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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3대의 역사

허인혜 기자  2025-12-02 16:37:27

편집자주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THECFO가 제공하는 ‘아카이브(Archive)’는 시장에서 벌어진 이슈의 발단과 결말을 기록한다. 기업의 현재를 만든 이정표적 사건은 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전개됐을까. 사건의 방향성을 흔들어 놓은 주요 이벤트는 뭘까. 기사 한 건이 하나의 조각이라면 아카이브는 조각이 맞춰진 퍼즐이다. 거대 사건을 구성하는 수많은 사실관계를 아카이브가 담았다.

목차

1. 개요

1.1. 한 가족, 세 개의 시대

1.2. 삼 세대의 키워드 '개척·내실·전환'

2. 정주영: 길과 산업을 뚫은 1세대

2.1. 아산리의 맏아들, 네 번의 서울행 가출

2.2. 불탄 정비소에 "철거비 아꼈다" 배짱 두둑했던 사장

2.3. 포니 '우리 이름을 단 차'의 탄생

2.4. 경부고속도로와 중동 주베일, 길을 국경 밖으로

2.5. 소떼 방북과 왕자의 난

3. 정몽구: '품질경영' DNA 심은 자동차 왕국

3.1. 현대정공에서 자동차 왕국까지, 현장형 2세

3.2. IMF 위기와 기아 인수

3.3. 왕자의 난

3.4. 품질 혁명과 '10년 보증'

3.5. '쇳물에서 자동차까지' 수직계열화의 뼈대

3.6. 2세가 남긴 헤리티지와 3세대의 숙제

4. 정의선의 시대: 전동화·디자인·로봇, 모빌리티의 전환

4.1. '현대차나 탈거야?' 이제는 고급화

4.2. 기아라는 실험실, 피터 슈라이어 영입

4.3. 그룹 2인자에서 총수로

4.4. E-GMP와 아이오닉, 제네시스

4.5. 수소·로봇·UAM

4.6. 글로벌 무대의 영업사원

4.7. 경청과 소통의 리더

5. 현대차그룹 성장기 한눈에 보기

5.1. 타임라인

최초 문서 작성일: 2025년 12월 1일

1.1. 한 가족, 세 개의 시대접기



"어린 날의 순박한 자연은 어느새 멀리 뇌리에서 사라져버리고 고향을 등진 도시의 流浪民(유랑민)처럼 거북한 긴장 속에서만 살아왔던 일을 되돌아본다. 이러한 세월이 제2의 天性(천성)으로 화하여 다년간의 생활감정도 이런 습관에 이어져서 바람직하지 못한 개별의 나를 형성해 놓았다".
-아산 정주영, '새 봄을 기다리며'

한 가문이 걸어온 궤적이 곧 한 나라의 산업 연보와 포개질 수 있을까. 현대차그룹의 정씨 가문, 정주영-정몽구-정의선 회장의 3대 경영은 우리나라의 산업 발전과 겹쳐 나아간다.

강원도 통천군에서 서울로 도망와 품앗이 일꾼을 하던 청년이 자동차 수리공장을 경영하고 건설회사를 설립한 해가 1950년, 1915년생인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회장이 30대 중반일 때다. 그가 한 1980년대 한 일간지에 기고한 '새 봄을 기다리며'를 보면 농사꾼의 아들에서 사업가로 변모하기까지 내면에 불었던 풍파가 읽힌다.

국산 자동차의 시대를 연 아버지가 있다면 그의 뒤를 따른 아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은 국산 자동차를 글로벌 시장에 안착시킨다. 공장과 품질에 천착한 끝에 비웃음을 사던 브랜드를 세계 3위권 완성차 그룹으로 키울 가교를 만든다. 손자 세대인 정의선 회장 시대에는 전동화·소프트웨어·로봇·UAM 등 자동차를 이동수단이 아닌 플랫폼으로 진화시킨다.

현대차그룹 3대의 발자국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한국 현대사의 장면들도 겹친다. 경부고속도로 개통은 우리나라 지도를 바꿨고 울산에 세운 거대 공장은 어촌을 산업도시로 바꾸는 촉매가 됐다. 포니는 단순한 제품이 아닌 '우리 이름을 단 차'의 첫 기억을 고객에게 심어준다. 미국과 유럽에서 값싼 차로 불리던 현대와 기아의 자동차는 품질과 디자인으로 평가받는 럭셔리 브랜드로 성장했다.

