자동차의 연결 현금흐름 변동도 커진다. 현대차그룹이 전략적으로 미국 현지 시작 확장을 위해 오토금융에 힘을 싣으면 HCA를 거치는 리스자산이 운전자본으로 묶이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단기적으론 회계상 부채가 늘어 부채비율이 상승하고 현금흐름 악화나 현금총량 감소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보면 안정적이며 지속적인 현금흐름 창출 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