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소련이 쏘아올린 위성은 미국을 패닉에 빠트립니다.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호인데요. 이때만 해도 과학기술로 소련을 압도하고 있다고 굳게 믿던 미국엔 엄청난 조급함이 엄습했죠. 그 충격에 교육시스템까지 바꿨을 정도니까요.
데자뷔같은 사건이 최근 일어났습니다. 중국 AI(인공지능) 스타트업 딥시크의 등장입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미국이 AI 분야에서 최소 수년은 앞섰으며, 중국이 따라잡긴 요원할 것이라 말해왔는데 이 가정을 뒤흔들었죠.
엄밀히 말해서 스푸트니크 쇼크에 미치진 못합니다. 딥시크의 AI 모델 ‘V3’과 ‘R1’은 여전히 미국산 하드웨어에 의존하고 있거든요. 또 AI 경쟁은 아직 진행 중이고 반복적이기 때문에 ‘인류의 첫 인공위성’처럼 한 번 타이틀을 뺏겼다고 끝나진 않죠.
어쨌든 충격은 충격입니다. 딥시크는 V3 개발에 고작 560만달러를 썼다는데 오픈AI는 챗GPT 훈련에 1억달러 넘게 들였잖아요. 물론 딥시크가 주장하는 비용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 최종훈련 실행비일 뿐이지 초기 실험이나 인건비, 하드웨어 투자비용은 제외됐으니까요. 하지만 변수를 감안해도 실리콘밸리 빅테크들이 쏟아붓고 있는 것보단 훨씬 적은 비용입니다.
주목할 점은 딥시크의 비용혁신이 그간 AI 군비경쟁을 이끌어온 근간에 도전하고 있다는 건데요. ‘거대할수록 좋다’는 대원칙이죠. 수년 동안 세계적 수준의 생성 AI 모델을 구축하려면 막대한 돈, 최첨단 컴퓨팅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여겨져왔거든요. 그런데 딥시크는 작아도 잘 훈련된 모델은 거대 모델의 성능에 맞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습니다.
결정적으로 딥시크의 AI 모델은 오픈 소스입니다. 챗GPT, 앤트로픽의 클로드처럼 폐쇄적인 모델과 다르게요. 그동안 미국 빅테크들이 꽁꽁 감춰왔던 AI 개선방법이 누구나 복제해서 가져갈 수 있게 웹에 공개됐다는거죠. 고급 AI 기술에 대한 접근성이 넓어졌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딥시크의 등장은 이른바 ‘소버린(Sovereign, 주권) AI’ 드라이브에 더 불을 붙일 것으로 보입니다. 소버린 AI는 국가가 자국의 데이터와 인프라를 사용해 문화, 역사, 정책 등을 반영한 AI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아이디어인데요. 여기엔 클라우드 주권, 즉 데이터가 그 국가에 저장되어야 한다는 개념도 포함됩니다.
소버린 AI가 왜 필요할까요. 미국은 AI 분야에서 오랫동안 논란의 여지없는 선두주자였죠. 대형 언어모델은 대부분 영어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발되며 미국에 기반한 데이터 센터를 사용합니다. 여기에 기대다보면 우선 문화 예속의 문제가 생기고, 비영어권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성능이 떨어지는 AI를 써야할 수 있습니다. 핵심 타깃이 영미권 국가니까요.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문제죠.
안보 문제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이 자국 데이터를 중국 영토에 믿고 저장할 수 있을지, 러시아가 나토(NATO) 국가들에게 자국의 AI 자원 관리를 맡길 수 있을지 생각해보세요. 그럴 수 없을 겁니다.
엔비디아 CEO인 젠슨 황은 지난해 세계정부 정상회의에서 모든 국가는 자체적인 AI를 만들어 소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비용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여러분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데이터를 대규모 언어 모델로 체계화시키는 거죠.” 그의 설명입니다. 실제로 엔비디아 칩의 수요가 늘어나는 이유 중 하나는 소버린 AI의 부상이고요.
아무튼 중요한 건 AI 자급자족이 이제 완전히 몽상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딥시크의 출현을 경종(wake-up call)이라 표현하며 5000억달러 규모의 AI 인프라 투자 프로젝트인 ‘스타게이트’ 출범을 발표했는데요. 우주 경쟁의 시작을 알렸던 스푸트니크처럼, 뭔가 또다른 레이스의 종이 울리긴 한 것같네요.
그렇다면 한국의 위치는 어디쯤일까요. 국가별 AI 역량을 가늠하기 위해 가장 많이 참고되는 영국 토터스미디어(Tortoise Media)의 ‘글로벌 AI 인덱스 2024’를 보겠습니다. 한국은 83개국 중에서 6위를 차지했네요. 압도적 선두인 미국과 중국 외에 3위 싱가포르, 4위 영국, 5위 프랑스 등이 한국을 앞섰고요.
한국의 경우 소버린 AI를 주도하는 것은 네이버입니다. 네이버는 초거대 AI ‘하이퍼클로바’를 2021년, 성능을 개선한 '하이퍼클로바X'를 2023년 공개했는데요. 모든 서비스에 AI를 붙인다는 의미의 ‘온 서비스 AI’를 키워드로 내세우고 해외 시장에서도 확장을 꾀하고 있습니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가 올해 7년 만에 이사회 의장으로 복귀하는 것 역시 AI에 대한 네이버의 결의를 보여주는 결정이죠.
반면 네이버와 함께 국내 테크기업을 대표하는 카카오는 다소 소극적인데요. 자체 AI모델 코GPT 2.0에 대규모 투자를 하기보단 오픈AI와 협력을 택했습니다. 투자보다는 수익성 개선에 주력하는 모습이네요. 비용을 아낄순 있겠지만 자체모델 개발을 포기할 경우 뒤처진 기술력을 따라잡긴 갈수록 힘들어지겠죠.
지난달 있었던 컨퍼런스콜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포함한 경영진의 발언을 보면 두 회사의 입장 차이가 잘 드러납니다.