정주영 창업주가 구축한 '현대'라는 우산 아래 자동차와 건설, 정유, 금융, 조선과 해운이 함께 움텄다. 시간이 흐르며 형제들이 맡은 축이 갈라져 나가 오늘날에는 현대차그룹과 HD현대, 현대백화점그룹, 현대해상, 현대그룹 등 여러 이름으로 흩어진 범현대가를 구축하고 있다.

정주영 창업주로부터 손자까지 장자승계가 이뤄진 현대차그룹은 이 여러 갈래 중에서도 자동차와 철강, 부품을 중심으로 한 축을 구축했다. 계열 분리와 재편의 역사는 별도의 편에서 본격적으로 다룬다. 이 문서에서는 현대자동차그룹을 기준으로 삼아 오너 3대의 리더십이 어떻게 이어졌는지에 집중한다.

1.2. 삼 세대의 키워드 '개척·내실·전환'접기



세대가 바뀔 때마다 리더십도 달랐다. 맨땅에서 현대그룹을 일군 정주영 창업주는 개척자였다. 남들이 무모하다고 만류했던 고속도로 건설에 도전하고 조선소 건립 비용을 빌려오는 한편 중동의 공사를 따냈다. 외국 기술과 자본을 끌어오기 위해 직접 고장난 차를 고치는 실무자의 면모를 보였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내실을 다진 인물이다. 2025년 창간 100주년을 맞은 저명한 자동차 매체 '미국 오토모티브 뉴스'는 현대차그룹 삼대 회장을 100주년 기념상의 수상자로 발표했다. 오토모티브 뉴스는 정몽구 명예회장을 두고 품질 경영을 현대차그룹에 안착시킨 인물로 평가했다.

손자 정의선 회장이 전면에 나서며 무게중심은 다시 이동한다. 그는 자동차를 더 이상 이동수단으로만 보지 않았다. 자동차를 무한히 변주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인식하면서 전기차와 소프트웨어, 자율주행, 수소와 로봇,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등 다채로운 산업군을 하나의 생태계로 엮고 있다. 전환의 리더십이다.

2. 정주영: 길과 산업을 뚫은 1세대접기



2.1. 아산리의 맏아들, 네 번의 서울행 가출접기



정주영 창업주는 1915년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에서 가난한 농가의 맏아들로 태어난다. 부친은 소문나게 부지런한 일꾼이었고 모친도 마찬가지였다. 성실과 근면을 일찌감치 깨우치게 된 이유다. 소학교를 마치기도 전에 논밭일을 도왔다.

하지만 농사꾼으로 만족하기 어려웠다. 네 번의 가출을 감행한다. 매번 서울로 떠났다. 인력거꾼이며 막노동, 공사판 잔심부름으로 하루를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삶이었다. 그의 남달랐던 철학은 '빈대 일화'에서도 엿보인다. 노동자들의 숙소에 빈대가 들끓어 높은 탁자를 두고 잠들었는데, 그래도 빈대가 달려들자 물동이로 방어책을 구축한다. 그래도 벽을 타고 오르는 빈대를 보며 성가시기보다 끈기를 배웠다고 회고한다.

스무살 무렵 서울 쌀가게 복흥상회의 배달원으로 취직한다. 월급으로 일년에 쌀 12가마니를 줬다. 몇달 만에 자신만의 배달법을 터득하면서 연봉이 쌀 20가마니로 오른다. 거래처·외상·이자를 눈에 익힌 데다 성실한 정주영 창업주를 눈여겨본 주인이 쌀가게 인수를 제안한다. 쌀 배급제와 함께 가게를 정리하기 전까지 가게는 날로 번창했다. 청년 시절부터 사업수완이 남달랐다는 의미다.

2.2. 불탄 정비소에 "철거비 아꼈다" 배짱 두둑했던 사장접기



쌀 장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온 정주영 창업주는 아버지께 논 2000평을 사드린다. 1940년 봄 서울로 다시 돌아왔는데 쌀가게 단골손님과 인연이 닿는다. 자동차 기술자였던 그는 자동차 수리공장인 '아도서비스'의 인수를 권한다.

한달도 채 되지않아 공장에 불이 난다. 수리 중이던 트럭 다섯 대와 올스모빌 승용차까지 모두 탄다. 이때 정주영 창업주의 담대한 면모가 빛을 발한다. 불탄 정비소를 보고는 "철거비를 아꼈다"며 털어버렸고 돈을 빌려준 이들에게 돈을 갚을 테니 밑천을 마련하게 돈을 더 꾸어달라는 배짱도 부린다.

평소 신용이 두터웠던 그는 동대문에서 다시 자동차 수리공장을 연다. 그는 기술자이기도 했지만 사업자의 눈으로 시장을 볼 줄 알았다. 빠르고 정확하게 고치는 서비스가 매출로 이어진다는 판단 아래 공정을 표준화하고 부품 재고를 관리했다. 1943년 일본의 기업정리령으로 합병당했지만 이 시기를 거치며 정주영 창업주는 자동차의 모든 기능을 완전히 익히게 된다.

해방 후 그는 1946년 현대자동차공업사, 1947년 현대토건사를 세우고 1950년 둘을 합쳐 현대건설로 키운다. 이 건설사가 훗날 현대그룹의 모체가 되고 자동차·조선·중공업·무역으로 뻗어가는 씨앗이 된다.

2.3. 포니 '우리 이름을 단 차'의 탄생접기



"포니가 완성되면 내 손가락에 장을 지져라".

정주영 창업주가 포니 개발 계획을 밝히자 당시 GM의 한국 대표가 한 말이다. 1960~70년대, 국내 자동차 기업들은 해외 기업의 제품을 조립하는 수준에 그쳤다.

정주영 창업주는 국산 고유 모델 승용차 개발에 승부를 건다. 우리 자동차 산업이 해외 선진업체의 하청기지가 되는 것을 거부하겠다는 의지였다. GM의 한국 대표처럼 많은 이들이 이 계획을 비웃었다. 설계 경험도 자본도 부족한 국내 회사가 자체 모델을 개발해 수출까지 하겠다는 건 무모해보였다.

정주영 창업주는 일본 미쓰비시에서 엔진과 기술을 들여오고 1970년대 전설적인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uigaro)에게 차체 디자인을 맡긴다.

1974년 토리노 모터쇼에 소형차 포니가 등장하고, 이듬해 울산에 완성차 공장이 완공된다. 1975년부터 양산된 포니는 첫해에만 1만대 이상 팔리며 국내 승용차 시장의 40% 안팎을 차지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16번째 자체 모델 승용차 보유국이 됐다.

포니를 위해 세운 울산 공장은 조립 공장을 넘어 수출 전용 부두까지 갖춘 단지였다. 이후 울산 공장은 연간 100만대 이상을 생산·선적하는 세계 최대 규모 자동차 단지 가운데 하나로 성장한다. 정주영 창업주의 모험이 포니로 대표되는 국산 자동차의 성공시대를 연 셈이다. 이후 엑셀·쏘나타·그랜저로 이어지는 승용차 라인업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2.4. 경부고속도로와 중동 주베일, 길을 국경 밖으로접기


자동차를 만들며 차가 달릴 길까지 만든 사업가가 있을까. 정주영 창업주는 도로와 인프라 사업에도 천착했다. 1968년 착공해 1970년 개통된 경부고속도로가 대표적이다. 모두가 안 된다고 손사레를 친 사업이기도 했다.

건국 이래 최대의 토목공사로 불렸다. 서울과 부산을 잇는 428km의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모험이었다고 전해진다.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금액인 800만달러 어치의 중장비를 도입하고 우리나라가 보유한 총 중장비보다도 많은 물량을 공사현장에 투입한다.

2년 반 공사 기간 동안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많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공사 총감독관을 맡았던 윤영호 신영기술개발 명예회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새벽 5시 현장에 가니 이미 정주영 사장의 차가 있었다"며 "운전기사한테 어디 갔느냐고 물으니 이미 정비공장에 가서 장비를 둘러보고 있다더라"고 전하기도 했다.

간이침대를 놓고 식사로 죽 한그릇을 먹고 다시 현장에 나갔다는 증언이 이어진다. 숙소보다 공사 구간에서 보낸 밤이 더 많았다는 회고다. 대통령과의 대담 자리에서 깜빡 잠에 들었는데 오히려 '수고한다'며 사과를 받은 일화도 있다고.

1976년 수주한 9억4000만달러 규모의 사우디 동부의 주베일 산업항 공사는 그 해 우리나라 국가 예산의 절반에 해달될 만한 외화 획득이었다.
사진=현대차그룹

바다 위에 거대한 구조물을 세운 경험이 없던 현대는 이른바 뗏목 작전을 택한다. 육지에서 구조물을 만든 뒤 초대형 바지선에 실어 바다로 끌고 가 지정 위치에 내리는 방식이다. 파도 치는 수심 깊은 바다에 수백 톤짜리 재킷을 정밀하게 박아 넣는 이 공사를 현대는 결국 성공시킨다. 주베일과 이어진 공사들은 중동 건설 신화로 불린다.

2.5. 소떼 방북과 왕자의 난접기



1992년 정주영 창업주는 정치 참여를 결심한다. '기성 정치인들에게 더 이상 국가경영을 맡길 수 없다'는 판단 아래 통일국민당을 창당한다. 대통령 후보로도 출마해 16.3%의 득표를 얻는다.

말년 그가 천착했던 화두는 남북 경제협력이다. 1989년 첫 방북 후 10년 만인 1998년 6월 소 500마리를, 같은 해 10월 소 501마리를 끌고 판문점을 넘는 '소떼 방북'을 연출한다. 북측과 금강산 관광·공단·소형차 조립 사업 등을 논의했다. 그해 두 번째 방북 이후 금강산 관광선이 첫 출항한다. 이는 이후 개성공단·남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10여 년 교류의 한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1998년 정주영 창업주가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고 있다. 사진=현대차그룹

한편 그룹 안에서는 차입 경영과 계열 확장, 형제 간 갈등이 커지고 있었다. 큰 가지로 자라난 현대그룹은 1990년대 후반 '왕자의 난'으로 불린 갈등과 구조조정을 거쳐 2000년대 들어 현대자동차그룹·현대중공업(현 HD현대)·현대백화점그룹·현대해상·HDC현대산업개발 등으로 나뉜다. 현대가의 여러 갈래 지도가 이때 윤곽을 갖춘다.

3. 정몽구: '품질경영' DNA 심은 자동차 왕국접기



"품질은 우리의 자존심이자 기업의 존재 이유다."

"생산과 품질 향상에는 만족이 있을 수 없다."


3.1. 현대정공에서 자동차 왕국까지, 현장형 2세접기


사진=현대차그룹

1938년생인 정몽구 명예회장은 창업주의 아들이었지만 황태자로만 성장하지 않았다. 1959년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공업경영학과에 입학했다. 1970년 현대자동차의 과장으로 입사했다. 현대건설과 현대양행에서 경험을 쌓았다.

정주영 창업주는 1977년 고려정공(현대정공, 현 현대모비스 전신)을 설립하고 정몽구 명예회장에게 경영을 맡긴다. 이 회사는 컨테이너 사업에 진출한 후 4년 만인 1980년 세계 1위의 컨테이너 제조업체로 도약한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자신만의 영역을 확실히 그린 곳이다.

현대정공의 대표는 곧 자동차 산업의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였다. 섀시와 프레임, 부품의 구조를 확인하고 터득하게 됐다. 정몽구 명예회장을 사무실보다는 공장에서 더 찾기 쉬웠다는 전언은 그가 부친의 성품을 빼닮았다는 점을 방증한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2001년 1월 2일 양재동 본사 시무식에서 "자동차는 곧 품질이다. 그리고 품질은 책상이 아니라 공장에서 나온다"라고 말하며 현대·기아차의 전면적인 체질 개선과 품질 중심 경영을 선언했다.

이후 시무식과 현장 점검 자리에서 그는 "생산과 품질향상에는 만족이란 있을 수 없다" 등의 명언을 남기며 품질을 거듭 강조했다. 품질을 경영 최우선으로 삼으면서 불량이 발견되면 작업자가 라인을 멈출 수 있는 '라인스톱제'를 도입한 것도 정몽구 명예회장 시기의 상징적인 변화로 꼽힌다.
1999년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을 방문한 정주영 창업주와 정몽구 명예회장. 사진=현대차그룹

3.2. IMF 위기와 기아 인수접기



1997년 외환위기로 기아차가 법정관리에 들어간다. 포드를 포함한 외국 회사들이 인수 후보로 거론된다. 결국 기아를 품은 것은 현대그룹이었다.

1998년 말 현대는 기아·아시아자동차 인수 우선협상대상자가 됐다. 지분 51%를 약 1조원대에 취득하는 구조를 짠다. 채권단은 7조원대 채무를 정리하고 현대는 기아를 사들인다. IMF 국면에서 거의 유일하게 '국내 완성차 구조조정'에 성공한 사례로 꼽히는 동시에 그룹 안에서는 큰 결단이었다. 완성차를 하나 더 떠안는다는 것은 생산라인·부품사·노조·딜러망까지 중복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3.3. 왕자의 난접기



정몽구 명예회장은 차남이었지만 형 정몽필 전 사장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집안의 장남이 된다. 하지만 정주영 창업주는 5남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을 두고 후계자 자리를 고심 중이었다. 1997년 정몽헌 전 회장이 공동회장으로 승격되면서 패권 다툼이 본격화된다.

'왕자의 난'은 2000년 일어난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인사를 통해 정몽헌 전 회장의 측근들을 이동시킨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을 고려산업개발 회장으로 전보하는 내정인사였다. 이익치 전 회장은 정몽헌 전 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됐다.

정몽헌 전 회장이 정주영 창업주를 만나 이 전보조치를 없던 일로 하고 정몽구 명예회장은 회장직에서 경질 당한다. 이후 정몽구 명예회장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현대기아자동차그룹으로 독립한다. 현대자동차와 기아, 현대정공, 현대강관과 현대캐피탈, 오토에버닷컨, 현대이에이치닷컴, 현대우주항공 등 8개사를 계열사로 뒀다.

3.4. 품질 혁명과 '10년 보증'접기



"우주선 계기판에 현대차 로고를 붙이면 조종사가 놀라서 귀환을 포기할 것."

미국의 토크쇼 진행자 데이비드 레터맨은 현대차의 품질을 이런 말로 비아냥댔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강건한 자동차 왕국을 세우는 데 가장 공을 들인 키워드는 품질이었다. 1990년대까지 현대차는 해외에서 값은 싸지만 쉽게 낡고 고장나는 브랜드 이미지가 강했다.

그는 회장 취임 후 '토요타'를 라이벌로 내세운다. 토요타를 따라잡을 품질까지 끌어올리라는 주문이다. 1999년 정몽구 명예회장은 월 2회 정례 품질 회의를 만든다. 부품을 하나하나 짚으며 '왜 이렇게 됐느냐'고 질문했고, 비전만 나열한 회의에서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설계한 놈들이 직접 조립해 봐라. 도면만 그려놓고 끝내지 말라"는 말로 설계부터 조립, 품질까지 관리했다. 이 강박은 미국 시장의 10년·10만 마일 보증으로 이어진다. 경쟁사들이 2~3년 보증을 제공하던 시절, 엔진·변속기 문제를 10년까지 책임지겠다는 결정은 사실상 도박이었다.

내부에서는 '회사가 망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이 보증을 강행한다. 이미 어느 정도는 품질에 자신이 있었고 보증 비용은 브랜드 회복과 판매 증가로 상쇄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결과적으로 10년 보증은 현대차 스스로 우리 차를 믿는다는 신호가 됐다.

이 무렵 본사에는 24시간 품질 상황실이 설치됐다. 전 세계에서 올라오는 결함·불만을 실시간으로 취합하고 개선 조치를 검토했다. 토요타 리콜 사태 등 타사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았다.

3.5. '쇳물에서 자동차까지' 수직계열화의 뼈대접기



정몽구 명예회장 시대 현대차그룹을 상징하는 표현 중 하나는 '쇳물에서 자동차까지'다. 철광석이 들어오는 시점부터 완성차가 선박에 실려 수출되기까지 밸류체인을 그룹 안에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핵심 축은 현대제철과 현대모비스다. 현대제철은 자동차용 고급 강판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며 외부 철강사 의존도를 낮췄다. 현대모비스는 섀시·콕핏·프론트엔드 등 모듈화로 부품과 조립 구조를 재편했다. 이는 생산 속도를 높이고 품질 관리 지점을 줄여 결함 가능성을 줄이는 효과를 냈다.
2014년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 점검에 나선 정몽구 명예회장. 사진=현대차그룹

수직계열화와 품질 혁명은 해외 공장 확대와 맞물렸다. 2000년대 미국·체코·슬로바키아·중국 등에 공장을 세우며 '현지 생산·현지 판매' 체제를 구축했다. 그 결과 2010년대 현대차그룹은 생산 기준 글로벌 3위권에 안착한다.

3.6. 2세가 남긴 헤리티지와 3세대의 숙제접기



2010년대 중반 이후 정몽구 명예회장은 전면에서 한 발 물러서며 정의선 회장의 승계 작업을 준비한다. 2009년 부회장, 2018년 수석부회장, 2020년 회장 취임까지 단계적으로 승계가 진행된다.

정몽구가 물려준 자산은 분명하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3위권 완성차 그룹이 되었고, 현대·기아는 더 이상 '싸구려 차'라는 조롱을 받지 않는다. 철강·모듈·부품·금융으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는 위기 속에서도 견고한 수익 구조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숙제도 함께 넘어갔다. 산업의 무게중심이 내연기관에서 전기차와 소프트웨어로 옮겨갔다. '쇳물에서 자동차까지'라는 강점이 새로운 시대에도 그대로 유효할지, 품질 중심의 톱다운 문화가 창의성과 유연성을 가로막지 않을지에 대한 질문도 이어진다.
2023년 인도 공장을 방문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사진=현대차그룹

4. 정의선의 시대: 전동화·디자인·로봇, 모빌리티의 전환접기



4.1. '현대차나 탈거야?' 이제는 고급화접기



2002년 방영된 미드 '프렌즈'에서는 친구 여럿이 로또 당첨을 꿈꿀 때 참여하지 않는 한명을 두고 "다들 당첨돼서 헬기타고 다닐 때 너 혼자 현대차나 타고 다닐거야?"라고 핀잔을 주는 장면이 나온다.

1970년생인 정의선 회장은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와 미국 샌프란시스코대 경영학 석사를 졸업했다. 현대정공 미국 지사와 일본 이토추 상사에서 현장을 경험했다.

그에게 주어진 첫 큰 미션은 구조조정 대상에 가까웠던 기아였다. 1999년 현대가 기아를 인수했을 때 기아는 파산을 딛고 재기를 시도 중이었다. 북미·유럽에서 '싼 차' 이미지가 강했다.

2005년 기아 사장, 2009년 부회장으로 빠르게 올라선 그는 '기아 리빌딩'의 숙제를 안는다. 정주영 창업주가 길을 트고 정몽구 명예회장이 이 길을 단단하게 했다면, 정의선 회장은 길을 멋지고 우아하게 다듬는 리더이자 길을 또 다른 비전의 출발점으로 만들어야 했다.

4.2. 기아라는 실험실, 피터 슈라이어 영입접기



2006년 기아는 아우디 TT·뉴비틀을 디자인한 독일인 피터 슈라이어를 기아차 최고디자인책임자(CDO)로 영입한다. 한국 완성차 업체가 글로벌 스타 디자이너에게 전권을 주는 일은 이례적이었다. 외신 보도 등을 종합해보면 정의선 당시 기아 사장이 꽤 공을 들여 푸른 눈의 디자이너를 영입한 것으로 보인다.

처음 슈라이어 전 사장은 제안을 거절했다. 유럽의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불린 인물이다. '기아'라는 브랜드가 성에 차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슈라이어 전 사장은 기아의 패밀리 룩, 곧 차만 봐도 기아임을 알 수 있는 특징적인 디자인을 만들고자 했다. 영입 후 내세운 철학은 '직선의 단순화(The simplicity of the straight line)'다. 그 결과물이 지금까지도 기아의 상징성으로 이어지는 '타이거 노즈 그릴'이다.

정의선 사장 시절 기아는 시드·쏘울 같은 모델로 유럽과 북미에서 가성비가 아닌 갖고 싶은 차 이미지를 만들어 간다. 슈라이어는 이후 현대·기아 디자인 총괄과 그룹 CDO까지 오르며, 현대차그룹이 디자인에도 사활을 거는 기업이 되도록 이끈다.

4.3. 그룹 2인자에서 총수로접기



기아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정의선 회장은 2009년 현대차 부회장. 2018년 그룹 총괄수석부회장으로 입지를 넓힌다. 디젤게이트 이후 규제 강화, 중국 시장 둔화, 전기차 전환이 동시에 밀려오던 시기였다. 2010년대 중반부터 재계와 시장은 그를 오너 3세이자 사실상의 차기 총수로 전제하고 현대차그룹의 행보를 읽기 시작했다.

2020년 10월 그는 현대차그룹 회장에 취임한다. 그룹의 정체성은 자동차 제조기업에서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확장한다. 취임 초기부터 수익성·주주환원과 전동화·소프트웨어·로봇·UAM·수소 투자를 동시에 수행했다.

현대차그룹은 2022년 소프트웨어로 모빌리티 미래를 열다(Unlock the Software Age) 행사를 연다. 이 행사에서 2025년까지 전 세계에서 판매하는 모든 차량을 소프트웨어 기반 차량(SDV·Software Defined Vehicle)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힌다.

2030년까지 전기차(EV) 분야 24조원 투자와 연 364만대 EV 생산능력, 글로벌 EV 톱3 목표도 내놨다.

4.4. E-GMP와 아이오닉, 제네시스접기



정의선 시대를 상징하는 결과물은 전용 EV 플랫폼 E-GMP와 아이오닉다. E-GMP는 현대·기아·제네시스 주요 EV의 공통 플랫폼이다. 롱휠베이스·평평한 바닥·800V 급속 충전·V2L 같은 특성을 가능하게 했다.

2021년 출시된 아이오닉 5는 '콘셉트카가 그대로 나온 것 같다'는 평가를 받으며 2022년 월드카어워즈에서 올해의 차·전기차·디자인 3관왕을 차지한다. 한국 브랜드의 첫 3관왕이었다.

제네시스도 E-GMP를 통해 전동화 포트폴리오를 본격화했다. 브랜드 첫 전용 전기차인 GV60는 84kWh 배터리와 800V 급속 충전 시스템을 탑재해 350kW급 충전기 사용 시 10~80%를 약 18분 만에 충전할 수 있고, 1회 충전 주행거리(복합) 최대 481km를 인증받았다.

동시에 레드닷 어워드 등 글로벌 디자인 상을 수상하며 럭셔리 EV 이미지를 굳혔다. 이후 G80 일렉트리파이드, GV70 일렉트리파이드 등이 더해지면서 제네시스는 내연기관·전기차를 아우르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규모를 키웠다. 2023년 누적 글로벌 판매 100만대를 돌파했다.

2024년 현대차는 글로벌 시장에 723만여대의 자동차를 팔았다. 3년 연속 글로벌 3위다. 전동화 차종은 매년 두 자릿수 성장세를 이어갔다.

다만 2024~2025년 EV 수요 둔화로 현대차도 하이브리드·EREV 비중을 늘리며 속도를 조정하고 있다. 전동화 방향은 유지하되 믹스는 조절 중이다.
정의선 당시 현대차그룹 부회장이 2015년 11월 제네시스 브랜드 선포식에서 제네시스 브랜드 출범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현대차그룹

4.5. 수소·로봇·UAM접기



현대차그룹의 수소 전략에서 정의선 회장이 처음 두드러진 건 수소위원회(Hydrogen Council) 활동이다. 현대차그룹은 2017년 수소위원회 창립 멤버로 참여했고 정의선 회장은 2019년 공동의장(Co-chair)으로 선임됐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까지 모든 신형 상용차 라인업에 수소연료전지 또는 전기 파워트레인을 적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넥쏘,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럭 같은 기존 제품 외에 수소연료전지 발전 시스템과 수소연료전지 선박 추진체, 철도차량 적용 계획도 함께 소개됐다.

로봇 분야에서는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가 상징적인 사건이다. 현대차그룹은 2020년 12월 소프트뱅크로부터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80%를 인수하는 계약을 발표했고 2021년 6월 거래를 마무리했다. 지분은 현대자동차 30%, 현대모비스 20%, 현대건설기계 10%, 정의선 회장 20%로 나뉘었다. 인수 후 현대차그룹과 보스턴다이내믹스는 공장·물류 현장에서 네 발 보행 로봇 '스팟(Spot)' 등을 시험 투입하고 있다.

UAM 분야에서는 2019년 말 UAM 전담 조직 신설 이후, 2020년 CES에서 우버와 함께 전기 수직이착륙(eVTOL) 콘셉트 기체 S-A1을 공개했다. 이후 미국 워싱턴 D.C.에 법인 슈퍼널(Supernal)을 설립해 eVTOL 기체 개발과 인증, 인프라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슈퍼널은 공개 행사와 자료에서 2020년대 후반 미국 일부 노선 상업 운항 개시를 목표로 한다는 계획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4.6. 글로벌 무대의 영업사원접기



정의선 회장은 주요 시장의 정부·정치권과 직접 만나 협력 조건을 논의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인도와 미국에서 특히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다.

인도에서는 첸나이 공장이 기반이다. 현대자동차 인도법인은 1998년 완공된 첸나이 공장을 통해 인도 내수와 수출 물량을 동시에 담당해 왔다. 이후 추가 투자를 통해 연간 수십만대 규모 생산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현대차그룹은 2023년 GM 인디아 탈레가온 공장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2028년까지 생산능력 확대 계획을 공개했다. 인도 진출 25주년을 계기로 정의선 회장은 인도를 방문해 인도 정부·정상과 만나 전기차·내연기관차 투자 확대와 인도 내 생산·고용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미국에서는 조지아 전기차 전용 공장 투자가 대표적이다. 현대차그룹은 2022년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에 전기차 전용 공장 'Hyundai Motor Group Metaplant America(HMGMA)'를 건설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같은 해 10월 기공식에서 정의선 회장이 조지아주 주지사와 함께 착공 세리머니에 참석했다. 연 30만대 이상 EV 생산, 수천 명 단위 직접 고용 창출 계획이 함께 발표됐다.

현대차그룹은 한·미 정상회담 계기에 미국 내 전동화·UAM·로보틱스 분야에 대한 추가 투자 계획도 공개했다. 2022년 발표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미국에 전기차·배터리, 로보틱스, UAM 분야에서 100억달러 이상 추가 투자 계획을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정의선 회장은 미국 대통령과 면담해 투자 계획과 북미 생산전략을 설명했다.

4.7. 경청과 소통의 리더접기



"우리가 함께 이루어 내고 있는 혁신과 불가능한 도전들을 돌파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감명을 받았다. 우리의 여정은 지금까지도 훌륭했다. 하지만 진정한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정의선 회장은 경청과 소통의 리더로 불린다. 정주영 창업주도 직원들과의 소통에 자주 나섰고, 정몽구 명예회장도 임직원들과 정례 회의를 진행했으니 놀라울 일은 아니다. 다만 정의선 회장의 경청과 소통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재벌 저격수'로 불리던 박영선 전 장관에게 먼저 "한번 만나고 싶다"고 연락한 대기업 총수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정의선 회장이었다. 서울 모처에서 마주 앉은 자리에서 그는 재벌 개혁·지배구조 개편에 관한 박 전 장관의 비판을 한참 동안 들었다. "저부터 개혁하셔도 됩니다"라는 말을 건넸고 나눈 대화를 꼼꼼히 메모한다.
제로원데이 2019에 참석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전 장관과 현대차그룹 정의선 당시 수석부회장이 함께 전시물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현대차그룹

2021년 그룹 차원의 온라인 타운홀 미팅에서 정의선 회장은 전 세계 법인 직원들과 실시간으로 연결해 질문을 받았다. 노조·고용·보상 같은 민감한 주제부터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개인 목표까지 자유롭게 오가는 자리였다.

2024년에도 현대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혁신센터(HMGICS)에서 직원 300명과 함께 타운홀 미팅을 진행했다. 이날 그는 "리더가 갖춰야 할 역할과 덕목은 다양하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호기심과 경청"이라는 말을 남겼다.

5. 현대차그룹 성장기 한눈에 보기접기



5.1. 타임라인접기

그래픽=제미나이로 생성한 이미지
  • [1] 이 시기 변중석 여사와 결혼한다.
  • [2] 최초의 오토매틱 승용차로 미국 GM이 생산했다.
  • [3] 일진공작소와 합병
  • [4] 이탈리아의 디자이너이자 이탈디자인 주지아로의 창업자.
  • [5] 정치 경험이 전무했던 정주영 창업주로서는 꽤 많은 지지율을 모은 셈이다.
  • [6] 작업자가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견한 품질불량을 없애기 위해 언제라도 생산라인을 중단시킬수 있는 제도
  • [7] 정확히는 친구들이 헬기를 타고 해변에 갈 때 '거기서 만나야 겠어, 난 내 현대차에 기름 좀 넣고'다.
  • [8]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주 주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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